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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말하다│Today남북

북한의 봄바람은 무슨 내음일까 글. 이지순 연구교수(북한대학원대학교)

여린 가지에는 새순이 돋고, 담장 밖으로 개나리꽃이 수줍은 얼굴을 내민다. 손끝으로 만져지는 바람은 부드럽고 따뜻하다. 봄은 향기로 오고, 눈으로 오고, 숨결로도 온다. 냉이국 한 그릇에 마시던 봄내음이 성큼, 완연해졌다.

T.S.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봄에 되살아나는 라일락 뿌리가 현대문명의 비정함과 비극성을 드러내기 때문에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하였다. 그러나 만물이 얼어붙어 있던 겨울을 보내고 맞이한 봄은 절로 흥취를 자아낸다. 조선 전기 때 정극인은 단종폐위 후 낙향하여 살다가, 고향인 전북 태안의 봄 경치를 ‘상춘곡(賞春曲)’으로 읊었다. “홍진(紅塵)에 묻힌 분네 이내 생애 어떠한고”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봄의 아름다운 풍경을 예찬하였다.

아름다운 봄 풍경을 장식하는 것은 꽃이다. 노란 개나리꽃과 함께 진달래꽃은 우리에게 친숙한 봄꽃 중의 봄꽃이다. 산자락에 핀 연분홍색 진달래꽃은 옛 여인들에게는 화전놀이라는 유희의 즐거운 구실이었으며, 진달래 꽃잎으로 담근 ‘두견주(杜鵑酒)’는 봄의 향취를 만끽하는 풍류였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이별하는 님의 발치에 뿌리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정한(情恨) 속 봄 풍경을 보여준다.

진달래꽃은 북한에서도 봄의 상징 꽃이다. 척박한 산에서도 잘 자라는 진달래꽃은 강한 생명력으로 겨울을 이겨낸 봄의 전령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그러나 어디에나 피어있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진달래꽃은 북한에서 우리와 다른 의미로서 존재한다. 겨울이 주는 혹독한 고난을 극복하고 맞이하는 봄은 어디에서나 이야기의 원형이 된다. 북한에서 일제가 겨울의 상징이라면 봄은 해방된 조국이고, 그것은 진달래꽃으로 상징된다. 우리가 진달래꽃을 보고 김소월 시를 떠올린다면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혁명역사와 김정숙을 떠올린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평양 시민들이 손에 들고 흔들던 것은 진달래꽃이다. 텔레비전 화면으로 보이던 평양시민과 그들의 손에 들린 진달래꽃은 깊은 인상을 남겨 주었다. 평양 한 가운데 세워진 개선문에도 진달래꽃이 새겨져 있다. 김일성의 항일독립운동 업적을 찬양하는 개선문의 아치형 테두리에는 김일성의 70회 생일을 상징하는 70개의 진달래꽃이 부조되어 있다. 게다가 북한에서 진달래꽃은 ‘김정숙 꽃’으로도 불린다. 김정숙이 김일성에게 진달래꽃을 바치며 항일투쟁 의지를 다졌다는 일화는 북한 문학과 예술에서 널리 회자된다.
진달래꽃 북한의 진달래꽃이 북한의 역사 드라마를 만들어낸다면, 우리는 꽃의 계절을 맞아 다양한 봄꽃 축제를 벌인다. 벚꽃 축제는 전국에서 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한에서 진달래꽃보다 더 사랑받는 꽃은 벚꽃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이 진달래꽃을 귀하게 대접하는 것에 비해 벚꽃은 거의 감상되지 않는다. 벚꽃은 북한에서 일제의 상징처럼 알려진 꽃이다. 게다가 따뜻한 지방에서 핀다는 속성 때문에 보기 힘든 꽃이기도 하다. 4월 벚꽃 축제가 우리의 도로와 꽃길을 북새통으로 만든다면, 북한의 4월은 북한의 최대 명절인 4.15 태양절 축제로 들썩인다.

북한의 신학기는 4월 1일에 시작한다. 김일성의 생일을 기념하는 태양절을 맞이해 북한은 전국이 대청소를 한다. 가정과 학교, 사업장 모두 겨우내 쌓였던 먼지를 털고, 닦는다. 천장의 묵은 때를 벗겨내고, 벗겨진 페인트를 덧칠하고, 유리창도 깨끗이 닦고 또 닦으며 새단장을 한다.
청소와 함께 시작하는 4월, 북한의 어린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봄 선물은 태양절 때 주어지는 선물꾸러미다. 콩사탕, 들쭉단물(블루베리 젤리), 카라멜, 알사탕, 손가락과자 등이 가득 들은 사탕과자선물은 아이들이 누구보다 봄을, 태양절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도록 한다. 대규모로 소년단 입단식 행사도 함께 치루는 4.15 태양절이 끝난 5월이면 북한에서는 우리의 봄소풍에 해당하는 야유회를 간다.

