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북한 영변의 핵발전소에서 시작된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1994년 제네바 합의, 2000년대 중국이 주도한 6자회담, 그리고 미국과 유엔이 주도한 경제 제재 등을 통해 저지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북한의 5차에 걸친 핵실험과 다수의 미사일 시험발사에서 나타났듯이 이러한 노력은 현재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최근에 와서는 북한의 비핵화를 포기하고 기존의 핵을 인정하는 핵 동결이나 한국의 대응적 핵무장, 더 나아가 북한에 대한 선제 무력 공격에 대한 논의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논의들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우리로서는 현실적이지 않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다.
지금까지 북한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벌여온 노력에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제네바 합의나 6자회담 등의 국가 간 합의, 즉 약속의 자발적 이행을 통해서는 북한의 행동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도출되는 추가적인 결론은, 결국 북한의 행동을 바꾸려면 ‘힘’의 행사에 의해 북한이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힘’이 어떠한 ‘힘’인지, 그리고 그러한 ‘힘’을 얼마나 어디까지 사용해야 하는가이다. 북한에 대해 외교적 ‘힘’을 사용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는 게 판명됐고,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고 불확실성이 높다. 남은 방법은 경제적인 힘을 사용하는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 이미 오랜 기간 북한에 대해 경제 제재를 실행해왔고, 그러한 경제 제재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막지 못했기 때문에, 과연 경제적 ‘힘’, 즉 경제 제재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포기시킬 수 있는가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 2000년대 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금융 제재는 과거 ‘봉쇄’와 ‘동결’이 주를 이뤘던 경제 제재와는 다른 성격을 갖는 것으로,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철저하게 추진될 경우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는 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이다.
금융 제재 통한 이란 핵 동결 합의 성과
미국의 국제 금융 제재는 제재 대상이 금융자산이나 수단을 획득·운용·사용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극도로 어렵게 함으로써 제재 대상의 활동과 존재를 위축시키고 억제하는 것이다. 이러한 금융 제재는 2001년 9·11 테러 사건 이후 공개적, 공식적인 실체가 없는 테러집단과 싸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금융 제재는 테러집단뿐 아니라 국제 규범을 위반하며 핵과 대량살상무기를 만들고 확산하는 대상에게도 적용됐다.
미국은 이란 핵무기 개발에 대해 2010년 이후 집중적으로 금융 제재를 시행해 결국 2015년 이란 핵 동결 합의를 이끌어냈다. 당시 이란 경제는 제재로 말미암아 거의 파산 지경에 이르렀고, 이를 견디지 못한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함으로써 핵 동결 합의가 가능했다. 그보다 전, 2005년 미국은 북한의 불법자금 세탁을 도운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에 제재를 가해 북한의 자금을 동결했고, 이는 북한을 억제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작용했다. 당시 이 은행에 예치된 자금은 김정일의 통치자금이었으며, 그 동결로 북한 지도층은 커다란 충격과 고통을 경험했다.
북한 금융 제재가 효과를 거두려면 중국의 협조가 중요하다. 사진은 북한으로 가는 석유가 저장된 중국 단둥 저장소.
이와 같이 미국의 금융 제재가 효과를 낼 수 있었던 근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 넘게 미국이 구축해온 달러 중심의 국제 금융체계, 미국의 국제 금융시장에서의 영향력 때문이다. 전 세계 국가의 외환보유고 중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64%가 넘고, 모든 국제거래 결제의 절반에 가까운 43%가 달러로 이뤄진다. 그리고 달러 결제의 99%가 미국의 결제체제인 연방전신송금서비스(Fedwire), 은행 간 청산지불체계(CHIPS)를 통해 이뤄진다. 한마디로 미국의 금융체계와 연결되지 않고 국제 금융거래를 한다는 것은 어렵다.
미국이 금융 제재를 위해 사용하는 수단은 미국 금융기관, 미국 금융시장, 그리고 미국 금융시장에 지사나 대리인을 둔 외국 금융기관이다. 특히 미국 정부의 직접적인 관할권 아래 있지 않은 외국의 금융기관이라 할지라도 미국에 지사나 대리인을 둔 금융기관은 미국의 금융 제재에 관한 법의 규율을 받는다. 국제 금융거래를 할 정도의 규모를 가진 금융기관은 예외 없이 미국에 지사나 대리인을 두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전 세계의 모든 주요 금융기관은 미국의 금융 제재를 위한 법의 규율을 받는다. 이란의 핵무기 관련 제재 때도 Credit Suisse, ING, Standard Chartered, HSBC, BNP은행 등 전 세계의 주요 금융기관들은 수억 달러에서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벌금을 무는 제재를 받았다.
