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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IN / ‘노병은 죽지 못한다’… 사상 최대 ‘전승절’ 기념행사 채비
7월 27일은 휴전협정 체결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은 북한에게 특별한 날이다.
단순한 휴전협정 체결일이 아닌 이른바 ‘조국해방전쟁 승리 기념일’, 일명 ‘전승절’이다.
미제와 이승만 괴뢰도당의 북침 야욕을 저지하고 조국을 수호해냈기 때문에 북한이 이겼다는 것이다.
북한은 ‘전승절’ 60주년을 맞아 전례 없이 사상 최대 규모의 기념행사를 연다고 한다.
북한은 이날을 크게 쇠기 위해 일찌감치 준비를 해오고 있다.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 .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은 올 초에 ‘전승기념축전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북한에서 행사용 물자 구매단이 중국에 파견돼 군사 퍼레이드 물자인 군용 차량과 각종 선물, 생필품 등을 대량으로 구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시 서성구역 서천동에 있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은 벌써부터 대대적인 개축에 들어갔다. 북한이 1968년 1월 나포한 미국 함정 푸에블로호도 대동강에서 이 기념관으로 옮겨 전시할 예정이다.
보통강을 사이에 두고 기념관과 마주해 있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광장도 본격적인 확장 공사에 들어갔다. 김정은은 지난해부터 기념관과 기념광장을 차례로 방문해 건설노동자들을 격려했다.
김정은이 6월 19일 방문한 평안남도 순천에 있는 비행 부대도 전승기념일 열병식에 참가할 부대이다. 5월 8일에는 김정은이 이설주와 함께 은하수관현악단을 찾아 전승절 합동 공연 준비 상황을 점검하기도 했다. 4월에는 전승절 기념 훈장이 제정됐다.
북한 보도를 통해 볼 때 북한이 올해 전승절에 벌일 각종 행사에 대한 윤곽은 이미 드러나 있는 상태다. 군 열병식, 평양시 군중시위, 대집단체조 ‘아리랑’, 전쟁 노병들과의 군민연환대회, 대규모 축포 야회, 청년학생 경축 야회와 무도회 등이 당일 벌어질 행사들이다. 모든 행사는 북한이 해마다 해오던 것들이니 준비하는 데 큰 문제는 없다.
그런데 현재 북한이 행사 준비에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6·25전쟁에 참전했던 노병을 내세우는 것이라고 북한 소식통은 전했다. 정전협정이 조인된 1953년에 20살인 어린 병사라 해도 지금은 80세가 된다. 문제는 북한에선 이렇게 나이가 든 노인이 생존해 있을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는 것이다.
참전 노병 찾아내 ‘잘 돌보라’ 특명
지난해 유엔인구기금(UNFPA)이 발행한 2012년 세계 인구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남성과 여성의 평균수명은 각각 65.9세와 72.1세로 각각 세계 117위에 그쳤다. 한국의 경우 남성과 여성의 평균수명은 각각 77.3세와 84세였다. 북한 남성의 평균수명이 남쪽보다 11.4세나 낮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북한에서 80세 노병을 찾는 일은 한국에서 91.4세 먹은 노병을 찾는 것만큼 힘든 일이다. 그런데 유엔이 제시한 평균수명은 북한에 직접 들어가 조사를 하기 어렵기 때문에 추정일 뿐이다. 북한을 경험한 기자가 체감하기는 실제 평균연령은 더 낮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 전쟁에 참가한 노병이라고 해도 고난의 행군 시기에 특별한 혜택을 받지는 않았다. 그러니 지금까지 생존해 있는 이들은 극소수일 것이다.
전승절에 참전 노병이 없다면 행사의 의미는 크게 반감된다. 이 때문에 북한은 지난해부터 각 지방 노동당에 노병을 찾아 죽지 않게 잘 돌보라는 특명을 내렸다. 이에 각 지방 당 기관은 노병에게 특별 식량 및 영양 공급을 하는 한편 최상의 의료진을 붙여주고 있다고 한다. 이런 배경을 알고 보면 북한의 전승절에 과연 몇 명의 노병들이 열병식 대열 또는 군민연환대회에 참석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다.
북한에서 6·25전쟁은 김일성의 업적이라고 선전한다. 김정은은 전쟁이 끝난 지 30년 뒤 출생해 사실상 6·25전쟁과의 관련성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북한이 올해 전승절을 사상 최대 규모로 준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이 노리는 하이라이트는 분명하다. 김정은을 김일성처럼 보이게 만들려는 것이다. 1953년 7월 27일 김일성이 김일성광장 열병식장 주석단에 하얀 원수복을 입고 나서서 열병 대열에 손을 흔든 사진은 모든 북한 주민들이 잘 기억하고 있다. 북한은 이 사진을 통해 젊은 김일성이 미 제국주의 연합군과 맞서 조국을 수호한 백전백승의 강철의 영장이라고 수십 년간 선전해왔다.
이제 북한은 김정은에게 하얀 원수복을 다시 입혀 김일성광장 주석단에 세우려 한다. 이를 통해 북한은 데자뷰 효과를 만들려 하고 있다. 김정은 원수는 비록 젊지만 미제의 공화국 고립 압살 책동을 물리친, 김일성과 다를 바 없는 영장이라고 선전하려 하는 것이다.
북한은 올 2월 핵실험을 계기로 대내외적 긴장 관계를 최대로 끌어올렸다. 당장 전쟁이 터질 상황이나 되는 것처럼 쓸 수 있는 대외용 협박을 총동원했다. 세계는 북한이 왜 저리도 오버하는지 이해를 하기 어려웠다. 전승절 당일 북한 노동신문에 실릴 정론을 보게 되면 조금이나마 이해될지 모른다.
“올해 전쟁을 일으키려던 미제와 남조선 괴뢰도당의 계획은 김정은 장군의 배짱과 담력 앞에 모조리 수포로 돌아갔다. 김정은 원수는 북한의 수호신이다.”
바로 이것이 북한이 대규모 전승절 행사를 통해 주민들에게 심어주려는 핵심 메시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