북한에서는 소풍을 ‘야유회’, ‘원족’, ‘등산’, ‘들놀이’라고 부른다. 대개 인근 동산으로 가는 야유회에서는 밧줄당기기, 공 이고 달리기, 보물찾기, 장기자랑 등을 한다. 소풍의 백미는 단연코 도시락이다. 남한의 소풍 도시락 일등 메뉴가 김밥이라면, 북한의 소풍 도시락은 밥이다. 여기에 평소에 먹기 힘든 삶은 계란이나 고기, 볶은 김치 등을 반찬으로 싸오기도 한다. 떡은 매우 귀한 음식이지만 간혹 간식으로 싸 오기도 한다. 여기에 사탕과자나 과일단물(주스) 등을 가져오기도 한다. 소풍에서 최고의 인기인은 ‘바람잡이’ 잘하는 학생이다. 팀 별로 하는 밧줄당기기, 공 이고 달리기와 같은 시합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나 경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응원단장, 장기자랑에서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사람이 소풍 때 최고의 인기를 얻는다.

북한에서는 소풍을 ‘야유회’, ‘원족’, ‘등산’, ‘들놀이’라고 부른다. 대개 인근 동산으로 가는 야유회에서는 밧줄당기기, 공 이고 달리기, 보물찾기, 장기자랑 등을 한다. 5월이면 남한의 대학은 축제로 들썩인다. 다함께 크게 어울려 화합한다는 의미에서, 대학 축제는 보통 대동제(大同祭)라고도 불린다. 학과별 행사와 놀이 등이 어우러지는 대학 축제가 남한 젊은이들의 낭만이라면, 북한 대학생들은 남한의 대학축제와 같은 행사 대신 8.28청년절을 크게 기념한다. 북한의 청년동맹이 우리의 학생회와 같은 조직처럼 보이지만, 국가 지도하에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학생회와는 많이 다르다.
하루가 다르게 따뜻해지는 봄날, 처녀총각은 봄 바람에 가슴이 설렌다. 3월까지도 눈이 오는 곳이 많은 북한은 4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봄기운이 퍼지기 시작한다. 인간의 삶의 여정으로 보았을 때 봄은 생동하는 젊음이다. 그래서 청춘(靑春)이다.

개나리꽃 신윤복의 그림 ‘연소답청(年少踏靑)’에서도 봄바람에 설레는 남녀를 볼 수 있다. 연소답청은 젊은 선비들이 푸른 새싹을 밟는다는 뜻으로 들놀이를 의미한다. 선비와 기생으로 보이는 연인들이 짝을 지어 봄나들이 가는 모습을 그린 ‘연소답청’에는 바위 언덕에 곱게 피어있는 연분홍색 진달래꽃이 보인다. 기생의 트레머리에도 진달래꽃이 꽂혀 있다. 여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말구종도 마다않는 젊은 선비의 모습이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다. 봄은 남녀의 마음에도 사랑의 싹을 틔운다.
그러나 4.15 태양절을 맞아 대청소를 시작하는 북한에서 모든 기운을 청소에 모두 쏟아 붓는 처녀총각들에게 바람날 틈이 있을까?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에게 ‘처녀총각’으로 알려진 노래가 북한에서도 꽤 대중적으로 불려진다는 것이다. 1934년에 만들어진 노래 ‘처녀총각’은 1절은 처녀의 노래이고, 2절은 총각의 노래이다. “봄이 왔네 봄이 와~ 숫처녀의 가슴에도/ 나물 캐러 간다고 아장아장 들로 가네/ 산들산들 부는 바람 아리랑 타령이 절로 난다.”
유리창을 닦고 천정의 먼저를 걷어내며 북한 전역이 청소로 들썩거리는 와중에도 처녀 총각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것은 청춘의 봄바람일 것이다. 휴식의 틈새에서, 따뜻한 봄 햇살을 느끼며, 어느새 다가온 사랑이 북한의 청춘 남녀들에게도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다.
최대 명절이라는 위상에 맞게 대청소로 말끔해진데다 온갖 꽃으로 장식된 4.15 태양절은 결혼식 날로도 인기 만점이다. 우리에겐 5월의 신부가 가장 아름답고 화사하다지만, 북한에선 4월의 신부가 가장 화려한 날을 배경으로 결혼식을 치르는 것이다.

빼앗긴 들을 찾고 봄도 되찾은 지 반세기가 훨씬 넘었지만, 남북이 맞이하는 봄의 빛깔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남녘의 들에도 북녘의 산에도 따뜻한 봄바람이 부는 날에, 서로 바라보며 웃었으면 좋겠다. 서로에게 봄꽃 같은 미소를 돌려주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서로가 건네는 손길엔 향기만 가득했으면! 민족의 분단을 극복하고 승리와 기쁨의 화합의 시간으로 서로를 보듬기를! 애써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오지만, 우리가 간절히 기다리는 봄은 아직 멀리 있다. 지금 봄날은 가더라도, 다시 봄날이 오리니. 봄처녀 제 오듯이 남북이 같은 빛깔로 맞이할 봄이 제 오기를 기원해 본다.

<사진제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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