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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호 > 특집

특집 / 남북 당국회담 무산, 그 이후

북한은 대화의 의지가 정녕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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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6월 9일 남북 당국회담을 위한 실무접축 장면.

남북한 당국자 회담 제안으로 그동안 팽팽한 긴장 속에 놓여 있던 남북관계가 전기를 맞을 것이라는 예상은 북한이 회담 대표의 격을 문제 삼아 일방적으로 회담을 취소함으로써 한순간에 빗나가고 말았다.
이와 더불어 언론 지면을 장식하던 장밋빛 예측과 기대도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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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유호열
고려대학교 북한학연구소 소장, 제16기 민주평통 정치안보국제 위원장, 한국정치학회 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호열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교수부장

애초에 북한이 당국자 회담을 제의했던 상황은 북한의 내부 사정에서 기인한 바 크다. 북한은 김정은 등장 이후 일관되게 김정은 체제의 안착과 안정적 유지를 위해 대내외적 수단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먼저 김정은이 북한의 정통성을 계승한 지도자라는 점을 각인시키기 위해 김일성의 이미지를 김정은에게 투영시켜 김일성에 대해 북한 인민이 가지고 있는 절대적 존경심을 ‘차용’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를 위해 김정은의 행동거지, 말투, 심지어는 복장에 이르기까지 김일성의 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전형적인 공산주의 이미지 메이킹(Image Making) 선전술을 사용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강온 양면의 대남정책을 적절히 사용하여 북한 내부의 위기를 조절하고, 이를 통해 권력 이양기의 균열을 사전에 봉쇄함으로써 절대적 통치체제를 안착시키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에 따른 대남 강경책의 전형적인 모습이 지난해 12월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올 2월의 3차 핵실험 강행이라고 할 수 있고, 남북 당국자 회담 제의 등이 대남 유화전략의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이 남한과의 관계 혹은 국제관계 속에서 위기 국면에 처했을 때, 평화 공세나 대화 제의 등을 통해 남한을 지렛대로 활용하여 난국을 타개하는 전략은 전통적인 대남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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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북한의 행태를 분석해볼 때 북한이 제의했던 남북 당국자 회담은 도발-대화-지원과 같은 전통적인 협상 전술의 반복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고 할 수 있다.

개성공단 문제도 이러한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문제는 이에 대처하는 우리 정부의 방식이 기존의 그것과는 사뭇 달라졌다는 데 있다. 그동안 과거 정부는 북한의 이러한 전략에 말려들거나 혹은 호응하는 경우까지 있었고, 북한은 내심 그러한 상황이 재현되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때 냉각된 남북관계를 일정 수준까지 복원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남북 양측 모두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은 이러한 국면을 이용하여 남북 당국회담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주도적으로 끌고가려 했던 것이다. 남북 당국회담이 북한의 의도대로 진행되었다면, 북한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기는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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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북한의 전략이 원칙과 신뢰를 강조하는 박근혜정부를 상대로 해서는 먹혀들지 않았다. 특히 박근혜정부는 북한과의 실무협상에서부터 시종일관 주도권을 놓지 않고 우리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를 통해 북한은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이 간단치 않을 것임을 깨닫고 황급히 남북 당국자 회담을 거둬들이게 되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북한의 구태의연한 전략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게 되었다. 특히 중국의 입장을 주시할 필요가 있는데, 이러한 점은 김정은의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최용해 북한군 총정치국장의 행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북한의 비핵화를 단호하게 요구하는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발언에서 북한의 지도부는 자신들의 핵보유와 경제 발전 병진 정책이 시대착오적인 셈법이었음을 깨달았어야 했다.

그럼에도 이러한 대세를 미처 깨닫지 못한 북한은 자신들의 정책 타당성을 재검토하기보다는 임박한 미중 정상회담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서둘러 대남 대화를 제의했던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단순한 포용정책과는 달리 말 그대로 진정성과 신뢰를 중시하는 정책으로서 북한의 기존 행태를 불용하는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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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양국은 비핵화와 관련하여 예상보다 훨씬 강경한 대북 입장을 천명하였다. 그러자 북한은 회담 수석대표의 격이나 의제 등을 문제 삼아 일방적으로 남북대화의 장에서 철수해버리는 구태를 또다시 반복하였던 것이다.

