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한 수산물 가공공장에서 북한 근로자들이 식사를 하러 이동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 들어 북한의 근로인력 해외 파견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인력 파견 외에는 외화를 벌어들일 수단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외로 파견되는 인력은 북한 당국의 강한 통제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근로자라기보다 당국의 노예에 가까운 북한 해외 파견 인력의 실태를 알아본다.
김정은 시대 들어 북한의 해외 파견 근로인력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는 해외 근로자 인력 송출 확대가 체제 유지에 상당한 위험요소가 되고 있어 더 확대하는 것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국내외적으로 ‘적’들의 압박이 가시화하는 엄중한 시기에 과감하게 일을 벌이지 않으면 돌파구를 열 수 없다며 해외 인력 파견을 확대할 것을 지시했다.
국가안전보위부의 우려는 해외 인력 파견 확대로 결국 많은 근로자가 외부 상황이나 정보를 접하게 되면서 북한 내부의 변화를 촉진하는 힘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보위부 인력도 근로자 40명당 한 명씩 해외로 파견해야 하는 원칙이 있어 보위부 인력을 추가로 확보하는 것 또한 중요한 문제가 됐다. 보위부 요원이라고 해도 다 믿고 해외로 내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지시는 그가 대범해서가 아니라 해외 인력 수출 외에 더는 외화벌이 수단을 찾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김정은 시대 이전에 북한은 이란, 시리아, 예멘, 미얀마 등에 무기를 팔아 5억~10억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였다. 그 밖에도 수산물, 목재, 광물자원 등을 팔아 적지 않은 외화 수입을 올렸다. 불법적 수단인 마약과 위조달러 제조도 한때 외화 수입에 한몫했지만 지금은 주변 국가들의 강력한 제재로 사실상 판로가 모두 막힌 상태다. 당연히 최근 들어 기존의 외화벌이 수단이 고갈되면서 외화 수입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김정은 정권 초기 북한 당국은 40여 개국에 근로자 6만~6만5000여 명을 파견했다. 이들이 벌어들이는 외화는 연간 3억 달러에 육박했다. 김정은의 사(私)금고로 알려진 노동당 39호실은 그 산하에 해외지부 17개, 무역회사 100여 개를 두고 있다. 현재 근로자들을 해외로 가장 많이 파견하는 부서는 39호실 산하 회사들이 압도적이다. 그 외에 무역성 대외건설사업국, 수도건설총국, 인민보안부 7총국, 8총국 등이 있다.
북한, 위험지역까지 해외 인력 파견 확대
<사진> 중국 단둥의 한 의류 가공업체에서 북한 여성들이 공장 한쪽에 줄지어 앉아 작업을 하고 있다.
북한은 인력 통제가 가능하고 협조를 잘해주는 국가를 중심으로 인력을 파견해왔다. 그러한 국가로 러시아에 가장 많은 인력을 보냈고, 중동지역의 사우디아라비아, 리비아, 이란, 시리아, 쿠웨이트 등에도 수만 명의 인력을 파견하고 있다. 동남아 지역도 북한 인력이 속속 파견되고 있다. 북한 식당들이 동남아 주요 국가에서 영업을 시작했고, 그 뒤를 이어 많은 인력이 파견되고 있다.
