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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김진명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 ‘동북아 정세 변화와 한반도 통일’을 주제로 열린 이날 포럼의 토론 범위는 단순히 한반도 정세를 분석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일본, 중국, 미국을 아우르는 동북아시아의 현재 체제 속에서 어떻게 한반도 통일의 길을 모색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한국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일종의 외교적 ‘전략’과 ‘전술’에 대한 논의까지 이뤄졌다. 250여 명의 청중은 개회식, 1·2세션, 종합정리와 폐회 후 다과회에 이르기까지 약 5시간에 걸친 포럼 내내 자리를 지켰다. 일본 특유의 조용한 청중이었지만, 곳곳에서 수첩이나 노트를 꺼내 토론자들의 주요 발언을 메모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개회사에서 기미야 다다시 현대한국연구센터장은 “한국이 주도하는 형태로 평화적 통일이 달성될 경우 최대 이익을 얻을 나라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볼 때 일본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미야 센터장은 “통일은 일본에도 ‘대박’일지 모른다”면서 “통일에 북한을 어떻게 참여시킬 것인가, 일본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는 한일 양국이 협력해야 할 최대 과제”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과제를 눈앞에 두고 역사, 영토 문제로 갈등하는 현 상황은 양국에 큰 손실”이라며 한일관계 회복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현경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도 개회사를 통해 “‘통일 대박’은 한반도 분단 체제의 극복만이 최종 목표가 아니다”라며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와 아시아, 나아가 세계를 위한 평화 번영의 어젠다”라고 말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 대해 현 수석부의장은 “한반도 통일을 통해 한반도가 남방경제와 북방경제의 소통기지가 되고 남방의 풍부한 인적, 물적 자원이 한반도를 거쳐 북방경제권으로 이동하고 북방의 다양한 천연자원이 남방경제를 살찌우는 원대한 지정학적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현 수석부의장은 “(통일의) 가장 큰 수혜자는 일본이 될 것”이라며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거론했다. 그는 “흔히 한일관계는 겨우 냇물 하나를 사이에 둔 가까운 이웃이라는 뜻에서 ‘일의대수(一衣帶水)’라 일컬었다”면서 “한일 양국은 과거 역사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바탕 위에서 새로운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동북아 전체에 이익 되는 통일 이끌어야
오공태 민주평통 일본부의장도 환영사를 통해 “‘통일은 대박’이라는 박 대통령의 말씀처럼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우리가 짊어진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가장 크고 빠른 미래지향적 해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축사에는 이병기 주일본 한국대사와 박근혜 대통령 당선 직후 아베 신조 총리의 특사로 한국에 왔던 누카가 후쿠시로 한일의원연맹 회장이 나섰다.
누카가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씀하시고 한국 국내에서도 평화통일을 향한 기운이 고조되고 있다고 듣고 있다”며 “(통일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고 주변 국가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웃인 우리 일본 국민들도 한반도 평화통일의 추진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며 “북한의 경제발전을 위해 경제 지원을 할 각오를 우리(일본)는 갖고 있다”고 했다.
이병기 대사는 “한일 양국은 민주주의와 인권 등 핵심적 가치를 공유하는 소중한 이웃일 뿐만 아니라 북한 핵문제의 해결과 한반도 평화 정착, 나아가 동북아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위한 동반자”라며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위해서는 일본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조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첫 번째 세션인 ‘최근 북한 정세와 한반도 통일을 위한 일본의 역할’에 참가한 양국의 전문가들은 최근 북한 김정은 정권이 경제 발전을 염두에 두고 개방으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에 한일 양국이 협력해서 동북아 전체에 이익을 줄 수 있는 형태의 한반도 통일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했다.
와세다대학교의 이종원 교수는 “북한은 공식적으로는 (핵·경제) ‘병진(竝進)노선’을 표방하면서 전통적 양면 전략의 구도를 유지하고 있다”며 “그러나 ‘선군체제’를 사실상 수정하고 경제 건설에 방점이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북한이 유화 자세를 통해서 얻으려 하는 것은 (외부의) 경제 제재 철폐”라며 “미국의 원칙적 자세나 중국 시진핑 주석 체제의 미국에 대한 협조와 북한에 대한 압력을 돌파하기 위해 북한은 한국과 일본에 접근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서대 국제학부의 신정화 교수도 “김정은 시대는 경제의 시대, 개방의 시대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미 시장의 효율성을 경험한 북한 주민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시장의 확대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김일성 시대의 ‘천리마 속도’, 김정일 시대의 ‘희천 속도’ 대신 김정은은 ‘마식령 속도’를 내세우면서 외부 자본 확보에 과거보다 훨씬 적극적인 모습”이라며 “북한이 어느 때보다 경제 개혁과 개방을 적극 추진하는 것은 한국은 물론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좋은 기회”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마이니치신문의 사와다 가쓰미 서울지국장은 “북한의 ‘병진노선’이 경제 건설을 위한 것이란 점에 대해서는 다른 시각이 존재할 것 같다”면서 “당장 경제가 나쁘다고 정권이 붕괴하는 것은 아니며 북한 정권은 체제 존속을 더 우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국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김정은은 당과 군의 일치화를 통해 경제 건설을 추진하려는 것 같다”며 “그러나 북한에서 (시장 등) 비공식적 영역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이런 것들이 체제 존속을 위협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 정권에 대한 평가는 자연스럽게 통일 논의로 이어졌다. 이종원 교수는 “기본적으로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의 한일 간 협력이 한일관계 정상화의 제2단계이며 ‘역사 화해’의 큰 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교류와 협력이라는 ‘작은 통일’부터 시작하더라도 어느 시점에는 북한 비핵화 문제와 충돌하게 되므로 관계국이 연계해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종국 위원은 “일본은 ‘반일(反日)적인 강력한 통일 한반도’를 염려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민주화된 통일한국’은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안정시키고 국제분쟁 요인을 해소하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라고 했다.
