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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호 > 해설

해설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첫 광복절 경축사에 나타난 남북관계와 외교
남북 교류의‘다층적’확대와
신뢰 프로세스의‘일관성’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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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례적으로 8·15 광복절 경축사는 대통령의 국정 철학이 반영된 핵심 메시지가 전달된다는 차원에서 국내외적으로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이번 광복절 경축사는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연설이었던 만큼 대통령이 집권 직후 일관되게 강조한 남북한 사이의 신뢰 구축의 필요성에 대한 그간의 평가를 기대해볼 수 있는 기회였고, 나아가 대북정책에서 새로운 변화와 강조점이 나올 수 있을 것인가를 점쳐보는 흥미로운 기회이기도 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광복절은 필연적으로 한일관계를 포함한 주변국과의 외교관계 차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행사라는 점에서 최근 수년간 심각한 수준으로 경색된 한일관계에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이 제안되는지를 가늠해보는 중요한 기회였다.

사실 박근혜정부는 외교안보 환경의 차원에서 과거 어느 정부보다도 어려운 처지에서 출범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반도 문제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 이후 북한은 3차 핵실험을 포함하여 전례가 없는 수준으로 한반도 위기상황을 고조시켜왔다.

동북아 지역의 차원에서도 동북아 지역에 이해관계를 가지는 모든 국가들의 국가 리더십이 새롭게 교체되는 시점과 맞물려 관련국이 모두 자국의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는 동북아 지역전략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이러한 외교안보 환경에서 출범한 박근혜정부는 신뢰 프로세스의 대북정책 아래 북한을 상대로 남북한 사이에 신뢰를 쌓아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해왔고, 이러한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 구상은 한미 정상회담과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에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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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6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행사 참석자들이 애국가를 제창하고 있다.

북한에 ‘변화’와 ‘미래’ 향한 메시지 보내
남북관계에서도 폐쇄로 치닫는 것처럼 보였던 개성공단이 7차 실무회담을 통해 반전의 기회를 얻어 재생의 불씨를 살려나가게 되었고,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및 ‘DMZ 세계평화공원 구상’ 등과 같은 구상들이 어느 정도 가시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난 8월 15일 발표된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한반도 평화를 둘러싼 이상과 같은 국내외적 배경을 토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축사에 담긴 주요 메시지의 내용과 그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 핵의 포기와 북한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이러한 인식은 남북관계의 위기와 한반도 평화 부재의 원인을 북한의 일탈성에서 찾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의 국가이익에 부합하는 보편적인 문제의식으로 볼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북한에게 언제든지 기회의 창이 열려 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변화를 요구하는 메시지’와 ‘미래를 위한 가능성의 메시지’를 동시에 던지고 있다.

박 대통령의 이러한 합목적적인 메시지의 전달은 이번 정부 등장 이후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는 특징으로 볼 수 있는데, 북한에게 핵을 포기하고 변화하라는 촉구에 그치지 않고, 그 대가가 북한에게 많은 이익과 혜택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개성공단의 재개를 희망한다는 기본적인 입장을 표명하면서 그 전제조건으로 개성공단 사태의 재발 방지와 국제화를 분명히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언급한 내용을 살펴보면, 차제에 발생한 개성공단 사태를 남북한 사이에 지금까지 암묵적으로 반복돼온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기회로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표방하고 있는 핵심 내용 중의 하나는 돌을 쌓아올리듯이 차곡차곡 작은 평화를 축적해 한반도 평화라는 큰 평화를 이룩하는 것인데, 그러한 과정의 핵심 전제조건의 하나가 바로 북한의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입장인 것이다.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없었다는 듯이 넘어가고, 그러한 잘못된 관행의 토대 위에 남북한이 새로운 합의에 도달해왔던 비정상적인 패턴이 반복되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개성공단 사태는 남북관계의 새로운 방향 정립을 가능케 하는 일종의 리트머스로 이해되고 있으며, 차제에 재발 방지를 위한 확실한 조치를 도출해내고 나아가 개성공단의 운영을 국제적인 기준에 맞게 정상화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셋째, 박근혜정부가 추구하는 신뢰 프로세스는 다층적인 정책 영역을 통해 전개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이러한 신념의 연장선에서 ‘이산가족 상봉’의 필요성을 제안하고 있다. 즉, 신뢰 프로세스는 안보 분야, 교류협력 및 경협, 그리고 이산가족 문제를 포함한 인권의 차원에서도 진행되어야 하는 매우 폭넓은 정책 영역에 걸쳐 추진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취지에서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에도 시간이 흐르면서 생존 이산가족의 고령화 문제로 말미암아 남북한 당국자에 의한 이산가족 상봉의 적극적인 해결은 인권의 측면에서도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사안이라는 점을 분명히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최근 우리 정부는 개성공단 재개를 위한 실무회담 성과가 차츰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성과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보자는 차원에서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연계해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산가족, 생존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 등은 궁극적으로 인간 안보 즉 인권의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으며, 한 발 더 나아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입장과 추진은 결국 우리 정부와 국민 사이의 신뢰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볼 수 있다.