향후 북한의 선택은 두 가지의 가능성으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더욱 강력한 도발을 통해 긴장 수위를 높여 새로운 협상을 유리하게 이끄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두 번째로는 현재처럼 고립무원의 불리한 상황을 감안하여 핵보유 국가로서의 지위를 끝까지 고집하기보다는 차선책인 비핵화 정책을 현실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미중 간의 전략적 합의가 공고한 까닭에 북한으로서는 최후의 상태를 각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나, 후자의 경우라면 체제 유지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도모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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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또한 북한에 그리 우호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 북한과의 비핵화 대화 문제에 대해 우리나라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중국의 기본 입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때 시진핑 주석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고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며,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라고 한 데서 잘 나타나 있다. 이 언급은 향후 북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즉, 북한의 비핵화와 더불어 북한과의 대화도 강조한 모양새이지만, 북한의 입장에서는 심기가 불편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이러한 국면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을 상대로 다양한 대화 공세와 회담 제의 등을 통해 현재의 국면을 타개하려는 시도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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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당국회담이 무산되기까지 남과 북에는 희망과 절망이 교차했다.

향후 남북관계 전개 전망과 우리의 대응

한반도의 미래는 향후 5년간 단기보다는 중·장기적으로 매우 불안정하고 역동적인 모습을 띠게 될 것이어서 박근혜정부는 이에 대해 공개 및 비공개로 대비책을 마련해 수시로 점검하고 보완해나가야 할 것이다.

박근혜정부는 이명박 정부나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추진되었던 대북 및 통일외교안보 정책의 장단점을 충분히 검토하고 수렴하여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함과 동시에 북한의 잘못된 행태나 무모한 위협에 대해서는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확립하고 위기 국면을 통일 과정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특히 대미, 대중, 대러, 대유엔 외교를 강화할 필요가 있으며 한미동맹의 강화와 더불어 국지전 국면에서도 미국과의 공조를 통해 대응할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을 확보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핵 문제 해결에는 억지와 협상을 동시에 활용할 것을 밝혔고 남북한 협의 및 한미중 대화, 기존의 6자회담 활성화뿐 아니라 국제기구를 활용하는 구상도 제시한 바 있는데,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 2087호 및 2094호를 이행함으로써 문제 해결의 돌파구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논의 포기를 선언하였으나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6자회담 참가국들은 6자회담의 재개를 우선 논의하되 장거리 미사일 추가 발사 및 추가 핵실험 금지 등 좀 더 강력한 조치를 조건으로 6자회담을 재개하고, 6자회담 재개 시 북한의 요구사항인 제재 완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논의에도 착수함으로써 새로운 북핵 문제 관리구도를 재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의 결단과 함께 구체적인 수순에 돌입한다면 미국을 비롯한 6자회담 참여국들이 북한이 안심하고 자신들의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포괄적 지원에 착수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여 우리가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구도를 정립해나가야 한다.

따라서 박근혜정부에서 북한과의 대화, 지원 협력의 재개를 위해서는 북한의 무력 도발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를 일관되게 요구하는 한편, 북핵 문제 해결의 중요성을 감안한 사전 조치로서의 남북대화 재개를 신축적으로 운용(2011년 1,2차 6자회담 남북 수석대표 회담 등)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유엔 안보리의 강력한 규탄과 제재 결의안 채택에도 불구하고 3차 핵실험을 강행하였고, 연내에 추가로 4, 5차 핵실험을 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이에 대해 상시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또한 유엔 안보리의 대북 조치를 구현하기 위해 국제사회와 적극 협조하여 북한의 도발을 억지해야 하며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남북한이 동시에 이행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물론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흔들리는 최악의 상황에서는 우리도 공동선언에 구애받지 않는 공세적, 적극적 태세를 갖추어나가는 것도 정책적으로 고려해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정부는 북한의 핵 및 비대칭 군사력 위협에 대한 군사적 억지력, 방위력을 획기적, 근본적으로 강화하는 데 일차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충분한 억지력을 바탕으로 북한과의 교류협력과 평화체제, 군사회담에 임하는 비전과 전략을 지속적으로 보완해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동북아시아의 지속 가능한 평화와 발전에 대해 모든 관련국들과 신뢰 구축, 안보 협력, 경제·사회적 협력, 인간 안보를 추구하는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이 필요하다. 이러한 협력 구상은 일명 ‘동북아판 헬싱키 프로세스’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이와 유사한 서울 프로세스를 추진하여야 한다. 이러한 서울 프로세스가 성공하려면 최소한 모든 관련 국가들의 국가 이익이 보존되고, 탈냉전 이후 조성된 동(북)아시아 질서의 현상 유지에 대한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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