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이 되면 북한의 인프라 구축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과거 남한의 산업화 시대 인프라 개발 경험을 토대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자금은 얼마나 소요되고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에 대한 부분도 준비하고 있죠. 아울러 정부 정책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들, 예를 들면 북한 경제나 이슈·동향 분석 등도 함께 연구하고 있습니다.”
KDB산업은행(이하 산업은행) 통일사업부 북한경제팀장인 김영희(52) 씨는 2월 1일로 산업은행에 근무한 지 만 10년이 됐다. 안정된 직장에 자리를 잡았지만 시작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다. 북한 재정부기과 지도원(회계사) 출신으로 2002년 남편, 아들과 함께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왔지만 멸시와 차별은 물론이고 자본주의의 경쟁 논리와 정착 과정에서의 치열함을 뼈저리게 느꼈던 것.
“하나원에서 퇴소하고 집 근처 카센터에 경리로 취직했어요. 탈북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범퍼니 헤드라이트니 하는 단어를 하나도 몰랐죠. 전화를 받으면 고객들이 다짜고짜 ‘연변 아줌마예요?’ 하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줌마를 앉혀놨냐고 화를 내곤 했어요.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먼저 탈북한) 선배들이 이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많이 서러웠어요.”
결국 3개월 만에 카센터를 그만뒀다. 미국 이민까지 고려할 만큼 좌절과 소외감이 컸지만 그래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던 걸까. 때마침 탈북민들의 정착 적응을 지원하는 사단법인 ‘새롭고 하나 된 조국을 위한 모임(이하 새조위)’을 만나면서 김 씨의 삶에 희망이 번졌다.
“전철에서 우연히 하나원 시절에 교육을 진행하던 강사를 만났는데, 새조위라는 단체에서 최근 넘어온 탈북민들을 찾고 있다며 제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더군요. 알고 보니 그 무렵 새조위가 탈북민 정착 지원에 초점을 맞추면서 탈북민들을 만나 의견을 수렴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새조위를 알게 됐고, 그 과정에서 북한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을 알게 됐어요.”
새조위에서 미팅을 하면서 대학교수 등 남한의 북한 전문가들을 처음 본 김 씨는 깜짝 놀랐다.
“남한 사람들이 북한을 연구한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북한에 살지도 않았는데 광범위하고 구체적으로 분석을 한 것을 보고 감탄했죠. 동시에 북한에 살았고 북한 대학을 졸업한 나는 더 강점이 있지 않을까 싶더군요.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어요. 마침 경남대 북한대학원에서 탈북민 특별전형을 한다고 해서 그곳에 지원해 다닐 수 있게 됐어요.”
‘탈북민 출신’ 북한 경제 전문가로 자리매김
김 씨는 북한 최고 경제 전문가 양성소인 정준택원산경제대학을 졸업한 만큼 밑바탕이 탄탄했지만, 문제는 강의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같은 조선말인데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더라고요. 첫날은 절반밖에 이해를 못 했어요. 안 되겠다 싶어 녹음기를 사서 수업 시간마다 녹음했죠. 그걸 다시 들으면서 모르는 단어 찾아가며 공부했어요. 석사과정을 마칠 때쯤 되니까 귀가 번쩍 뜨이더군요(웃음).”
이 무렵 새조위 추천으로 산업은행에 지원해 전문 연구직으로 입사한 김 씨는 또 한 번 도전을 감행했다. 박사과정을 밟기로 한 것.
“산업은행에 입사하니까 박사 학위가 필요하다는 걸 실감하게 되더라고요. 보고서라는 것도 처음 써봤는데 쉽지가 않았어요. 석사로는 부족하다, 박사를 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입사 6개월 만인 2007년 2학기에 동국대 대학원 북한학과에 입학했어요.”
가정도 있고 아이까지 있는 김 씨는 보란 듯이 일과 가사, 학업을 동시에 해냈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도 전에 학술지에 논문이 게재될 만큼 좋은 성적을 유지했다. 친한 교수는 “이대로 성장하면 교수 자리도 꿰차겠다”며 격려해주곤 했다. 15년 전, 무시와 냉대 속에서 반드시 성공하리라 다짐했던 자신과의 약속은 이렇게 하나둘 이루어지고 있었다.
KDB 산업은행 통일사업부 직원들과 함께 한 김영희 상임위원.
“남한에서 탈북민들이 자리를 잡으려면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도 중요합니다. 저는 새조위 자문위원들을 통해 많은 도움과 조언을 얻었어요. 이들의 주류문화를 터득하면서 이 사회를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는 노하우를 얻게 됐죠. 이를테면 가장 잘할 수 있는 한 가지 우물만 파야 된다는 것,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 대인관계에서 나를 낮춰야 된다는 것, 북한식 사고방식을 버릴 것 등등이죠.”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서 북한 경제 전문가로 자리매김한 김 씨. 그녀는 탈북민 후배들이 남한 사회에서 차별 없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에 대한 인식 변화가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에서 탈북민은 영원한 탈북민이에요. 탈북민이라고 하면 공부도 못하고 생활도 못하고 친구도 못 사귈 것이라고 생각해요. 잘하면 나댄다고 싫어하고요. 이런 편견과 차별이 없어져야 해요. 탈북민 3만 명과 남한의 5000만 국민이 마음을 합치는 ‘작은 통일’을 이뤄야 남한과 북한의 ‘큰 통일’도 가능해질 테니까요.” KDB 산업은행 통일사업부 직원들과 함께 한 김영희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