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말하는 ‘명문고등학교’란 어떤 기준으로 결정될까. 높은 대학 진학률? 사회적 명사로 구성된 졸업생 네트워크? 그렇다면 이런 학교는 어떨까. 6.25전쟁 당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책 대신 총을 들었던 학도병들의 모교란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며, 북한이탈주민들 역시 우리 이웃임을 가르치기 위해 초청강연을 마련하는 학교가 있다. 3년 연속 KBS ‘역사·통일골든벨’ 대회에서 입상자 최다배출상과 지도교사상을 휩쓴 저력을 가진 강원도의 춘천고등학교가 그 주인공이다. 새 학기 시작과 함께 올해도 어김없이 통일골든벨 대회를 준비 중이라는 춘천고를 찾아가, 대회 참가 노하우 및 청소년 통일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춘천고등학교는 학부모와 학생만족도, 대학진학률 등을 근거로 한 일간신문사가 매년 발표하는 ‘전국 명문고’ 순위에서 일반계 고등학교 중 1위에 오른 바 있는 강원도 지역의 손꼽히는 명문고다. 게다가 통일교육에 대한 관심도 높아 2011년 통일골든벨이 처음 시작된 이후 줄곧 출전했으며, 첫 해 아깝게 우승은 못했지만 전국결선대회 2위까지 오르는 등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둬왔다.
통일골든벨 첫 출전 이후 지금껏 매년 아이들과 함께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정윤옥 선생님은 어른들의 우려와 달리 의외로 역사와 시사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학생들이 많다” 고 말한다.
“아이들이 역사, 북한, 시사 문제 등에 관심이 많아요. 그 관심 이 꾸준히 이어질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들어줘야 하는데 자꾸 더 어려워지고 딱딱해지니까 애들이 꺼려하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통일골든벨이 가장 좋았던 점은 퀴즈대회를 통해 역사와 통일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연장될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연장된 관심은 아이들의 진로나 진학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 예로 통일골든벨 대회에 참가했던 졸업생 대부분이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에 진학했다. 물론 대학진학률만으로 대회가 아이들에게 끼친 영향력 전부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평소의 작은 관심에서 시작해 노력을 통해 성과를 얻는 과정은 아이들에게 성취감과 자신감을 북돋아주기에 충분했다. 덕분에 1학년 때 한번 대회를 경험했던 아이들은 학년이 바뀌어도 대회 참가를 위해 자발적으로 준비를 하고, 나아가 통일이나 북한문제 관련한 자신만의 소신도 생겼다.
학교에서 사회와 사회문화를 맡고 있는 정 선생님에게는 아이들의 이 같은 변화가 가장 큰 보람으로 느껴진다.
“사실 대회에 참가한 아이들 대부분은 평소에도 역사 분야를 좋아하는 친구들이에요. 하지만 그 친구들이 참여하고 화젯거리가 생기니까 다른 학생들 역시 통일이나 북한, 우리 역사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다른 과목 담당 선생님들도 수업시간에 애들이 통일에 대해 발표하면 깜짝 놀란다고 하세요. 제대로 알고 있는데다 주관까지 뚜렷하니까요.”
올해로 교단에 선지 25년째가 되지만 자신 역시 한 회, 한 회 대회를 경험하고 준비하면서 남북한 문제와 통일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생각하게 됐다는 정 선생님은 앞으로의 통일을 위해서는 지금부터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교육자로서 미래 통일의 주역이 될 아이들에게 올바른 지식을 전달하고, 무엇보다 통일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유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통일에 관심이 없다기보다 막연히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통일 비용 때문에 우리가 손해 보는 거 아니냐는 말도 많이 해요. 그래서 ‘통일골든벨’ 같은 대회가 중요한 것 같아요. 준비하는 과정에서 남북한 문제에 대한 선입견이나 잘못된 정보를 스스로 바로 잡고 같이 이야기를 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니까요.”
그래서 정 선생님은 통일골든벨 외에도 교내 통일 문예대전과 6월 학도병 추모식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통일과 역사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특히 매년 10월에는 북한이탈대학생의 특별강연도 마련하고 있다고.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나 선입견을 해소하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또래의 학생들이 좋을 것 같아서 북한이탈청소년이나 대학생들로 요청 드렸는데, 예상보다 아이들의 반응이 매우 뜨거워요. 친근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훨씬 분위기도 좋고요.”
요즘은 ‘제대로 된 역사의식을 가진 아이들이 매사에 의욕적이고 주관이 뚜렷하다’고 생각하시는 선생님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덕분에 주변 학교에서도 통일골든벨 참가와 관련한 문의 전화를 종종 받는다고. 그럴 때마다 정 선생님이 귀띔하는 대회 참가 노하우는 바로 ‘장기전’이다. 예상문제집과 관련 사이트, 칼럼, 방송 등을 꼼꼼히 챙기는 것이 기본이지만 대회 준비를 천천히 장기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란 것.
정 선생님의 경우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이제 겨우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1학년을 대상으로 올 해 통일골든벨 예상출제문제지를 배포하고 관심 유도에 나섰다고 한다. 대회 출전 후 수상여부에 집중하기보다 준비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공부하고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바로 세울 충분한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통일을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정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학교에서도 윤리나 사회과목 외에 국어, 체육, 미술, 음악 등 다양한 교과목에서 통일을 보다 쉽고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글. 권혜리 / 사진. 나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