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호 > 포커스
해설
남북한은 9월 25일부터 30일까지 금강산에서 남북 각각 100명씩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갖기로 합의했다.
또한 남북 각각 40가족씩 10월 22일 화상 상봉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11월 중으로 이산가족 상봉이 한 차례 더 진행될 수 있도록 추후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이원웅 관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지난 2010년 10월 이후 3년 만에 재개된 것은 최근까지 경색 국면으로 막혀 있던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이산가족 상봉 행사 재개 합의는 최근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정전협정 파기 등 강압외교에 맞서서 원칙과 신뢰를 앞세운 박근혜정부 대북정책의 큰 성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정치·경제적 지원의 대가로 간주해왔던 북한의 인식 전환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사실 이번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합의는 북측의 일방적인 폐쇄 위협으로 중단된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 협상과 연계되어 진행되었지만, 정부 측은 협상 의제를 명백히 구분하여 남북 경협은 상호주의로, 이산가족은 인도주의 원칙으로 대응하고 있다. 북측은 이번 협상에서 우리 측의 보상이나 대가 지불 없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합의함으로써 박근혜정부의 대북 원칙주의가 실효력을 보이고 있는 양상이다.
지금까지 남북 당국 간 인도적 현안이자 1천만 이산가족의 염원인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한 것은 북한 측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순수한 인도적 사안이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대가를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해왔기 때문이다. 남북한은 지난 1970년대 초에 개최된 적십자회담에서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관해 5개 항에 합의한 바 있다. 즉 생사 및 주소 확인을 비롯해 상호 방문과 상봉, 서신 교환, 재결합, 기타 인도적 문제 해결 등 다섯 가지 항목이다.
이 중 재결합 문제를 제외한 나머지 문제들에 관해서는 쌍방이 의지만 있으면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사안들이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는 이산가족 문제 해결의 전제조건으로 남한의 반공태세 철폐를 주장했으며 199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는 남측의 경제 지원을 얻어내기 위한 지렛대로 이산가족 문제를 다루어왔다.
그러나 순수한 인도적 사안인 이산가족 상봉은 더 이상 정치적 협상의 대가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전쟁이나 정치적 이유로 헤어진 가족들이 생사를 확인하고 서로 만나는 것은 보편적 인간의 권리이며 이를 보장하는 것은 모든 정부의 당연한 의무이다. 일회성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위해서 북측에 경제적 보상을 지불하는 것은 잘못된 관행이다.
남한 측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사람은 12만8800명이고, 이 중 5만6000여 명이 사망했으며, 생존 이산가족 신청자 7만2000여 명이 지금도 헤어진 가족을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한 번에 100명씩 연간 한두 차례 상봉 행사를 갖는 현재의 방식으로는 남측 상봉 신청자 7만2000여 명이 북한의 가족, 친척들을 만나는 데 72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의 80%가 70대 이상 고령자들인 현황을 고려한다면 이분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의 생사를 알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지난 8월 29일 대한적십자가 북측에 보낸 우리 측 상봉 후보자 명단을 살펴보면, 95세의 최고령자를 포함하여 25%가 90세 이상이었고, 42%가 80대이며, 북측 역시 87세의 최고령자를 비롯한 80대가 77.5%를 차지하고 있어 이산가족 상봉이 절실한 시점임을 알 수 있다. 우리 측 상봉 대상에는 국군포로와 납북자도 일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정부 측 협상안에는 이산가족 문제를 좀 더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추가 방안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서 다행이다. 즉 △상봉 정례화 △생사·주소 확인 △생사가 확인된 이산가족의 서신 교환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생사·주소 확인 등을 추가로 북측에 제안했다. 이러한 정부 측의 제안은 우리 국민들과 대다수 이산가족들이 열망하는 과제를 담고 있다. 이러한 제안에 대해서 북측이 어떻게 반응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이산가족 협상 성사 과정을 지켜보면서 무엇보다 정부 측의 원칙에 입각한 정책의 지속성과 진정성이 결국 북측을 움직일 수 있다는 교훈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이 고령층으로 이제 앞으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이산가족들의 애타는 염원과 가족들의 상봉 권리 회복을 위해서 북측은 좀 더 진정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는 대북 협상 실현을 위해서 일정한 보상이 필요한 경우가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지만,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인도적 사안에 대해서는 확고한 원칙주의를 고수할 필요가 있다. 당장의 전시성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중·장기적 안목으로 북한 체제가 국제사회의 규범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유도해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인내와 끈기가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