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호 > COVER STORY
COVER STORY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양국이 한미동맹의 건전성을 재확인하고 미국이 동맹의 역량 강화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표명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에 대한 대가도 따른다. 국방비 감축 요구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이 아시아 동맹국에게 책임과 역할 분담을 강조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또한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선전포고나 다름없다”고 맹비난한 북한의 추가 도발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한국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4월 25일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의 추가 핵실험 가능성에 대해 강력히 경고했다. 오바마의 방한은 취임 후 이번이 네 번째이다. 비록 1박2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은 결코 가볍지 않은 성과를 남겼다.
일본, 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을 차례로 방문한 오바마는 최근 지속 가능성 여부를 둘러싸고 회의론이 제기된 아·태 재균형 정책의 유지를 재확인하는 한편, 역내 동맹과 우방들에 대한 안보 공약을 확고히 다지는 성과를 거뒀다. 일본에서는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가 미일 안보조약 5조의 적용 대상이라고 발언했고, 한국에서는 전시작전권 재연기 방침을 시사했으며, 필리핀과는 ‘향상된 방위협력협약(EDCA)’을 체결해 22년 만에 미군의 필리핀 군기지 재주둔이 가능해졌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여러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대목은 역시 양국이 한미동맹의 건전성을 재확인하고 미국이 동맹의 역량 강화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표명한 점이다. 중요한 성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최근 핵실험 준비 징후 등 도발 움직임을 보이는 북한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냄으로써 한반도 안보에 대한 굳건한 의지를 내비쳤다. 한미 양국은 두 나라는 물론 국제사회의 공동 목표이기도 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북한 비핵화를 평화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앞으로도 확고한 의지를 갖고 북한과 관련된 모든 사안들에 대해 계속 긴밀히 협력해나갈 것을 확인했다. 북한의 핵실험 징후와 관련해서는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강행하면 추가적인 압력 방법을 찾을 것이며 더 큰 대가를 치르게 하는 영향력 있는 제재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이 4월 26일 서울 용산의 한미연합사령부를 함께 방문한 것은 한국에 대한 방위 공약의 확고한 표현이었다. 양국 정상이 함께 한미연합사를 찾은 것은 1978년 연합사 창설 이래 처음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용산기지에서 미군 장병, 가족 등 1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한국말과 영어로 “같이 갑시다, We go together”라며 “우리는 동맹들과 우리 삶의 방식을 수호하기 위해 군사력을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 군사안보 부문의 협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진전이 이뤄졌다. 특히 두 정상은 2015년 12월 1일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를 재연기하는 데 사실상 합의했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북한 핵과 탄도미사일 위협이 커지면서 이에 대한 한국군의 대응 능력 등 조건이 충족됐을 때 전작권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우리 측 의견을 미 측이 수용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우리 정부는 전작권 전환의 조건으로 ①북한 핵무기 개발 등 한반도 안보 상황 평가 ②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국군의 대응 능력 ③한국군의 한미 연합방위 주도 능력 등을 미 측에 제시했으며, 양측이 이들 조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협의 중이다.
한미 양국은 전작권 전환 조건을 확정한 뒤 이 조건들이 충족되는 예상 목표 시기를 고려해 오는 10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제46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전작권 전환 시기를 확정할 예정이다. 또한 두 정상은 한국이 독자적으로 구축 중인 탄도미사일방어체제(KAMD)와 관련해 이 시스템이 미일의 미사일 방어체제와 연동될 수 있도록 ‘상호 운용성’을 개선한다는 데도 합의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한·미·일 3국 간의 정보 공유가 중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도 두 정상은 인식을 같이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한·미·일 3국은 국내의 반대 여론 때문에 무산됐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대신 한·미·일 군사정보 보호 양해각서 체결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셋째, 동맹의 역량 강화와 관련해서는 양국이 공통의 가치와 상호 신뢰에 바탕을 두고 양자, 지역, 그리고 범세계적 차원에서 포괄적 전략동맹을 지속적으로 구축해나가기 위해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강화할 뿐 아니라 21세기 역내 및 범세계적 안보 협력을 제고해나가기로 했다. 동맹 능력 강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한국은 주요 정보·감시·정찰(ISR) 및 무기체계를 지속 확보해나가고 있으며, 한국은 3월 24일 글로벌 호크 무인정찰기 체계 및 F-35기 확보 의사를 발표한 바 있다.
양국은 확장억제정책위원회(Extended Deterrence Policy Committee)의 작업을 토대로 북한 핵 및 대량살상무기 위협에 대한 확장 억제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 2013년 10월 맞춤형 억제전략을 승인했다. 양국은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신속하고 단호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2013년 3월 공동 국지도발 대비계획(Counter Provocation Plan)에도 서명했다.
