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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을 나누다│통일아 기다려 당선작③

내 친구 은이 / 글. 김가영

이미지 내가 은이(가명)를 만나게 된 건 작년 이맘때였다.
외삼촌이 개척교회의 목사로 계셔서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특별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으신데, 작년 겨울 삼촌이 나를 교회로 초대했을 때부터 은이와 나의 우정은 시작되었다.

은이는 키가 작고 검은 단발머리에 쌍꺼풀이 예쁜 아이였다. 항상 조용히 있었지만 너무 말수가 없어서인지 오히려 제일 눈에 잘 띄었다. 아담하고 차분한 분위기, 나와 동갑이라는 점 때문에 처음 본 순간부터 친구가 되고 싶었다. 친해지고 싶어 쓸데없이 말을 걸었고 신변잡기 이야기로 수다를 떨어보려고 했지만 은이는 “응”, “아니”, “잘 몰라”라는 말 뿐, 수줍은 미소만 지었다.
나중에 삼촌에게 정식으로 소개받기 전에는 은이가 북한이탈주민 집안의 아이라는 걸 전혀 몰랐다.

은이의 말문을 열기 위해서 별 짓을 다하다가 포기할 즈음이었다. 은이 곁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켰는데, 우연의 일치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나왔고, 그에게 매달려 흐느끼는 예쁜 어린아이들의 모습이나 절도 있는 동작으로 충성을 맹세하는 군인들의 모습이 차례로 지나갔다. “뭐하는 건지 도대체 답이 없다. 대체 왜 북한 애들은 저럴 때 울고불고 호들갑을 떠는지.”
그러자 은이가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뭐가? 뭐가 그렇게 이상하다 이거야? 별로 그래 보이지 않는데.”
“그냥 나는 마음에 안 들어, 북한 모든 게.”
“무슨 소리지?”
“글쎄, 북한 애들은 못 먹어서 그런지 작고 비실비실해. 쟤네한테 주는 쌀도 아까워. 우리가 주는 쌀, 거의 군대용으로 들어간다더라. 그럴 거면 왜 원조해주는 지, 우리나라에도 굶는 사람들 많잖아. 안 그래?”
그러자 은이가 처음 듣는 격앙된 억양으로 나에게 쏘아붙이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지, 너무 배려가 없다. 모른다고 아무렇게나 말할 수 있어? 네가 모르고 하는 소리겠지만, 북한 사람들 다 죽으라는 듯 들린다는 말이야. 내 말 알아듣겠어? 죄 없이 죽는 꽃제비들이나 배급 못 받는 군인들, 일반 사람들을 기만하지마.”

나는 그제야 은이의 억양이 아주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내 의도는 굶어 죽는 북한 주민들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고 원조와 배급품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대한 궁금증의 표현이었기 때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더듬거리며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저기, 네가 왜 화났는지 나는 모르겠어. 나는 진짜 그런 의도가 아니야. 일단 취소할게. 미안해 너 기분 나빴으면 사과할게.”

이미지 은이는 약간 화가 누그러진 표정과 함께 여전히 날을 세웠다.
“북한 사람이나 남한 사람 우리 모두 어떻게 보면 먼 친척일수도 있는 거잖아. 먼 나라 일처럼 생각하지 말아달라는 뜻이야.”
나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은이가 정말 북한에서 왔는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그러자 생긋 웃으면서 침착한 말투로 설명해주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사실 나는 북한에서 온 것은 아니야. 우리 부모님이 북한 출신인건 맞지만 난 한국에서 태어났거든. 그리고 갑자기 성낸 건 미안. 가끔 사람들이 남의 일인마냥 말할 때 마다 너무 속상해서….”
그렇게 어색한 시간이 화해로 봉합되고, 다음날 삼촌에게 은이와의 일을 이야기했다. 삼촌은 앞으로는 정치적인 견해나 북한에 대한 생각을 함부로 과격하게 말하지 말라고 입조심을 시켰다. 그리고 은이에게는 잘 말씀해 주실 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위로해주었지만 이미 어제의 논쟁으로 인해 혼란스럽고 기분이 상한 상태였다.

일주일이 지나 일요일이 되어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삼촌 댁에 방문하게 되었다. 삼촌이 다시 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애교 섞인 협박을 하셨기 때문에 그저 은이가 없기를 바라며 문지방을 밟았다. 하지만 은이는 여전히 조용하게 앉아 텔레비전을 바라보고 있다가 나를 보자 옆의 친구에게 속삭이더니 갑자기 자리를 떠버렸다. 정말 마음이 상해버린 나는 은이가 저번 일 때문에 아직도 화가 나있는 줄 알고 서운한 마음에 그 길로 가방을 챙겨서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잡았다. 놀라서 뒤돌아보니 은이가 빨개진 얼굴을 하고 겉옷도 입지 않은 채 뒤편에 서있었다. 당황한 나는 아무 말 못하고 입만 벌린 채 은이의 행동을 기다렸다. 이미지 “왜 그냥 가는 거야? 이렇게 빨리?”
“응? 아니, 내가 지금 일이 있어서… 급한 일이 생겨서 집에 가는 중이었는데 깜짝 놀랐잖아, 무슨 일이야?”
“너 주려고 크리스마스카드를 썼어. 너에게 주려고 방에 잠시 들어갔는데 네가 집에 가버렸다는 거야. 지금 안 주면 크리스마스를 넘겨버리니까, 이렇게 뛰어왔어.”
“크리스마스카드?”
“집에 가서 봐.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그 말만 남긴 채 은이는 삼촌 댁으로 뒤돌아 뛰어갔다. 어리벙벙한 기분으로 내 손에 남겨진 은이의 크리스마스카드를 그 자리에서 열어보았다. 거기에는 화를 내서 미안했다는 사과내용과 함께 삼촌에게 얘기를 많이 들었고 그래서 친해지고 싶었는데 말투가 이상해서 혹시나 자신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까봐 불안했었다는 고백이 담겨있었다. 진실된 마음이 전해지자 나는 황망해졌고 손 글씨로 꾹꾹 눌러 쓴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한 문장에 감동하여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 이후 나는 매주 삼촌의 집에 들러 은이와 만나게 됐고, 지금은 내 친구를 소개해 주어 은이의 남자친구를 찾아주기까지 했다. 또한 작년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며 이번에는 내가 은이에게 멋진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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