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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호 > 포커스

포커스 / 북한 최고인민회의 개최 이후 남북관계

북한 최고인민회의 개최 이후 남북관계
특사 교환과 고위급회담으로 합의점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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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14년 4월 9일 평양 만수대의 사당에서 열린 제13기 최고인민회의 제1차 회의의 주석단 모습.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첫 줄 가운데) 좌우에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최룡해 군총정치국장이 앉아 있다.

4월 9일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3기 1차 회의 결과, 장성택 측근들이 교체된 것 외에 눈에 띄는 내각 개편은 없었다. 경색된 남북관계의 복원을 위한 본격적인 노력은 6·4 지방선거 이후 8·15 광복절을 전후한 시기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올해도 어김없이 한반도의 봄은 잔인했다. 봄의 정취를 느끼기가 호사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매년 한반도의 봄은 긴장의 연속이다. 키 리졸브, 독수리, 쌍룡상륙훈련 등 한미 합동군사연습이 마무리 될 즈음인 지난 4월 9일 북한에선 김정은 시대를 대비한 최고인민회의 제13기 1차 회의가 열렸다.

김정은 시대가 열린 이후 새롭게 선출한 대의원들로 구성한 회의인 만큼 헌법 개정의 가능성과 함께 권력구조 및 인사 개편의 폭이 클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최룡해가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출된 것 이외에 눈에 띄는 내각 개편과 새로운 경제 발전 계획은 없었다. 다만 장성택과 가까운 인물로 알려진 문경덕 전 평양시 당 책임비서가 김수길 전 군총정치국 조직담당 부국장으로 교체된 것, 김경희와 관련이 깊은 경공업부가 폐지된 것, 그리고 국방위원회 일부 인사 개편이 있었다는 점 등을 주목할 수 있다.

‘국가 주권의 최고 국방지도기관’인 국방위원회의 인사 개편에서 숙청된 장성택의 자리에 최룡해가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출되고, 김정일 시대 인민군 총참모장과 인민무력부장을 역임했던 군원로인 김영춘이 부위원장에서 탈락했다. 주규창 당중앙위원회 기계공업부장, 백세봉 제2경제위원장이 국방위원회 위원에서 탈락하고,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인 조춘룡이 국방위원회 위원에 발탁되는 등 소폭의 국방위원회 인사 개편이 있었다. 그러나 최룡해는 최근 북한군을 통제하는 총정치국장에서 해임되고 서열이 내려간 노동당 비서에 임명된 사실이 확인됐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지난 4월 1일 백두산 ‘삼지연 연설’에서 “조성된 정세는 매우 엄중하다”고 말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 당국은 엄중한 현 정세에서 새 진용과 정책을 내놓아도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변화보다는 현상 유지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삼지연 연설에서 미국과 적대세력들이 북한을 “정치적으로 말살하고,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며, 군사적으로 압살하기 위한 책동을 더욱 악랄하게 감행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현 정세를 “그대로 방임할 수 없는 엄중한 사태”로 규정했다. 김정은은 “미국과 적대세력들의 흉심이 변하지 않았으며 변할 수도 없다”고 단정하고 당분간 외부 위협을 내세우면서 체제 결속에 주력할 것이란 속셈을 드러냈다.

유명무실해진 비방·중상 중단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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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13기 최고인민회의 1차 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재추대된 후 주석단 간부들의 기립 박수를 받고 있는 김정은.

한미 군사연습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면서 긴장 국면이 완화되고 있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김일성 생일이 있는 4월을 축제의 달로 보낸다. 북한은 축제 분위기를 해치는 도발을 자제하면서 국면 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부터 북한은 권력 개편 마무리, 남북·북미·북일관계 등 대외관계 확장, 제재를 풀기 위한 6자회담 재개 등 대내외 현안 해결에 주력할 시기로 접어들었다.

최근 한반도 정세가 다소 완화되고 있지만 남북관계는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연초 남과 북의 지도자들이 통일 대박론과 중대 제안을 내놓고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혔다. 지난 2월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신뢰 조성의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는 비방과 중상 중단 합의를 이뤄냈다. 하지만 합의 이후 오히려 비방, 중상의 수위가 높아졌다.

늘 그렇듯 남과 북은 합의 이후 이념과 체제의 차이에서 오는 해석의 차이로 갈등을 반복하고 있다. 우리는 다원주의 사회의 속성상 언론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고 하면서 일부 언론의 북한에 대한 비방, 중상을 통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왜 비방, 중상 중단을 약속하고 이를 방치하느냐고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최근 북한 언론들이 주민들을 동원해서 박근혜 대통령을 실명으로 비난한 것은 남측의 언론정책을 트집 잡기 위한 것이다. 남측이 비방, 중상을 통제할 수 없다면 그들도 주민들의 주장을 그대로 내보낼 수밖에 없다는 식이다.