넷째,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경축사를 통해 갈등과 분단의 상징인 DMZ에 ‘세계평화공원’을 조성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피력하였다. 세계평화공원은 지난 5월 초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 시 미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처음 국제사회에 알려진 이후 차츰 그 논의가 구체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결, 분단, 피해, 갈등의 상징인 DMZ를 화합, 협력, 평화의 이미지로 탈바꿈시킴으로써 한반도 평화라는 긴 여정을 위해 의미 있는 전진을 이뤄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이해된다.

사실 ‘DMZ 세계평화공원’은 아직까지 구상 차원에 머무르고 있어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내용이 담기게 될지는 판단키 어려운 점이 있다. 또한 세계평화공원이 구체적인 실행으로 옮겨지기 위해서는 북한의 적극적인 협조가 전제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가 북한에 어떠한 유인책을 제공할 것인가의 문제도 전략적으로 큰 고민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DMZ라는 대표적인 접경지역을 시작으로 남북한 사이의 대결의 벽을 차츰 허물어나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라는 큰 평화로 나아가는 의미 있는 성과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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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이산가족 상봉’등의 성과로 가시화되자 광복절이 지난 18일 임진각에는 더 많은 소원 리본이 걸렸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단계적 접근
설사 세계평화공원이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린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북한과 다양한 접촉과 대화를 진행할 수 있다면, 또한 동시에 한반도 분단 현실에 대한 국제사회의 더 큰 관심과 지지를 도출해낼 수 있다면, 그 자체로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큰 성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남북관계의 영역은 아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경축사에서 동북아 지역의 불신과 반목을 극복하기 위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였다.

현 단계에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이 북한 문제를 직접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아니며, 특히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군사 문제와 같은 경성안보 사안이 아니라 환경, 에너지, 자연재해 등 연성안보 사안들을 우선적으로 해결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협력을 달성해나가겠다는 단계론적인 접근 방법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어떤 형태로든 북한 문제의 해결은 동북아 지역 차원에서의 접근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차원에서, 동북아 평화협력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은 결국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반적으로 이번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은 대북정책에 관해 새로운 정책과 비전을 제시했다기보다는 정권 출범과 함께 제안한 바 있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정치 지도자로서 국민들과의 약속, 신념, 일관성을 중시하는 평소의 리더십을 고려할 때 새로운 정책의 제안을 통해 국가 운영의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신뢰 프로세스의 정신 아래 ‘남북관계의 신뢰 형성을 통한 한반도 평화’라는 목표를 향해 일관되게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이해된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약 6개월의 시간이 지나면서 국정 운영 전반에 걸친 다양한 목소리와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 내용을 잠시 살펴보면 다른 정책 영역과 비교하여 박근혜정부는 특히 남북관계와 외교정책 분야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내외의 이러한 평가를 바탕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경축사를 통해 밝힌 바와 같이 일관된 자세로 신뢰 프로세스 추진의 입장을 밝힌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박근혜정부가 이제 임기 초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남북관계에는 다양한 위기가 도래할 수 있고, 또 국제 외교안보 환경 역시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금까지 성공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신뢰 프로세스가 앞으로 더 큰 성과를 거두는 데 필요한 사항들을 지적해보면, 북한에 대해 핵 포기와 체제 변화를 선택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동시에 북한이 대담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좀 더 다양한 유인책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북한은 핵을 생존과 동일시하고 있고 특히 북한 내 강경세력에게 핵 포기는 생존의 포기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에게 핵 포기와 변화를 선택할 것을 요구하는 도덕적인 주장과 동시에 우리 정부의 입장에서 북한의 선택을 유인할 수 있는 좀 더 다양한 정책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재발 방지와 국제화의 토대 위에 개성공단이 시급히 재개되기를 희망하며, 더욱 많은 이산가족의 상봉도 이뤄져서, 박근혜정부의 신뢰 프로세스가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라는 큰 목표를 향해 성큼 다가가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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