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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 김정은 집권 3년 차 북한 경제의 실상
북한이 화폐개혁을 단행한 직후인 2009년 12월, 쌀 1kg의 가격이 북한 돈 25원이었으나 지금은 5000원으로 무려 200배 가까이 올랐다. 장마당에서는 1달러 대비 환율이 7500원으로, 월평균 4000원을 버는 북한 근로자가 두 달 가까이 일해야 고작 1달러를 버는 셈이다. 이것이 집권 3년 차에 접어든 김정은 체제 북한 경제의 실상이다.
• 최근의 북한 경제를 보고 있노라면 당나라 시인 동백규의 시구가 떠오른다. 봄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지만 여전히 북녘 땅은 한겨울이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섰을 때 잠시나마 가졌던 희망도 얼어붙은 지 오래다. 김정은 집권 3년, 과연 북한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胡地無花草 북쪽 땅에 꽃과 풀이 귀하니
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네.
처음에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 땅에도 봄날의 기운이 스며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경제 회생에 역점을 두고 점진적인 개혁·개방의 길을 선택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선진국 유학 경험, 밀짚모자를 쓴 젊은 지도자, 놀이공원에서의 풀 뽑기, 윗옷 단추를 풀어 젖힌 모습, 부인과 팔짱을 낀 채 나들이하는 장면, 모란봉악단 공연에 등장한 미키마우스와 미국 영화 ‘록키’의 주제곡, 이 모든 것은 ‘겨울의 제국’ 북한에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희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김정은 위원장의 행보는 충격과 불안, 예측 불허 그 자체였다. 장거리 미사일 발사, 3차 핵실험, 대남 위협과 협박, 한반도 긴장 조성, 고모부 장성택 처형 등 겨울의 제국을 더 단단히 걸어 잠근 것이다.
과연 그 의도는 무엇일까? 채 뿌리내리지 못한 정권의 기반과 체제 결속을 다지는 한편, 확고한 권력 장악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시도가 결코 북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김정은의 ‘오판’과 ‘지도력 부재’는 혹독한 대가로 이어지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만장일치로 ‘대북 제재 결의안(2094호)’을 채택했고, 미국도 독자적으로 대북 제재를 강화했다. 동아시아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대북 수출입 전면 금지’ 조치를 시행한 데 이어 그간 후견인 노릇을 해온 중국마저 등을 돌렸다. 중국은 산하기관에 ‘대북 제재를 엄격히 집행하라’는 공문을 하달했으며, 북한의 대외 거래은행인 조선무역은행 계좌마저 폐쇄시켰다. 북한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북한이 이를 자초하고서도 해결할 능력조차 없어 보인다는 데 있다.
핵 개발과 위락시설 만들기에 바닥난 자금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2년 차를 맞아 ‘경제·핵 병진노선’을 주창한 바 있다. 2013년 3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해 ‘경제’와 ‘핵무기’를 함께 발전시킨다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핵 무력과 경제 건설은 상호 모순이다. 핵개발에 많은 돈이 소요되면 경제에 투입되어야 할 재원은 바닥나고 만다.
북한이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고 있는 각종 사업들도 문제점이 적지 않다.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우상화 동상 건립에 막대한 자금이 사용되고 있으며, 더 나아가 특권층을 대상으로 ‘보여주기식’ 사업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최근 들어 건설된 마식령스키장, 미림승마장, 문수물놀이장, 고급 명소 해당화관 등은 일반 주민이라면 가볼 엄두도 내지 못할 곳들이다. 문수물놀이장의 경우 북한 주민이 이용하려면 한 달 급여인 북한 돈 4000원을 줘야 할 정도로 비싼 가격이다.
이처럼 호사스러운 위락시설과는 달리 북한 경제는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 북한이 대외적으로 공표한 장성택 사형 판결문에서 이러한 실상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장성택은 나라의 경제 실태와 인민 생활이 파국적으로 번지는데도 현 정권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한다는 불만을 군대와 인민이 품게 하려고 시도했다.’
결국 경제 정책의 실패를 자인한 셈이다. 북한 경제의 피폐상은 여러 증언과 사실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배급제는 무너진 지 오래이고, 주민들은 스스로 생존의 길을 찾아나선 상황이다. 전력난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으며, 원부자재 부족으로 공장 가동률이 20%대로 추락했다. 생산재와 소비재 유통 또한 거의 마비되었고, 물가와 환율은 폭등했다. 화폐개혁 직후인 2009년 12월, 쌀 1kg의 가격은 북한 돈 25원이었으나 지금은 5000원으로 무려 200배 가까이 올랐다. 장마당 환율도 요동치는 것은 마찬가지다. 장마당에서 미화 1달러는 북한 돈 7500원에 달해 북한 근로자의 월평균 급여가 4000원 정도임을 감안하면 두 달 가까이 일해야 1달러를 벌 수 있는 셈이다. 가히 메가톤급의 쓰나미나 다름없다.
빈부 격차도 극심해 ‘사회주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평양과 지방, 간부와 주민의 생활수준 괴리는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특권층 가족들은 고급 백화점에서 명품 쇼핑을 즐기는 반면, 일반 주민들은 장마당에서 장사를 해야 겨우 쌀과 땔감, 옷을 살 수 있다. 농민들은 협동농장 일에 흥취를 잃고 개인 텃밭 가꾸기에만 열중하고 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처한 것이다. 김정은 정권이 내부적인 경제개혁 조치를 취하고 있는 이유가 이 점에 있다. 이른바 새로운 경제 개혁조치인 6·28 방침이 바로 그것이다.