지금 북한 정권이 가장 아파하는 부분이 이른바 ‘최고존엄’에 대한 비방, 중상 문제다. 남쪽 일부 언론에서 무차별적으로 쏟아내는 김정은 부부와 관련한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의 폭로는 ‘수령의 무오류성’을 보장하는 북한 체제의 속성상 참기 어려운 부분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구 동독지역인 드레스덴을 방문해서 인도적 문제 해결과 지원, 민생 인프라 건설 지원, 남북 주민 간 동질성 회복 등 3대 제안을 할 무렵, 김정은 제1비서는 이른바 ‘백두혁명의 성지’ 삼지연을 방문해서 북한군 연합부대 지휘관들을 모아놓고 “나를 따라 앞으로!”를 외치며 ‘미제와 총결산하기 위한 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지시했다. 라인 강의 기적을 벤치마킹해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남쪽 최고지도자가 세계를 향해 통일 구상을 밝히는 데 비해, 북쪽 지도자는 북한군 지휘관을 백두산 산골에 모아놓고 “오직 총대로 최후 승리를 이룩해야 한다”고 하면서 ‘반제투쟁’을 외치고 있다. 최근의 남북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지난 3월 28일 박근혜 대통령이 드레스덴 선언을 발표한 이후 언론매체를 통해서 이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였던 북한은 4월 12일 국방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황당무계한 궤변으로, 논의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면서 사실상 거부 입장을 밝혔다.

북한이 문제 삼은 것은 민족 내부 문제를 남의 땅에서 말한 것,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 해소와 관련한 언급이 없는 것, 북한 주민들의 고통과 배고픔 등 경제난을 지적한 것 등에 관한 것이다. 드레스덴 선언에서 밝힌 인도적 문제 해결, 인프라 구축 지원, 동질성 회복 자체를 반대했다기보다 흡수통일이 이뤄진 독일 땅에서 북한의 아픈 부분을 건드려 상호 비방과 중상을 하지 않기로 한 약속을 어겼다는 부분에 더 격분한 것으로 보인다. 내심 비방과 중상 및 적대적 군사행동 중단, 5·24 조치 해제 등과 관련한 획기적 제안을 기대했던 북한을 향해 산모와 유아에게 영양과 보건을 지원하겠다고 하니 “없는 사실까지 날조하여” 그들에 대한 비방, 중상에 열을 올렸다고 발끈하고 나섰다.

북한은 드레스덴 3대 제안에 대해 그들의 경제난을 부각시키면서 정권과 주민을 분리하여 접근하는 체제통일(흡수통일) 정책이라고 의심하면서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경제난 등 북한의 치부를 건드린 데 대해 당장은 발끈했지만 드레스덴 구상 자체를 전면적으로 거부한 것은 아닐 것이다.

상호 진정성을 확인하는 절차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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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북한군 제1차 예술선전대의 공연을 관람하는 김정은(앞줄 가운데).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에 당선된 뒤 첫 공개 행보다.

한미 군사연습 기간 동안 남북관계가 다시 경색되고, 북한이 드레스덴 통일구상에 부정적 입장을 보임으로써 남북관계 개선 노력은 다시 난관에 봉착했다. 남쪽의 6월 지방선거 일정을 고려해볼 때 군사연습이 끝난다고 해도 당장 남북대화를 추진할 동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결국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본격적인 노력은 지방선거 이후 8·15 광복절을 전후한 시기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지난 이명박정부 시기 남북관계가 장기간 단절되면서 화해협력의 기반이 무너졌다. 박근혜정부에 들어와서 고위급 접촉을 추진하는 등 관계 복원을 모색하고 있지만 핵문제 등 현안이 많아 짧은 시간 안에 관계를 복원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3월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노선을 채택한 북한은 핵능력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다.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은 6년여 동안 열리지 않고 있다.

북한은 연초부터 중대 제안을 통해서 비방, 중상과 적대적 군사행동 중단 및 핵재난 방지를 위한 상호 조치를 위해 노력할 것을 제안했다. 한미 군사연습이 끝나는 것을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3대 제안과 북한의 중대 제안 사이에 합의점을 찾기 위한 남북 고위급회담 또는 특사 교환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상호 진정성을 확인하는 절차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국방위원회 대변인 담화에서 “통일 문제는 예외 없이 북과 남을 서로 오가며 논의하고 그와 관련한 성명이나 선언을 채택했다”고 주장한 대목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통일 문제 논의를 위한 특사 교환의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시사한 것인지도 모른다. 북한 유일체제의 속성을 고려할 때 남과 북의 최고지도자의 신임을 받는 특사들이 나서 현안을 해결하는 것이 빠른 방법일 수 있다. 지방선거 등으로 당장 특사 교환이나 남북 고위급 대화를 추진하기 어렵다면 민간단체들의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부터 확대해나가면서 신뢰를 쌓아나가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 정부도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 장기간 한미 합동군사연습과 언론들의 대북 비방, 중상을 방치하면서 북한 체제의 붕괴를 촉진하는 급진 통일을 추진할 것인지, 아니면 드레스덴 선언대로 인도적 문제 해결과 지원, 인프라 건설 지원, 동질성 회복 등을 추진하면서 점진적 통일을 추진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독일 통일에서 배울 핵심 교훈은 ‘접근을 통한 변화 정책’과 ‘작은 발걸음 정책’이다. 말이 아닌 작은 실천들이 모여야 통일이 도둑같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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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월 9일 실시된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위해 평양 주민들이 투표소 앞에 줄지어 서 있다. 한국의 국회의원 총선거에 해당하는 이번 선거는 선거구마다 단독 등록한 후보에 대해 찬반을 묻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photo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소장이며 대통령자문정책 기획위원회 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운영위원,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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