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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비핵화와 6자회담 (성기영/연세대 북한연구원 연구교수)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다자간 협의체로서 6자회담이 출범한 지 꼭 10년이 흘렀다. 중국 베이징에서 첫 번째 6자회담이 열렸던 것이 2003년 8월의 일이었다. 지난 10년간 6자회담은 수많은 진통을 겪으면서도 2005년 9.19 공동성명과 2007년 2.13합의라는 옥동자를 생산해내 북한의 비핵화를 향한 청신호를 밝혀주었다. 뿐만 아니라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 주변국들은 △북·미관계 정상화 △북·일 관계정상화 △경제 및 에너지 협력 △동북아 평화 안보체제 등에 관한 실무그룹 구성 및 개최에까지 합의함으로써 향후 6자회담을 기반으로 동북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6자회담이 이러한 성과를 창출했던 것은 10년의 역사에서 앞쪽 절반에나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2008년 7월 수석대표 회담 이후로 북한의 핵검증 과정에서 시료 채취 여부를 둘러싼 논란 끝에 6자회담이 중단된 채 5년이 흘렀다. 비유하자면 6자회담은 현재 중환자실에 산소마스크를 낀 채 누워있는 환자와 다를 바 없는 신세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6자회담 재개를 둘러싸고 주변국들 간에 활발한 물밑 움직임이 전개되고 있다. 첫 번째 신호는 새로 출범한 중국의 시진핑 지도부로부터 왔다. 중국은 김정은 제1비서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최룡해 노동당 총정치국장을 특사로 맞아들인 자리에서 북한의 대화 복귀를 촉구했고 최룡해 특사는 ‘6자회담 등 다양한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룡해 특사의 중국 방문은 시진핑 주석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캘리포니아 정상회담 직전에 이뤄졌을 뿐 아니라 6월말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까지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되었다. 한·중 정상회담은 물론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북한의 비핵화가 중요한 의제로 떠올라 결과적으로 북한을 전방위 압박하는 형태로 논의가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이 동아시아 지역은 물론 글로벌 안보에서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한층 강화된 영향력을 바탕으로 6자회담 재개를 지렛대로 하여 북한을 대화국면으로 일단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동시에 미국도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국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했고 한국 역시 한·중관계의 도약을 북핵 문제의 지렛대로 삼으려고 하는 전략을 내세웠다는 사실도 6자회담 재개 국면을 여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북한이 국방위원회 대변인을 통해 북·미대화를 전격적으로 제안하고 나선 것도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의미심장한 발걸음으로 해석될 수 있다. 북·미대화는 6자회담 내에서 비핵화의 방법론과 관련한 이견과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이를 막후에서 조율하는 해결사의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2007년 1월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와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독일 베를린에서 따로 만나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에 합의함으로써 바로 다음달 6자회담에서 2.13합의를 이끌어낸 것이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6자회담 당사국들을 불러 모으는 것은 중국의 역할이지만 회담 재개의 조건에 대해 ‘오케이’ 사인을 보낼 수 있는 카드는 한국과 미국이 쥐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최근 북한이 직접 대화를 제의한 이후 한·미·일 3국의 6자회담 대표들은 워싱턴에서 따로 만나 대화 재개의 전제조건을 점검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는 지난해 2.29합의 당시 북한과 미국간에 교환했던 조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이른바 ‘2.29 플러스 알파’에 대한 공감대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영양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유예, 우라늄 농축 중단 등에 동의한 바 있다. 그러나 2.29합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로 인해 휴지조각으로 변해 버렸다.
따라서 6자회담이건, 북·미대화건 간에 북한을 상대로 대화를 재개하기 위해서는 2.29합의에서 합의한 수준을 뛰어넘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추가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미·일 3국이 내세운 이러한 조건을 북한이 선뜻 받아들여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북한은 이미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문화했고 지난 3월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를 통해 ‘핵 무력과 경제건설의 병진노선’을 천명하기도 했다.

비핵화의 개념을 둘러싸고도 이견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한·미·일 3국은 당연히 2008년 중단되었던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 재개를 요구하고 있으나 북한은 ‘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주장을 내세우며 남북한 전체의 비핵화를 고집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한·중정상회담 이후 발표된 한·중 미래비전 공동성명을 보면 중국 역시 ‘한반도 비핵화’라는 개념을 고수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이 장애물로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6자회담은 현재 비핵화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의 총체적 재구성을 위한 유일한 대화기구로서의 지위를 갖고 있다. 6자회담 10년 역사의 가장 큰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2005년 9.19 공동성명의 정신 역시 유효하며 이를 되살려야 할 엄중한 필요성도 자각해야 한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6자회담 무용론’이 여기저기서 불거져 나왔던 것을 감안하면 그나마 북한을 대화 국면으로 끌어들여 회담 재개의 불씨를 당긴 것만으로도 사태 해결을 위해 일보전진의 발걸음을 떼놓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사진_청와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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