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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꿈꾸다 | 또 다른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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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유진벨 재단의 최근 방북 소식이 화두에 올랐다. 유진벨 재단은 현재 유일한 남북 왕래단체다. 북한이 모든 대화의 창구를 걸어 잠근 채 묵묵부답인 가운데 유진벨 재단만이 양쪽의 허가를 받은 이유가 궁금했다.

"조찬기도회 때 대통령께 직접 결핵약 반출을 승인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저는 인수위 선대위 때부터 박 대통령께 딱 두 가지만을 주장했습니다. 첫째, 인도적인 지원과 정치를 분리하자 둘째, 북한 정권과 북한 국민을 분리해서 지원하자. UN에서도 정치적인 사안과 인도적인 지원은 절대 결부시키지 않습니다. 그게 UN의 제 1원칙입니다."

북한이 예외적으로 유진벨 재단을 받아들인 이유를 설명하려면 린튼가와 한국의 오랜 인연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인요한 소장의 외증조부인 유진벨이 1895년 한국에 선교사로 파견된 이후 이 가문은 일제의 억압과 해방, 남북분단과 한국전쟁 등 우리 근현대사의 굴곡을 5대에 걸쳐 함께하며 도움의 손길을 펼쳐왔다.

“미국 빌리그레햄 목사의 요청으로 1990년대 초에 인세반 형님(유진벨 재단 회장)이 빌리그레햄 가족과 김일성의 만남을 3번 주선해 주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한 것을 알게 되어 1995년에 유진벨 재단을 설립, 식량지원을 시작했습니다. 1996년도에 결핵퇴치 공로로 어머니가 호암상을 수상했는데 그 상금으로 앰뷸런스를 구매해 북한에 기증을 했어요. 그 후 북한에서 결핵퇴치를 도와달라는 공식 요청이 왔고 유진벨 재단은 이듬해부터 식량지원에서 결핵퇴치 의료지원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11여 년 동안 일반 결핵퇴치를 위해 노력했고 지난 5~6년 동안은 다재내성결핵을 열심히 퇴치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유진벨 재단이 결핵약과 의료기구를 전달하고 사용법을 알려주기 위해 북한 전역을 돌며 보낸 시간, 그러면서 쌓인 상호 신뢰는 매우 견고한 것 같았다.

최근 북핵 실험과 끊임없는 도발로 국민 여론이 최악인 상황에서, 이 복잡하게 얽힌 남북관계의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가면 좋을 지 질문을 던졌다.
"북한이 고립돼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외형적으로는 우리가 타겟인 것처럼 보이지만 아마 내부적인 단결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반면 그러한 북한의 태도에 대한 미국의 위협은 어마어마한 공포를 불러일으킵니다. 도발에 대해 강한 응징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시로 한번쯤 위협을 보여줄 필요는 있지만 여러 번 반복된다면 북한을 극심한 공포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바로 남북한 당사자들이라고 인 소장은 강조한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남북한의 시계는 항상 다른 시간을 가르킵니다. 미국은 한 발 물러서서 박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당으로부터 신뢰받는 친야당측 특사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인이 아닌, 금강산과 개성공단의 해법을 제시할 ‘비즈니스맨’을 특사로 보낸다면 남남갈등 또한 줄어들 것입니다."

"남북관계는 NGO도 해결 못하고 정치가도 해결 못 해요. 남북관계는 개성공단을 통해서 해결해야 돼요. 그게 유일한 해답입니다."
인요한 소장은 현 남북한 상황을 형제에 비유했다. 형이 동생을 돕고 싶다면 계속 먹여주고 재워주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
"낚싯대를 주고 낚시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생존할 수 있는데, NGO는 북한 사람을 도와줄 수는 있어도 그들의 손에 낚싯대를 쥐어주지는 못해요. 세계 시장이라는 거대한 바다 한가운데에서 생존을 가르 쳐주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개성공단이라는 겁니다."

