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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 한중 정상회담
문흥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장
박근혜 대통령이 3박4일간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중국을 방문했지만 이번처럼 국내외의 주목을 받았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이는 한중관계 자체의 중요성과 함께 남북관계, 한반도 미래상과 직결된 중국 요인의 중요성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는 국제적 요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중에서도 미국과 중국 요인은 절대적이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한중 간에 정치안보적 불신이 깊어진 상황에서 좀 더 실질적인 논의와 신뢰 증진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박 대통령이 방중 슬로건을 ‘믿음을 돈독히 하는 여정(心信之旅)’으로 설정한 것도 신뢰에 기초하여 외화내빈(外華內貧)의 기존 한중관계를 좀 더 내실화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방중 과정의 정상회담과 공동 기자회견, ‘한중 미래비전 공동성명’, 칭화대 연설 역시 상호 신뢰라는 기반 위에서 북핵 문제 등 안보 현안을 해결함으로써 한반도 평화 정착, 더 나아가 한반도의 자주 평화적 통일을 위해 협력하자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한반도 관련 사안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 북한 핵문제와 한반도 비핵화, 남북한 관계 개선과 통일 등이며 한반도 관련 부분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대한 공감대 확대와 이를 실천하기 위한 실질적인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구체적으로 최고지도자 간의 상시적인 협의 채널은 물론 청와대 안보실장과 중국 국무원 외교담당 국무위원, 한중 외교장관 간의 핫라인 신설에 합의함으로써 논의 수준과 접근성을 한층 제고했다. 중국의 적극적 변화는 북한의 시대착오적이고 무분별한 행동에 대한 염증과 박근혜정부가 표방하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둘째,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진일보한 공감대를 확인하고 북핵 제재와 관련된 유엔 안보리 결의 및 2005년의 9·19 공동성명 등 국제적 의무와 약속의 이행을 촉구했다. 특히 시진핑 주석은 북한의 핵개발 강행이 국제 정세의 흐름에 역행한다는 기본 인식하에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한 6자회담 중심의 다양한 양자·다자 회담 추진 필요성을 강조했다.
물론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어느 경우에도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과 분명한 차이를 보이지만 공식적인 성명이나 표현에서 한국에 완전히 동조하기는 어려운 중국의 ‘고민’을 감안하면 북핵 문제 해법을 둘러싼 양국 간 이견이 상당 부분 좁혀진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6자회담을 거의 유일무이한 대안으로 제시하던 중국이 양자·다자회담을 포함한 다양한 논의 채널의 가동을 강조한 것 역시 북핵 해법에 대한 중국의 탄력적 변화 가능성을 보여준다.
셋째, 한반도의 평화와 공영, 비핵화 실현이 한중 양국의 공동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특히 시진핑 주석은 공동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한반도의 자주 평화적 통일을 지지한다는 뜻을 표명했다.
이는 중국이 한반도의 자주 평화적 통일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기존의 소극적인 입장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한반도 통일을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중국의 이러한 입장을 ‘중국이 한국 주도의 통일을 지지한다’라는 식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보다는 1992년 수교 당시의 공동성명 제5항이 명시한 바와 같이 ‘중국 정부는 한반도가 조기에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이 한민족의 염원임을 존중하고, 한반도가 한민족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지지한다’는 중국의 공식 입장이 종전보다는 좀 더 적극적인 형태로 재천명되었다고 인식해야 한다.
한중 정상회담 이후의 과제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과 한중 정상회담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고 지도부 간의 신뢰 구축과 함께 각 분야별 현안에 대한 공감대를 확대하는 데 큰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북한 핵문제와 남북관계 등 민감한 외교안보 현안에 대해 양국 간에는 근본적인 인식 차이가 여전히 상존한다는 것이다. 이를 고려하여 정상회담 이후의 외교안보적 과제와 정책 방향을 검토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북한 핵문제의 인식과 해법에 대해 중국과 한미의 입장 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6자회담을 포함한 다양한 대화와 협상을 주도적으로 발의하고 참여해야 한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세부 실천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성과는 무엇보다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시진핑 지도부의 기대와 지지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즉 중국은 그동안 남북관계가 긴장·대치 국면을 벗어나지 못한 근본 원인이 남북한 상호 간의 신뢰 결핍에 따른 것이라고 인식해왔고 따라서 박근혜정부가 ‘신뢰’를 키워드로 한반도 평화와 공영을 도모하는 것에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는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실천 과정에서 중국과의 협력을 확대해야 하는 이유다.
