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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호 > 북한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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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과시용 이벤트에 올인하는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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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지난 4월 개업을 앞둔 주민편의시설 ‘해당화관’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부인 이설주.

김정은에 대한 북한 내부 민심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 초반 주민들이 보였던 호감과 기대감이 완전히 실망으로 바뀌는 양상이다.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김정은이 인민을 위해 만든다는 각종 과시용 건설사업이 역으로 인민들의 기대를 허물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

김정일 사망 직후 김정은은 주민들에게서 어느 정도 인기를 얻었다. 애도기간에 솜옷을 입고 호상을 서게 하고, 춥다고 더운 물도 공급하고, 휴식 장소를 마련하는 등 인민을 생각하는 듯한 지시들을 내렸기 때문이다. 또 작년에 진행한 대회들에 평범한 사람들을 위주로 참가시켰고, 현지 시찰을 나가서는 사람들과 허물없이 어울려 사진도 찍었다. 이를 보면서 주민들은 그래도 아들은 아버지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을 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그 이미지는 온데간데없다. 김정은이 내리는 지시가 인민들의 생활과는 전혀 동떨어진 각종 놀이시설과 부자들을 위한 편의시설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지시로 지난해부터 북한이 새로 건설하거나 개·보수한 놀이시설은 수없이 많다. 김정은이 지난해 4월 15일 “인민들이 더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고 공언한 뒤 그가 현지 시찰을 한 곳은 만경대유희장. 그곳에서 그는 간부들에게 유희장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고 질책했다. 이후 평양에는 만경대유희장, 개선청년공원, 대성산유희장, 문수물놀이장의 개·보수 작업이 본격적으로 벌어졌다. 대동강 릉라도 유원지엔 남포에서 직접 바닷물을 끌어와 건설한 곱등어관까지 건설됐다. 이런 유원지 개·보수 및 확장 사업은 사실 인민들의 생활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유희장뿐만 아니라 김정은은 지난해 야외 빙상관과 롤러스케이트장을 평양에 건설한 뒤 이를 전국에 확대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이 때문에 지난해 11월 평양, 원산, 남포, 함흥, 신의주, 청진, 회령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롤러스케이트장 건설 붐이 일었다. 물론 자재는 몽땅 주민들에게 부담시켰다.

이렇게 건설된 롤러스케이트장의 시간당 이용료는 1000~2000원, 장비 대여료는 3000원에 이른다. 북한 근로자들의 평균 월급이 3000원 남짓임을 감안할 때 터무니없이 비싼, 부자들이 아니면 탈 수 없는 가격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어려운 가정의 부모들은 건설 자재를 돈을 주고 사서 내고도 정작 건설된 롤러스케이트장을 멀리서 지켜만 볼 뿐이다. 거기에 롤러스케이트를 사달라, 스케이트 태워달라는 아이들의 생떼에 가슴이 찢어지는 판이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인민과 어린이 사랑의 명분으로 롤러스케이트장을 만들어놓고 오히려 나라에서 인민을 상대로 피를 빨아먹는 돈벌이 장사를 하고 있다”며 비난과 원성을 터뜨리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불만을 쏟아내는 것 중 압권은 승마장과 스키장 건설 사업이다. 북한 소식통은 “처음 경마장을 만든다고 할 때 사람들은 그런 건 왜 만드느냐, 인민들이 언제 말을 타겠다고 했냐며 불만를 터뜨렸는데, 이제는 스키장까지 만들겠다고 하니 경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경악과 함께 주민들의 기대도 완전히 허물어졌을 뿐 아니라 모두들 어이없어 말도 안 나올 지경”이라고 덧붙였다.

김정은이 지난 4월 이설주와 함께 둘러본 ‘해당화관’은 주민들의 박탈감을 크게 부채질한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평양 대동강변에 건설된 6층짜리 해당화관은 쇼핑몰뿐 아니라 식당, 찜질방, 마사지숍, PC방 등이 입점해 있는 종합 주민봉사시설로 지난 5월 문을 열었다. 하지만 해당화관은 주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목욕 한 번 하는 데 17달러, 한 끼 식사에 최소 30달러, 주스 한 병에 4.5달러를 받는 등 그 가격이 한국과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여기에 북한 사회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때를 미는 서비스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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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7월 28일 북한 전승절 열병식에 등장한 핵배낭 부대.

빈부 격차 극심해 주민 불만 증폭

이런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해당화관은 항상 붐빈다. 어지간한 중산층도 가볼 엄두를 못내는 해당화관은 북한 사회의 부익부 빈익빈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생생한 현장이 됐다.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빈부 격차가 심해도 이 정도로 심할 줄은 몰랐다고 수군거리고 있다. 주민들은 “김정은이 인민들이 죽지 못해 산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 김정은이 말하는 인민은 비싼 식당에 다니고 말과 스키 타러 다니는 인민이냐”고 비아냥대고 있다. 김정은은 불과 1년 만에 이런 비난 여론을 스스로 만들었다.

물론 아직까지 주민들이 김정은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주민들 속에 김정은에 대한 기대감이 허물어지고, 불만이 확산되는 속도는 과거 김정일 시대와 비교할 바 없이 빠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김정은이 ‘마식령 속도’라는 신조어까지 만들며 1년 만에 완공하라고 몰아붙이는 마식령 스키장은 완공돼도 또다시 주민들의 비난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스키장이 붐빈다면 스키장에서 행복해하는 북한 부자들을 지켜보는 주민들의 박탈감과 불만은 더욱 고조될 것이다. 반면 스키장이 한산하면 저걸 만들려고 온 나라 사람들이 1년 동안 달달 볶였냐는 비난이 커지게 될 것이다. 지난 1년간 선보인 김정은의 행보는 그가 인민들의 환심과 지지를 얻는 방법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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