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의 북한 인권 개선에 대한 의지가 놀라운 수준이다. 2003년 유엔 인권위원회가 최초로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한 이후 유엔의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과 집중도는 마치 인권 관련 민간단체(NGO)의 워치독(Watchdog)을 연상시킨다. 인권위원회가 인권이사회로 개편된 이후에도 지난 2016년까지 매년 결의안이 통과됐다.
지난 2016년 12월 19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개최된 유엔총회는 북한인권결의안을 표결 없이 합의 채택했다. 유엔 인권이사회의 북한인권결의안은 2005년 이후 유엔총회에서도 12년 연속으로 통과되고 있다. 특히 2016년 유엔총회의 북한인권결의안은 무투표로 통과됐다. 유엔총회는 매년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하고 있는데, 찬성 국가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투표 절차가 무의미한 경우 무투표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2012년과 2013년에도 무투표로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다. 이는 유엔 회원국들이 북한 인권에 대해 공통된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표결 절차 없이 합의 채택
2016년 유엔총회의 북한인권결의안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2012년과 2013년에 이어 표결 절차 없이 합의 채택됐다는 사실이다. 북한에서의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유엔의 결의안은 2003년 인권위원회와 2005년 총회에서 처음 통과됐으며, 결의안에 반대하는 국가가 계속해서 감소했지만 수십 개 국가가 있어 왔다. 그러나 2012년 유엔총회 북한인권결의안은 찬반에 대한 표결 없이 컨센서스에 의해 첫 합의 채택됐다.
중국과 러시아 등 북한의 전통적 지지 국가들이 매년 북한인권결의안에 반대 투표를 해왔지만,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이 워낙 높아졌기 때문에 표결의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특히 2013년은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구성돼 1년간 광범위한 조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 북한 최고지도자가 국제법상 반인도범죄에 해당하는 인권침해의 가해자라는 사실을 밝혀내 큰 논란을 제기했음에도 무투표 통과됐다.
2014년 뉴욕 맨해튼에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상정을 축하하는 광고가 상영되고 있다.
2014년과 2015년은 김정은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 제소 권유 등에 대한 중국의 반발로 총회에서 투표가 실시됐으나 압도적 표차로 통과됐으며, 지난해 다시금 합의 채택이 이뤄진 것이다. 지난해 12월 유엔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3년 만에 다시금 무투표로 채택된 것은 일본과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유엔 회원국 3분의 1이 넘는 70여 국가가 공동 발의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는 유엔과 국제사회에서 북한 인권 문제가 더 이상 방관하거나 논쟁할 대상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해결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둘째, 북한 인권 문제의 핵심적 책임이 김정은과 최고지도층에 있음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이번 결의안은 북한 내 반인도적 범죄의 책임 주체와 관련해 ‘리더십(Leadership)에 의해 통제되는 기관이 인권유린을 자행하고 있다’고 명시함으로써 김정은과 북한의 최고지도층이 가해자와 처벌 대상임을 특정했다.
김정은을 북한 인권 문제의 가해자로 지목하고 처벌을 요구하는 내용은 2013년 구성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에 포함돼 있다. 2014년 2월에 공식 발표되고 유엔에서 채택된 유엔의 첫 북한 인권에 대한 공식 보고서는 북한의 최고책임자, 즉 김정은을 실질적인 인권침해 책임자로 지목하고, 국제형사재판소 제소를 촉구하고 있다. 그 후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은 김정은에 대한 가해 책임과 처벌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북한, 주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핵과 미사일 개발
현재까지 김정은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 제소는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김정은에 대한 제소를 실질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국제형사재판소 설립 근거가 된 로마협약에 가입하거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의결이 있거나, 아니면 국제형사재판소 검사의 직접 조사와 기소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적 대안이 될 수 있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경우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실현이 어려운 상황이다. 국제형사재판소 검사의 직접 결정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어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동의와 협조가 전제돼야 가능하다. 아직까지는 중국의 거부권 행사 의지가 높아 보이지만 유엔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표결 없이 합의 통과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 변화도 불가능한 영역은 아닐 것이다.