한중 전략적 대화, 협력의 질적 제고
사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그 의도의 합리성과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특정 정권, 국가 차원을 초월한 관련국 간의 지지와 협력이 절실히 요구되며 중국 요인은 그 성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명박 정부의 강성 대북정책과 미국 중심 외교에 못마땅해했던 중국이 박근혜정부의 유연한 대북정책과 균형 외교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시진핑 주석은 한중 정상회담은 물론 6월 28일의 오찬 회동을 통해 여러 차례에 걸쳐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기대와 지지를 표명했다. 한국으로서는 이러한 공감대를 십분 활용하여 남북관계의 단절과 경색 국면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다각적으로 강구하고 세부적인 방안의 실천 과정에서 중국과의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외교안보적 측면에서 한중 정상회담의 두드러진 성과의 하나는 주요 안보 사안에 대해 상시적 논의·대화 채널을 구축했다는 점이다. 사실 그동안 한중관계가 ‘전략적 협력이 없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평가 절하된 이유는 외형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전략적 협력이 거의 없었다는 점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의 차관급 전략 대화 이외에 청와대와 국무원, 양국 외교부 간의 외교안보 논의 채널을 가동하는 동시에 정당, 국책연구소 등을 포함한 다양한 전략 대화를 추진하기로 한 것은 한중 전략적 협력의 내실화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특히 이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세부 실천 과정의 한중 협력에 매우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첫째, 한반도 평화와 공영을 위한 초정권 차원의 중·장기적 전략 목표를 설정하고 둘째, 직급 혹은 사안별로 논의 수준이나 협력 수준을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하며 셋째, 각 부문(부처)에 자율성을 부여하되 전략적 협력 전반에 대한 국가 차원의 총체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다수의 전략 대화 창구가 가동되면서도 실질적인 협력이 이뤄지지 못하고 오히려 혼란만 가중되는 부작용이 야기될 수도 있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공조 강화
한중 정상회담 이후의 최대 과제는 역시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과의 협력이다. 2013년 2월 북한의 제3차 핵실험 이후 북한 핵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에는 큰 변화가 감지된다. 즉 최용해 북한군 총정치국장의 방중 시 시진핑 주석은 “북한의 비핵화는 대세”라며 북한을 압박했고 6월 7일의 미중 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미국의 입장에 동조했다.
그러나 중국의 이러한 변화는 분명히 전략적으로 설정된 범위 내의 변화였고, 그 핵심은 북한의 비핵화 필요성과 이를 위한 6자회담의 재개였다. 따라서 한국, 미국의 입장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는 중국이 내심 북한의 핵보유를 용인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면서도 구체적인 해법에서는 한국, 미국과 입장을 달리하는 것이다.
북한 핵문제 해법상의 이견은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잘 드러났다. 즉 시진핑 주석이 박 대통령을 예외적으로 환대했고 정부 차원에서 전략적 협력 강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구축했지만 북한 핵문제 해법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북한의 핵보유를 용인할 수 없다’는 한국의 입장에 동조하지 않았다.
결국 ‘한중 미래비전 공동성명’에서 한국 단독으로 ‘북핵 불용’ 입장을 명시하고 중국은 ‘유관국의 핵무기 개발이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및 세계 평화와 안정에 심각한 위협’이라는 점에 한하여 동감을 표했다.
이를 위해 예민한 내용을 명시한 문장의 서두에 ‘한국 측(韓方)’, ‘쌍방(雙方)’을 명시함으로써 합의된 내용과 합의되지 않은 내용을 명확히 구분했다. 이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북핵 문제를 합의, 절충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중국의 ‘적잖은’ 배려가 엿보인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북한 핵문제의 인식과 해법에 대해 중국과 한미의 입장 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6자회담을 포함한 다양한 대화와 협상을 주도적으로 발의하고 참여해야 한다.
결국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은 양국 간의 신뢰를 구축하고 전략적 협력을 실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한중관계의 내실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도부, 정부 간의 관계 강화 이외에 박 대통령의 성공적인 ‘대민외교(對民外交)’는 민간 차원에서 중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크게 개선시킬 것이다. 다만 우리가 유의할 점은 한중관계가 최고지도자 간의 몇 차례 만남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 정치체제의 특성상 시진핑 개인이 자신의 인식과 비전에 따라 대북정책을 좌지우지할 수 없으며, 한국 역시 현실적으로 외교안보 사안에서 미국 요인을 고려하지 않은 대중 정책은 소기의 성과를 얻기 어렵다.
따라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에 이르기까지 좀 더 차분하고 긴 호흡으로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도모해야 한다. 이는 곧 시진핑 주석이 지지를 표명한 ‘한민족의 자주 평화적 통일’을 실현하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