평양 시내 유치원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의 국제 무역거래 대부분이 중국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미국이 본격적으로 북한에 대한 금융 제재를 실행할 경우 제재의 주요 대상은 중국의 은행이나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을 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기 때문에 미국이 추진하는 방식의 북한 핵무기 개발 저지 노력에 동참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중국의 반대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의 금융 제재가 중국 정부의 동의나 동참을 반드시 얻어야 하거나, 적극적으로 중국의 은행이나 기업을 처벌하는 수단을 통해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취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단지 중국의 해당 은행이나 기업이 미국 금융체계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것이다. 그러한 경우 중국 정부에서 항의할 근거가 약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 정부의 반대가 극복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평양 시민이 직접 타격받을 정도의 경제 제재 필요
중국 정부의 반대보다 더 중요한 과제는 미국 정부 자체에 있다. 미국이 이란을 제재할 때 나타났듯이 본격적인 제재를 위해서는 미국이 상당한 정도의 국력을 사용해 실행해야 한다. 우선 미국 정부는 제재 대상의 거래 내역을 파악해야 하지만 민간은행과 기업의 거래를 정부가 완전하게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북한이 중국 내 위장회사, 차명계좌 등을 사용해 금융거래를 할 경우 이에 대한 정보의 수집이 수월한 일이 아니다.
이석준 국무조정실장이 2016년 12월 2일 우리 정부의 대북제재 조치를 발표하고 있다.
설사 그러한 거래를 찾아냈다 하더라도, 해당 금융기관을 처벌하기보다는 자발적 협조를 구하는 것이 더 나은데, 이를 위해 미국 재무부는 상당한 정도의 설득과 압박을 해야 한다. 미국이 이란에 대한 제재조치를 실행할 때도 당시 스튜어트 레비 재무부 차관이 이란과 거래하는 미국 은행과 외국의 은행을 설득·압박하기 위해 은행 경영진과 수없이 많은 회의와 면담을 해야 했다. 미국 정부가 북한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인적, 물적, 정치적 자원을 사용할 것인가 역시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디까지 북한에 경제 제재를 가해야 할까. 그것은 북한의 핵심인 평양 시민들이 타격을 받는 수준까지 이뤄져야 한다. 북한은 평양 시민과 여타 지역의 주민을 구분해 평양 시민에게만 특권을 부여하고 그들만을 체제와 동일시하는 국가이다. 따라서 평양 시민이 북한 체제에 대한 충성심을 포기하는 수준까지 제재를 가할 경우, 북한 지도층은 심각하게 핵을 포기하는 것을 고려할 것이다.
트럼프 정부에 대한 우려와 기대
새로 출범한 미국 트럼프 정부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트럼프 정부가 북한 핵무기 개발 저지를 중요한 목표로 상정하고 있는 것, 그리고 전반적으로 중국에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북한 핵 문제에 중국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과거 미국의 태도보다 더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반면,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군사력 사용 가능성에 대한 태도는 한국으로 하여금 더욱 면밀하고 신중하게 미국의 정책을 관찰하고, 미국 정부와 공조를 이루어가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북한의 경제 제재는 북한의 핵심인 평양 시민들이 타격을 받는 수준까지 이뤄져야 효과가 있다. 사진은 평양 시민의 결혼식 모습.
우려스러운 점은, 현재 트럼프 진영의 북한 핵 문제나 중국에 대한 태도가 약간 과도하게 강경하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으로, 이는 역으로 이러한 강경한 태도가 오래 지속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트럼프가 노회한 사업가 출신이기 때문에 정책적 이해타산의 결과 언제든지 입장을 바꿀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북한 핵 문제는 불가피하게 중국과 연결되게 된다. 미국은 미·중관계에서 북한 핵무기 못지않게 중요하고 시급한 다른 문제(무역 문제, 대만 문제, 남중국해 문제 등)들이 있기 때문에 북한 핵 문제를 서로 주고받는 방식으로 중국과 타협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미국 정부가 상당한 정도의 국력을 동원해 북한에 금융 제재를 가하도록 유도·협력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야 한다. 동시에 북한의 핵 문제가 미국과 중국이 대결하는 강대국 정치의 협상 과정에서 다른 쟁점에 희생되지 않도록 면밀하게 관찰하고 미국 정부와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변진석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고려대 정치학 박사. 미국 템플대 로스쿨 졸업, 재미 변호사, 현재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