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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을 나누다 | 통일과 나(공모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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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남원
할아버지의 고향은 황해도 은율군입니다. 물론, 아버지의 고향도 그 곳이지요.. 6.25 전쟁 당시 저희 아버지의 나이는 네 살, 그 때 이곳으로 피난을 내려오신 겁니다. 한국전쟁 때 맏아들이셨던 저희 큰아버지는 20세의 어린 나이에 전쟁터에 나가게 되셨고, 그 곳에서 전사하셨지요... 그래서 6월 6일 현충일이나 큰아버지 생신날에는 식사를 한 끼도 드시지 않고 혼자 눈물을 흘리시며 끙끙 앓으셨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 마음이 어떠셨을까요... 얼굴도 모르지만 늘 가슴 속에 아픈 존재로 남아있는 큰형에 대해 아빠께는 감히 여쭙 기도 죄송스럽습니다.



항상 명절 때에도 고향 음식을 고집해서 해 드시고, “우리 고향에서는 말야...”라는 말씀으로 고향 추억을 떠올리시는 이야기 한 가득 풀어놓 으셨던 할아버지. 아직도 북에 남아있는 가족들 생각에 유난히 마음 여리고 눈물 많은 할아버지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분명히 존재하는 고향인데 절대로 갈 수 없으니 얼마나 비참하고 안타까운 일인지. 겪어보지 못한 제가 이해를 한다면 얼마나 할 수 있을까요?

술, 담배 일절 하지 않으시고, 돋보기 안경을 쓰신 적도 없으셨던 할아버지는 무척 건강한 삶을 사시다가 90세의 연세로 제가 중학교 시절 돌아가셨습니다. “금강산에 한 번 가봤으면 좋겠구나...”하시며 누구보다 통일을 갈망하시던 저희 할아버지셨는데 결국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잠드셨지요.. 가실 때 까지 내 아들, 내 고향을 늘 언급하시며 그토록 애타게 그리움에 사시던 할아버지... 결국 할아 버지께서는 북녁땅이 바라보이는 임진강변 근처에 묻히셨습니다.

먼저 간 아들은 만나셨는지, 고향땅은 내려다보고 계신지 궁금해지네요... 할아버지... 그렇게도 손녀가 예뻐 어쩔 줄 몰라 하시던 할아버지 얼굴이 눈에 선해서 마음이 아려옵니다... 그 곳에서도 조국의 통일을 기원하고 계시죠? 비록 지금은 이렇게 남북이 갈라져 있지만 우리는 하나니까 언젠간 서로 손잡을 날이 오리라고 같이 믿어요!!! 정말 정말 보고 싶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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