셋째, 북한 주민들을 희생시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는 우려가 처음으로 포함됐다. 유엔은 북한 인권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과 강화 요인을 북한 체제와 주요 정책에서 찾고 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인권 문제의 발생 원인은 북한이 체제를 유지하려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 책임이 김정은과 주요 기관에 있음을 명시적으로 밝혔으나, 이번 유엔총회 결의안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북한 주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이것이 주민들의 인권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포함했다.
이번 결의안은 ‘북한의 인권 상황이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자원을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전용하는 것을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명시했다. 유엔은 북한에 대해서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 그리고 인권 문제를 핵심 주제로 다루고 있으나 이제까지 두 주제를 연계해서 다루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결의안은 북핵과 인권 문제를 연계함으로써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유엔 차원의 해결 의지와 강도가 더욱 강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넷째, 최근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자의 인권침해 우려와 납북 외국인의 즉각적인 석방 요구가 처음으로 포함됐다. 북한은 핵 프로그램으로 야기된 유엔과 국제사회의 제재하에서 부족한 외화 획득을 목적으로 노동자의 해외 파견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 해외 파견 노동자들은 노동권과 인권이 보호되기 어려운 중국, 러시아,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 집중 파견돼 있으며, 심각한 인권침해 상황에서 급여를 착취당하고 노예노동을 강요당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특히 북한 해외 파견 노동자들의 급여는 대부분 북한으로 송금돼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전용되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유엔의 새로운 결의안에 해외 파견 노동자 인권 문제와 외국인 납치자 송환 문제가 포함된 것은 유엔의 북한 인권 개선 관심 항목이 기존의 정치범수용소 감금과 고문, 성폭행, 공개처형 등 전통적 주제에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엔의 2016년 북한인권결의안은 김정은에 대한 책임성과 처벌 의지 강조, 핵·미사일과 인권 문제 연계, 해외 노동자 인권과 외국인 납치자 석방 등에 대한 국제사회의 광범위한 합의와 해결 의지 표명으로 요약될 수 있다.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은 향후 유엔의 북한 인권 개선 활동의 방향과 주요 의제를 보여주고 있다.
유엔의 북한 인권정책은 의지만으로는 한계
유엔은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 정권하의 김정은을 비롯한 가해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에 기소해야 함을 더욱 강조할 것으로 보이며, 유엔총회와 인권이사회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의 조언 사항과 보편적 정례검토(UPR)의 권고 사항들이 실제 이행되는지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기존 북한 인권 관련 메커니즘을 확대할 것이다. 또한 유엔은 서울 북한인권사무소를 비롯한 유엔 인권레짐을 통해서 북한 인권 가해자들에 대한 책임을 묻는 데 활용하기 위한 북한 인권침해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유엔의 북한 인권정책은 유엔 자체의 노력과 의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한국 정부와 국제 NGO 및 북한 인권 관련 단체와의 협력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는 북한인권법 통과를 계기로 통일부 북한인권기록센터와 법무부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설립해 공식 운영하고 있다. 국내 입국 탈북민에 대한 인권침해 실태조사는 북한인권기록센터와 유엔 북한인권서울사무소가 각각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인권기록센터 조사 자료의 유엔에 대한 협조 여부와 협조 수준은 각 기관의 정책 차이로 말미암아 명확하지 않다.
유엔과 서울북한인권사무소에 대한 북한 인권 침해정보의 제공은 주로 국내 북한 인권 관련 단체에 의해 이뤄졌으나, 북한인권법 통과 이후 기존에 북한 인권 실태조사를 실시하던 민간단체의 활동은 정부의 비협조로 중단되거나 축소된 상황이기 때문에 우려되는 상황이다. 북한 인권 개선의 실질적 성과는 유엔과 한국 정부, 그리고 북한 인권 관련 NGO의 협력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와 북한 인권 관련 단체에 대한 협조가 강화돼야 한다.
윤여상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
영남대 정치학 박사. 북한인권시민연합 집행위원. 북한이탈주민후원민간단체협의회 연구자문위원. 통일부 하나원 정책자문위원,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 등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