넷째, 평화와 안보를 위한 글로벌 파트너십 확대를 약속했다. 한미동맹은 점점 더 범세계적인 특성을 띠어가고 있으며, 양국은 세계 곳곳에서 광범위하게 안보, 개발, 경제 이니셔티브 등의 동반자로서 협력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양국은 이란 핵 프로그램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에 긴밀히 협력하며, 시리아 정권의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력 사용 규탄, 유엔-화학무기금지기구(OPCW) 합동사찰단 활동 지원, 아프가니스탄의 재건과 안정화 협력, 핵 안보, 핵안전조치, 대량파괴무기 및 관련 기술 확산 저지, 핵 테러 방지를 포함한 광범위한 비확산 및 확산 대응 문제 등에 협력하기로 했다.
또한 범세계적인 해적 퇴치 노력, 기후변화와 에너지 분야 협력, 국제 개발협력 촉진, 과학기술·사이버·보건 분야 협력 등 현재 글로벌 차원에서 논의되는 거의 모든 인류 공통의 관심사에 대해 협력할 것을 확인했다. 한미동맹이 이제 말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을 함께하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동맹을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동아시아 동맹국에 책임과 역할 분담 강조할 것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아시아 순방은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약화가 뚜렷한 가운데 이뤄진 것이어서 오바마의 행보에 관심이 쏠렸다. 현재 미국은 아·태지역의 중요성과 재균형 전략의 지속을 강조하고 있으나, 단·중기적으로 오바마 케어로 대표되는 국내 정치 문제, 우크라이나 사태, 중동 문제 등으로 말미암아 미국의 재균형 전략의 추동력 약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최근 중국의 방공식별구역(CADIZ) 일방적 선언이나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듯이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한 강대국 외교에서 무기력함을 드러냈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이 손상됨에 따라 미국은 당분간 유럽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전망되며, 아·태지역과 관련해서는 현상 관리에 중점을 둘 것으로 예상된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미국과 러시아 간의 전략적 불신이 확산되는 계기가 됐고, 일각에서는 신냉전시대로의 진입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들은 환대서양관계(Trans-Atlantic Relations)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미국의 관여와 참여를 더욱 요구하게 될 것으로 전망되며, 이에 따라 이른바 ‘재회귀(Re-pivot)’ 가능성도 거론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미국의 아·태지역 전략은 현 상황 관리에 중점이 두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비록 미국 정부의 의지와 관심이 있다 할지라도 미국이 가용할 수 있는 능력과 자산이 부족한 만큼 아시아 동맹국에 대한 책임과 역할 분담을 강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동 예산 삭감 조치에 따라 지속적인 국방비 감축이 요구되고 있고, 미래전력 확보를 위한 신규 투자는 어려울 것이며, 군사 대비태세도 약화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바마 정부는 미국이 부족한 부분을 동맹국들의 기여와 역할 분담을 통해 보완하는 정책과 함께 동맹국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한 점을 염두에 둘 때, 최근 최악의 상황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한일관계 개선에 의미 있는 진전이 이뤄지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 하겠다. 비록 오바마 대통령이 전쟁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이례적으로 강한 비판을 했지만,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나 일본 전체의 우경화 행태에 대해 언급을 피한 것은 미국으로서도 곤혹스러운 상황일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이 기대했던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한 일본의 확답도 얻지 못했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과 일본은 모두 미국의 동맹국이면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지역경제의 초석이라는 점에서, 더구나 최근 중국의 공세적 외교 태세에 대응해 한일 양국의 안보 협력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절실한 때에 한일관계가 삐걱대고 있는 것은 미국에도 큰 부담일 것으로 추정된다.
4차 핵실험 카드 만지작거리는 북한
세월호 참사로 유례없는 ‘잔인한 4월’을 보낸 가운데 북한이 4차 핵실험이라는 불장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어 가뜩이나 우울한 우리 정부와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더해주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북한은 예상대로 강하게 반발했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전면 대결을 선언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특히 미국에 대해서는 “미국과는 말이 아니라 오직 힘으로 맞서야 하며 전면 핵 대결전에 의한 최후의 결산밖에 없다는 믿음이 더욱 확고해졌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는 곧 계속 핵무력 증강의 길로 가겠다는 선언이다. 북한은 이미 4차 핵실험 준비를 마쳤고, 이제 시기 선택의 문제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은 증폭핵분열탄 실험이나 새로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실험 이상의 조치도 취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향후 정부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바탕으로 밖으로는 북한의 추가 도발에 철저히 대비하는 한편, 세월호 사태로 붕괴된 국민들의 마음을 추스르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