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호 > 통일칼럼
통일칼럼
손현수 평화문제연구소 부소장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의 독일 국빈 방문 시 가장 관심을 끌었던 일정은 드레스덴공대에서의 연설이었다. ‘동독의 도시’ 하면 흔히 베를린이나 라이프치히를 떠올리는데 박 대통령이 드레스덴에서 ‘통일 구상’을 밝혔으니, 이곳이 대체 어떤 도시이고 우리의 통일에 무슨 의미를 주는지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필자가 속한 연구소는 독일의 한 재단과 오랫동안 공동사업을 해왔으며, 이 중에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실시하는 ‘독일 통일 현장 연수’ 프로그램이 있다. 독일 통일직후 필자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드레스덴을 방문했다.
당시 그곳은 도시 전체가 회색빛이었다고 기억된다. 지난해에는 드레스덴의 실리콘작소니협회가 연수기관에 포함돼 관련 자료들을 접하게 되었다. 그래서 박 대통령이 왜 이곳을 방문했고, 여기서 통일 구상을 밝혔는지 공감이 갔기에 이 글을 통해 함께 생각해보겠다.
드레스덴은 한마디로 독일 통일의 성공을 상징하는 대표적 도시다. 베를린이 통일 자체를 의미한다면, 드레스덴은 통일의 결과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박 대통은 ‘통일 대박론’의 실증으로 드레스덴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독일이 통일된 이후 구 동독지역의 많은 도시들은 체제 변화를 감당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드레스덴은 20년 만에 구 동독지역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로 발돋움했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첨단산업도시로 도약했다. 이렇게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드레스덴은 독일 동부에 있는 작센주의 주도(州都)로서 800년의 전통을 가진 동유럽 문화의 중심지다. 분단시절 동독 정부는 반도체 기술 분야의 연구개발, 대학이 보유한 인력, 대규모 국유기업의 연계를 통해 드레스덴을 전자공학 산업기지로 만들었다.
한편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 직후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드레스덴을 방문해 독일 통일의 당위성과 독일 민족의 자결권을 역설하는 역사적 연설을 했다. 이를 계기로 서독은 ‘점진적 통일’에서 ‘급진적 흡수통일’로 통일방식을 바꾸었고, 다음 해 동서독은 통일을 이뤘다.
독일은 통일과 동시에 경제구조 개선사업을 추진했다.
시장경제에 적응하지 못한 구 동독의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고사라져갔으며, 실업률은 급상승했다. 실업률 증가와 함께 동독지역 주민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독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에 연방정부는 드레스덴의 산업 기반과 연구인력을 토대로 산업화를 촉진하고, 다국적 반도체 기업의 투자를 적극 유치했다. 그 결과로 유럽 최대의 반도체 생산 네트워크가 형성된 것이 ‘실리콘 작소니’다.
지난해 연수단 간담회에서 잉고 플레밍 드레스덴 시의원은 통일 후 드레스덴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요인을 △구 동독 시절부터 산학연이 연계된 전문인력의 존재 △다른 지역보다 우세한 사회간접자본 △투자 유치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 지원을 꼽았다. 다시 말해 드레스덴지역이 가진 장점을 적절히 활용하고 정부가 적극 지원했기 때문에 오늘의 결과를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동서독 두 체제의 통합 과정은 한반도 통일전략에 많은 시사점을 제시한다. 한반도의 통일 여건이 독일과는 차이가 있지만, 통일 후 북한지역에서 일어날 변화를 선도하는 데는 동독지역의 경험이 매우 유의미하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통일 구상에는 국제협력 부문의 비중이 크다. 통일한국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드레스덴의 경험을 모델로 북한지역 각 도시가 가진 장점을 살리면서 국제적 투자를 적극 유치하는 방식으로 북한 재건사업의 청사진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