중국은 탈북 루트이기 때문에 식당 외에 일반 근로인력을 파견하는 것은 사실상 금지해왔다. 하지만 2008년 이후 중국으로의 인력 파견이 본격화하면서 수만 명의 인력이 중국으로 파견되고 있다. 김정은이 장성택 처형 이후에 자강도 만포 지역에 제2 개성공단을 건설해 중국 자본을 끌어들여 북한 인력과 결합하는 외화벌이 공단을 만들려고 했지만 중국 정부가 거부하면서 사실상 무산됐다. 중국 정부는 개성공단 식의 만포공단은 정경(政經) 분리가 되지 않는 일방적 외화벌이 수단이어서 중국 기업들의 안전과 수익구조에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최근 들어 중국 당국이 북한 인력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기 시작하면서 중국지역으로의 북한 인력 파견 사업은 위축되고 있다. 중국은 동북지역에서 북한 근로자들이 늘어나면 중국 근로자들의 일자리가 축소돼 중국 동북지역 경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극심한 통제가 필요한 중국 대륙에서 북한 근로자들이 수천 명씩 파견된 것은 북한의 외화난이 상당히 급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중국에 이어 몽골에도 인력을 대거 파견하고 있다. 몽골의 경우 인민군 공병국 군인들의 옷을 벗기고 민간인으로 위장해 파견하고 있다. 북한이 일부 건설부대 병사까지 해외 근로자로 파견하는 것은 그들에겐 월급을 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일부 군인들은 싱가포르와 몽골 등 임금이 높은 일부 지역에 집중 배치돼 북한의 외화벌이에 큰 구실을 하고 있다.
과거 한국 정부가 중동과 유럽 지역에 근로자들을 파견한 적이 있지만 근로자들의 임금에 대해 국가가 관여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근로자의 임금을 국가가 착취하거나 관여하는 것은 사실상 북한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에서 근로자 해외 파견은 국가의 배려로 당과 수령을 위해 충성할 기회를 갖는다는 의미다. 개인의 돈벌이나 다른 기회는 사실상 주어지지 않는다. 모든 해외 노동은 국가가 권한을 가지며 근로자들은 임금에 대한 권한을 빼앗긴 것은 물론, 개인행동까지도 국가의 통제를 받는다.
1994년 중동 지역에 파견됐던 림일 씨에 따르면 근로자들이 수개월째 월급을 받지 못해도 “고국에서는 인민들이 굶어죽는데 여기서 이밥에 고깃국을 먹는 것으로도 감사하라”는 당의 지시에 근로자들은 불평 한마디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중동 지역에서 북한 근로자들은 연간 5000달러의 임금을 받지만 여기서 48%인 2400달러는 북한 당국에서 원천 징수해간다. 임금 2600달러 가운데 10%는 송출회사가 수수료로 가져가고 40%는 각종 운영비로 사용된다. 북한 근로자가 받는 연간 수령액은 1000달러 수준인데 여기서 식비와 기타 비용을 제외하면 사실상 남는 돈이 없다. 러시아에 파견된 근로자들은 더 열악하다. 아예 월급이란 개념 자체가 없고, 북한에 가서 물건을 살 수 있는 쿠폰 형태로 월급이 대체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체코에 파견됐던 여공들이 국가에 다 뜯기고 나서 남은 돈으로 북한에 가져갈 돈을 만들려고 음료수조차 마시지 않고 돈을 모으다 집단적으로 영양실조에 걸린 적도 있다. 체코 정부는 인권 유린 현장인 북한 해외 근로자들의 노동 현장을 폐쇄하고 그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감시자들의 부정부패로 이중삼중의 고통
<사진> 지난 2월 중국 단둥에 문을 연 외화벌이 식당에 줄을 맞춰 출근하는 북한 여성들.
개성공단의 경우, 한국 기업들과 북한이 직접 공장을 운영함에도 일체 권한은 북한 측에 있다. 2006년 30여 개에 불과하던 개성공단 기업은 현재 123개로 늘어났고, 근로자들도 5만4000여 명에 육박하고 있다. 여기서 북한 당국이 벌어들이는 수입도 연간 약 9000만 달러에 달한다. 이곳 근로자들에게 지급하는 임금도 다른 해외 파견 근로자들의 임금 지급 실태와 다르지 않다. 개성공단 근로자들도 자신들의 월급이 정확히 얼마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북한 당국이 지불하는 원화 외에 공단 물품을 뒤로 빼돌리는 것과 공단에서 제공하는 음식이 그들에겐 유일한 위안이 된다.