다급한 식량 사정, 생존을 위한 경제 개혁
경제 개혁 바람이 먼저 휘몰아친 곳은 농촌이다. 식량 문제 해결이 급선무라는 판단 아래 기존의 ‘협동농장’ 체제가 ‘가족 및 개인 책임 영농’으로 바뀌고 있다. 올해 1월에 처음 개최된 ‘농업 분조장 대회’ 이후 ‘포전 담당제’가 확대됐다. 이 제도는 3∼5명의 농민에게 일정한 면적의 논밭을 맡겨 생산 의욕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도입되었다.
경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기업 독립채산제도 확산되고 있다. 기업의 생산물 가운데 잉여분을 독자 매각하거나 종업원에게 분배하는 제도다. 조선신보에 따르면 2013년 11월 6일 김정은 위원장이 경제 관리 개선을 지시한 뒤 “평양기초식품공장이 시범단위가 됐다”면서 “전반적인 경제 관리에서 개변(근본적으로 바꿈)을 가져오기 위한 연구를 하면서 그를 현실로 구현해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에 따라 성과에 따라 근로자의 급여 차이가 수백 배에 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북한의 계획경제가 이렇게 파탄을 맞이하게 되자 대다수 주민들은 사적 시장을 통해 살아갈 수밖에 없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북한의 시장화 비율이 약 83% 규모라고 분석하고 있다. 북한 사회의 특성상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지만, 2008년 유엔 북한 인구조사 통계를 토대로 계산하면 ‘16세 이상인 약 1737만 명 가운데 약 83%가 시장을 통한 비공식 경제활동에 종사한다’는 것이다.
북한에서나 볼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시장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수시로 이동하는 메뚜기 시장을 필두로 ‘달리기장’, ‘똑똑이장’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달리기장’은 망을 보는 사람을 두고 단속요원이 급습하면 보자기째 싸들고 달린다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다. ‘똑똑이장’은 일종의 방문 판매다. 상인들이 각 가정을 방문해서 문을 ‘똑똑’ 두드려 물건을 판매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제는 ‘금전 만능주의’ 등으로 북한 주민들의 의식도 크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휴대전화도 주민들의 생활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북한의 휴대전화 보급은 200만 대를 넘어 올해 연말까지 300만 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 정권은 의욕적으로 경제 개혁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경제특구 조성이다. 작년 5월 ‘경제개발구법’을 제정한 이후 함경북도 3개, 함경남도·황해북도·자강도에 2개, 평안북도·강원도·양강도·남포시·개성시에 각각 1개 등 총 14개 특구가 지정됐다. 지방 맞춤형 소규모로 조성될 이 특구는 농업과 관광, 무역 중심으로 개발될 예정이다.
이 중에서도 북한이 최우선으로 추진하고 있는 지역은 원산 특구다. 마식령스키장이 있는 이 지역의 개발 대상 규모는 약 414.8km² 로서 예상 투자액은 총 78억 달러에 이른다. 원산지구와 금강산지구로 나누어 2단계로 개발한다는 계획인데,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원산, 원산비행장, 울림폭포, 마식령스키장을 개발하는 것이 1단계 목표다. 이후 2단계로 2018년부터 2025년까지 석왕사, 동정호, 시중호, 삼일포, 외금강, 내금강, 해금강을 개발할 예정이다. 그러나 최근 상황을 보면 마식령스키장은 개장했지만 접근로가 확보되지 않는 등 황량하기는 매한가지다.
신의주 경제특구도 주목되는 곳 가운데 하나다. 2013년 11월 11일, 조선중앙통신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내용을 보도하면서 “평안북도 신의주시 일부 지역에 특수경제지대를 내오기로 했다. 특수경제지대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권이 행사된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 지역에 1000억 달러를 유치해 82km² 규모의 산업, 첨단기술, 금융, 무역, 관광 등 복합형 경제특구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만약 신(新)압록강대교가 2014년 상반기 중에 완공되면 신의주 경제특구 개발도 곧 착수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강령 국제녹색시범기지도 북한이 주력하는 곳 가운데 하나다. 중국의 개혁·개방 시절 활동했던 중화권 투자 그룹을 끌어들여 황해남도 강령군에 무공해산업, 관광 등 국제녹색시범기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원산과 칠보산, 백두산 등에도 관광특구를 조성하는 등 북한은 특구 개발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간략하게 살펴본 것처럼 계획을 원대하게 수립했지만 가장 큰 난제는 역시 ‘자금’이다. 외자 유치가 관건이지만 제도와 인프라 부족, 신용도 추락 등으로 그것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돈’이 없다면 ‘계획’도 무용지물이다. 위기의 북한,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개성공단 정상화와 국제화가 필요한 이유
이제 겨울의 제국 북한에도 신록이 싹터야 한다. 개혁과 개방의 봄바람을 불러일으켜 얼어붙은 경제 체질을 녹여야 한다. 북한이 경제적 성과를 내려면 한국과의 협력이 절대적이다. 그 해결의 열쇠는 북한이 갖고 있다. 신뢰를 보여주려면 이미 합의한 ‘개성공단 발전적 정상화와 국제화’를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이행 등도 필요하다. 북한의 대외 신뢰도를 높이고 경제 회생에 도움이 되는 각종 조치들을 전향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한 ‘드레스덴 평화통일 구상’은 북한 주민들의 생활경제 향상은 물론 경제 발전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한시라도 빨리 협상 테이블에 나서는 한편, 신뢰와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다. 인내심을 갖고 북한 경제를 올바로 유도해야 하며, 남북한 경제의 새 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옛 선인들은 어려움이 닥칠 때 ‘봉산개도 우수가교(逢山開道 遇水架橋)’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산이 길을 막으면 길을 내고, 물이 길을 막으면 다리를 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긴 겨울의 시기는 이제 지났다. 따뜻한 봄바람이 저 북녘 땅까지 미칠 수 있도록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의지와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