"통일을 하려면 우리가 먼저 변화되어야 하고, 우리 이전에 나 자신부터 바뀌어야 해요."
인요한 소장은 특히 조선족(재중동포)에게 잘 해줄 것을 권했다. 왜냐하면 이들의 말이 ‘천리’를 가기 때문이다. 북한은 폐쇄된 사회이기 때문에 조선족의 입을 통해 남한의 이야기가 주로 전해지는데, 남한에서 조선족을 ‘더티’하고 ‘데인저러스’하게 취급하고 월급을 떼어먹는가 하면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회피하거나 연변이나 연길지역에 가서 미성년자를 쾌락의 대상으로 찾기도 한다. 이런 안 좋은 소문이 증폭되어 북한 주민들이 우리를 두려워하게 만들었다는 것.

"북한체제는 자본주의를 썩었다, 퇴폐하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실제로 친척인 재중동포들에게 들리는 말도 이와 비슷한 겁니다. 우리 사회 안 좋은 모습이 확대전달되는 것이지요."
통일되면 저들이 와서 우리 것을 다 가져가 버리지 않을까? 내 누이는, 딸은 어떻게 될까? 하는 두려움이 저변에 깔려 있다고 했다. 따라서 남한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려면 조선족에 대한 차별적인 마음을 지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다문화가정을 포용하는 자세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문화가족이 농촌에서는 30%에 육박합니다. 그들을 잘 포용하는 것이 바로 통일의 연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60년 동안 남북은 다른 노선을 걸으면서 너무 달라졌기 때문에 융화를 하려면 외국인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할 것입니다."

"통일 후에 그 사람들이 내려와서 우릴 원망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잘사는데 우리를 왜 못 도와줬냐고요."라며 반문하며 기아에 시달리는 북한에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에서 1년이면 새 차를, 5년이면 새집을 살 정도로 한국인은 정말 에너지 넘치고 위대하지만 그것보다 더 대단하고 숭고한 것은 바로 극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아이를 살리려고 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북한에서 어떻게 굶어죽는지 아세요? 아프리카에서는 애들이 먼저 죽거나 부모와 같이 죽지만 북한에서는 최후에 아이들이 남아요. 순서는 이렇습니다. 먼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스스로 배급을 포기하고 다음으로 아버지가 버티다가 집을 나가요, 마지막으로 엄마가 키우다 키우다 병들어 죽어요. 그래서 애들만 많은 겁니다. 꽃제비 세대라 불리는 이 아이들이 20대를 바라보고 있어요. 한국인이 세계 인류와 다른 점은 바로 바로 피눈물 나게 인간적인 모습, 죽음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모성애, 부성애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정서는 기본적으로 북한사람들, 혹은 옛 한국사람과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이건 이념이나 사상 이야기가 아닙니다."

인요한 소장은 2000년도부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초청으로 자문위원과 국민들에게 자주 강의를 해왔다.
"민주평화통일을 열망하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와 함께 국민들에게 올바른 대북관, 통일관을 심어주기 위해 교육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인 소장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추천으로 2005년도에 국민훈장목련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오랫동안 대북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는 형 인세반 유진벨 재단 회장과 함께 북한 내 결핵퇴치 사업을 주도해 오는 등 대북인도지원 사업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당시 부의장님이 이렇게 이야기 하셨어요. 나 개인에게 주는 상이 아니라 린튼가가 인도적인 차원에서 북한에 지원해 온 것에 대해 가족 대표로 주는 상이라고요.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인요한 소장은 또한 “민주평통 수석부의장님은 총리급이므로 대통령과 수시로 만날 수 있고 통일정책에 그만큼 비중을 두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앞으로도 민주평통이 더 헌신적으로 통일 준비를 위해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글. 기자희 / 사진. 나병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남 순천시에서 성장한 인요한 교수는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서양인 최초로 의사고시에 합격했으며,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을 역임하고 있다. 1993년 한국형 구급차를 개발해 119 응급구조체계의 산파역할을 했으며, 유진벨 재단 이사장인 친형 스티븐 린튼과 함께 수 십차례 방북, 결핵약품과 의료장비를 무상 지원하여 북한 결핵퇴치사업을 전개하는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친
공로로 2005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또한 개정된 국적법에 의해 특별귀화허가를
받고 올 3월 대한민국 법무부장관에게 대한민국 내 외국국적 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서약하면서 미국시민권과 한국국적을 동시에 가지며 한국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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