북한 근로자들에게 이중삼중의 고통을 주는 것은 감시자들의 부정부패다. 김정은의 지시로 보위부는 해외 인력 파견을 확대해주면서 대신 보위부 인력으로 감시조를 대대적으로 파견하고 있다. 하지만 보위부의 파견 비용은 보위부가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회사가 부담하게 된다. 해외로 파견된 보위부 인력들은 높은 월급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각종 뇌물로 연간 1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에 따라 나간 보위부 요원들은 이 돈을 본국의 상관들과 나눠가지며 공생한다.
전 세계 어떤 나라에서 파견된 근로자라 할지라도 여가시간만은 모두 자유롭게 쓸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의 해외 파견 근로자들은 노동 현장과 숙소 외에는 일체 움직일 수 없다. 북한 당국은 해외로 근로자들을 파견할 때 우선적으로 해당국에 근로자들이 집단 거주할 수 있는 수용소 형태의 시설을 갖춰줄 것을 요구한다.
근로자들의 모든 여권도 회수해 보위부가 가지고 있다. 여권이 없으니 어디도 갈 수 없다. 해외에 나와 있기 때문에 사상통제는 두 배, 세 배로 강화한다. 본국에서 가져온 영상물이나 학습 자료를 가지고 주입식 교육을 아침저녁으로 시킨다. 해외에 나온 것은 잠시 꿈일 뿐 그들은 해외 지역에 만들어진 북한이란 나라에서 억류된 채 살아가야 한다. 다른 나라 해외 근로자들은 저녁시간에 보고 싶은 TV를 보고 마음대로 거리를 나다니지만 북한 근로자들은 북한 내부보다 더 엄격한 통제 속에서 생활해야 한다. 해외에 나왔지만 사실상 작은 북한에서 사는 것과 똑같은 형태로 살아가는 셈이다.
도주를 기도하거나 위험한 행동 징후가 있을 경우 보위부는 소위 죄수의 팔과 다리를 깁스 형태로 묶어서 북한으로 송환한다. 겉으로는 환자처럼 보이지만 석고로 만들어진 깁스 때문에 그들은 꼼짝없이 북한으로 끌려간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모진 고문이다. 심한 경우 가족과 함께 강제수용소에 수감돼 평생을 그곳에서 살아야 할 운명에 처해진다.
<사진> 3월 10일 북한인권정보센터 주최로 열린 북한 해외 노동자 현황과 인권 실태
최근 국제사회는 북한 해외 파견 인력의 인권 유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국제사회는 북한이 근로인력을 파견한 해당 국가에 대해 노예노동에 준하는 북한 당국의 근로자 탄압을 중지시키고 그들에게 다른 나라 근로자들과 똑같은 자유와 권리를 줄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국제노동기구(ILO)도 회원국 가운데 해당 국가 노조를 통해 북한 해외 파견 근로자에 대한 북한 당국의 탄압을 중단하도록 압력을 넣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개성공단의 경우 북한의 일방적인 임금 인상에 우리 정부는 단호한 입장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북한의 횡포에 맞설 중요한 카드는 임금 직불제를 실시하는 것이다. 남북한은 북한 근로자에게 임금을 직접 지불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북한 당국은 그것을 거부하고 한국 기업이 주는 임금을 당국이 챙기고 있다. 근로자에게 얼마를 주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있다. 북한 근로자들은 한국 기업이 자신들의 월급을 주는 것은 알지만, 직접 임금을 주는 곳은 북한 당국이기 때문에 한국 기업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
북한 해외 근로자들의 인권과 자유를 찾아주는 것은 북한 체제 내부 변화의 시초가 될 수 있다. 북한 내부의 모든 인권침해는 국제사회가 직접 압력을 넣을 수단이 마땅치 않지만 해외 파견 근로자들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의 압력이 통할 수 있다. 따라서 김정은 정권의 외화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북한 근로자들의 자유와 인권을 찾아주는 것은 북한 체제 변화에 중요한 시금석이 될 수 있다.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
평양에서 태어나 1992년 대한민국 입국. 한양대 무역학과 졸업. 조선일보 통한문제연구소 기자 등 역임. 현재 국민대통합위원회 자문위원, 한국자유총연맹 북한지부장으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