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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호 > 기획

기획 / 정전협정 60주년

정전협정 지켜져야 평화체제 전환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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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성훈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미 메릴랜드주립대 방문연구원. 단국대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로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주년이 되었으나 아직도 한반도에는 평화가 정착되지 못하고 북한의 핵개발, 전쟁 위협 등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북한군 최고사령부는 지난 3월 5일 한미 군사훈련을 비난하며 “11일부터 형식적으로 유지해오던 정전협정 효력을 전면 백지화해버릴 것”이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6·25전쟁 당시 정전회담은 1951년 6월 23일 야코브 말리크 주유엔 소련대표가 ‘38선으로부터 군대의 상호 철수를 규정하는 휴전’을 유엔 측에 제의하자, 6월 30일 매튜 리지웨이 유엔군 사령관도 공식적으로 휴전회담 개최를 제의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당시 통일을 기대했던 온 국민의 바람과 달리, 휴전협상이 시작된 배경은 미군의 신속한 개입과 유엔군의 참전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압록강까지 진출하게 되었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당시 전황이 남북한 어느 일방도 결정적인 승세를 확보하지 못한 채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38선 부근에서 교착되었기 때문이었다.

포로 교환 문제로 휴전협상 지연

1951년 7월 하순 양측은 5개항의 의제에 합의했다. 제1항은 회의 의제의 선택, 제2항은 군사분계선의 설정, 제3항은 전투행위와 정전 상태를 감시하기 위한 기구 설치 문제, 외군 철수 문제 등 휴전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협의, 제4항은 전쟁포로의 교환에 관한 문제, 제5항은 양측의 관련국 정부에 대한 건의 등이었다.

의제 가운데 군사분계선을 38선이 아닌 당시 전선으로 할 것과 휴전 감시기구의 구성과 권한 문제 등은 1952년 5월 말에 합의하였으나, 전쟁포로 교환 문제는 휴전협상을 1년 이상 지연시킨 가장 큰 난제였다. 그 이유는 유엔군 측이 북한과 중국으로 송환되기를 거부하는 다수의 반공포로를 보호하기 위해 인도주의를 내세우면서 공산 측에 포로의 자원 송환 원칙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포로를 강제적으로라도 전원 송환할 것을 주장하고 즉각 반대했다. 이 과정에서 송환 거부 포로의 자원 송환 문제에 대한 공산 측의 반발로,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 문제가 발생했다.

1952년 10월 초 포로 송환 문제로 무기한 휴회로 들어간 휴전협상은 1953년에 들어 미국에는 공화당 정권이 등장하고 공산 측에서 휴전을 희망했던 중공과 북한과 달리 이를 완강히 반대해왔던 스탈린이 사망하는 등 새로운 국제정세의 변화로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에 양측이 ‘한국에서 적대행위와 일체의 무장행동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을 확립할 것(정전협정 전문)’에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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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953년 7월 판문점 회담장소에서 휴전협정 의제 합의서에 서명하고 있는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

휴전 후 정전 조건들의 실행을 위해 설치된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시위원회는 정전 체제의 중추적 구성요소이다. 군사정전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241㎞에 달하는 비무장지대의 정전 상태를 감시하는 것이고, 스위스와 스웨덴,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등으로 구성된 중립국감독위원회는 비무장지대 바깥 지역에 대한 양측의 협정 이행을 감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군사정전위원회 회의는 양측의 정전협정 위반 사항에 대한 비난과 반박으로 ‘제로섬 게임’으로 일관되었다.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임무는 상대방 지역의 지정된 항구 및 공항에 ‘감시원’을 보내 해외에서 들어오는 전투장비 및 물자 등을 확인하고 감독하는 것이었다. 이 위원회는 1953년 8월 중순부터 임무를 개시했지만, 스위스와 스웨덴 대표는 공산 측의 비협조로 정전협정의 준수 요구와 감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더욱이 1990년대 들어서는 북한 측이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시위원회의 무력화를 시도했다. 유엔군 사령부가 1991년 3월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로 황원탁 소장을 임명하자, 북한 측은 군정위원회 수석대표 회담을 거부하면서 중립국감독위원회의 폴란드와 체코 대표들의 캠프에 식수와 전기 공급을 중단시켰고, 스위스와 스웨덴 대표의 출입을 막았다. 이때부터 정전 체제를 지탱하는 양대 기구인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휴전 이후 동서 진영 사이의 냉전 체제가 지속되는 가운데, 북한은 체제 대결과 함께 무장간첩 침투, 푸에블로호 납치, 도끼만행 사건, 서해교전, 연평도 포격 사건 등 수많은 도발을 일으켜 정전 체제를 위협해왔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북핵 문제, 평화협정 체제 구축 등 남북한 사이에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있다. 이를 위해 새로운 합의서나 협정을 체결하는 것도 한반도 평화를 위한 또 하나의 진전이겠지만, 정전체제는 일방적인 무효나 협박 대상이 아니라 평화체제로 전환할 때까지 여전히 효력을 발휘해야 한다. 북한은 정전협정과 남북기본합의서 등 기존의 합의들을 실천함으로써 상호 신뢰의 바탕 위에 평화체제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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