‘통일외교’와 한일, 한중, 중일관계
제1세션에서 이즈미 하지메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통일외교’를 위해서라도 한일관계 회복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곧 ‘동북아 정세 변화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주제로 삼은 제2세션 토론으로 이어졌다.
이즈미 교수는 “통일 한반도가 일본에 적대적이지 않고 좋은 관계가 된다고 생각하면 일본은 통일을 지지할 것”이라면서도 “지금처럼 한일관계가 악화된 상태에서는 ‘한국 주도의 통일이 (한일관계) 문제를 2배, 3배로 불거지게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갖게 한다”고 말했다. 이즈미 교수는 “민주주의나 시장경제 같은 공통의 가치에만 기댈 수는 없고, 한국어로 말하자면 ‘정서적’으로 사이가 좋아져야 한다”며 “이것을 뛰어넘어야 일본이 통일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두 번째 세션에 등장한 니시노 준야 게이오대 교수도 “지금 일본 국민의 한국에 대한 감정은 굉장히 악화돼 있다”면서 “일본과 통일 한반도 관계를 생각했을 때도 아주 나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니시노 교수는 “박근혜정부와 아베 정부의 수뇌부 간 긴장 관계가 양국관계는 물론 국민 정서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상준 연세대 교수는 “일본은 경제적으로 잘나갈 때 ‘일본이 뭘 잘못했느냐’고 목소리를 내면서 우경화하는 경향이 있다”며 “현재 한일관계도 일본이 우경화란 첫 수를 두고 한국이 반응하면서 악순환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하코다 데쓰야 아사히신문 논설위원은 “지금 양국 수뇌부에선 한일관계라는 게임을 어떻게 진행하고 어디에 최종 목표를 둘 것인지에 대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강효상 조선일보 편집국장은 “한일관계는 일본의 ‘진정성’이 있으면 해결될 수 있다”며 “과거사를 부정하는 행동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점을 아베 정부가 언행으로 보여주면 된다”고 말했다.
스즈키 게이스케 자민당 국회의원은 한일관계 회복의 가능성을 중국에 대한 공동 대응에서 찾아야 한다는 취지로 얘기했다. 스즈키 의원은 “중국이 군사 대국화할수록 일본이나 한국이 단독으로 중국에 대응하기 어렵다”며 “한·미·일이 연계해서 동맹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바로 한일 양국이 (중국에 대해)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니시노 교수는 “중국의 부상에 대해 한국과 일본의 견해 차이가 있다”며 “일본과 중국 사이에는 센카쿠 열도란 영토 문제가 존재해서 한일 양국이 보는 중국관이 일치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니시노 교수는 “(한일이) 서로 (중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2세션의 사회를 맡은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중국 문제에 대해 이미지와 현실의 괴리가 있다”며 “(중국은) 한국과 중국이 안중근기념관을 함께 건설한다며 한중이 일본을 압박하는 것 같은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 하겠지만 사실 현실과 이미지는 다르다”고 말했다.
김상준 연세대 교수도 “중국에 대해서 한국과 일본이 공동 보조를 취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며 “일본이 ‘세계에 공헌하는 국가’란 이미지와 ‘침략의 과거를 긍정하는 국가’란 두 가지 이미지 사이에서 과거사 문제만 확실히 해결하면 중국에 대해 더 공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세션의 논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한일관계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사는 청중들의 관심도 높았다. 제2세션 직후 진행된 청중과의 질의응답 순서에서 민단 소속의 80대 재일교포 여성은 자민당의 스즈키 의원에게 “일본 공무원으로서 위안부를 모집했던 요시다 세이지 씨를 직접 만나서 (강제 동원에 대한) 얘기를 들은 적 있다”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스즈키 의원은 “법적으로만 보자면 정부가 강제로 계약하거나 납치했다는 상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일포럼이 끝난 뒤에도 많은 참석자들은 현장에 남아서 통일의 비전과 한일관계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교환했다. 민주평통이 제공한 토론의 장은 직접 포럼의 토론자나 사회자로 나선 사람에게나 청중에게나 똑같이 한반도 통일의 꿈과 동아시아 공동 번영의 비전을 공유해보는 좋은 기회가 됐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