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6대륙 순방외교 완성
경제도약과 안보위기 극복위한 총력외교
총사령관이 이룬 성과 장병들이 다져야
경제를 살리고 안보를 강화해야 한다는 절실성 때문에 박 대통령은 6대륙을 누볐다.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급성장해온 우리는 국격을 높이는 외교를 펼쳐야 한다.
월 말~6월 초 박근혜 대통령이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 등 아프리카 3국을 순방함으로써 취임 후 6대륙을 모두 방문했다. 이 순방은 3월 말~4월 초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에 이은 멕시코 방문, 5월 초의 이란 방문에 이어 올 들어 세 번째였다.
세계의 통합이 강화되는 세계화 시대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핵안보정상회의, 기후변화 정상회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및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등 다자(多者) 정상회의를 통한 글로벌 거버넌스가 보편화된 오늘날 정상외교는 갈수록 그 중요성을 더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박 대통령의 정상외교에는 전과 다른 절박함과 결연함이 있었다.
절박함은 경제와 관련이 있다. 세계 경기가 침체 국면에 빠져 있고, 특히 중국의 경제성장이 둔화됨으로써 우리 경제의 성장을 견인해온 수출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에 따라 박 대통령은 적극적인 경제외교를 통해 수출 감소 추세를 되돌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다. 정상외교에 전에 없이 많은 경제사절단을 동행시키고, 1 대 1 비즈니스 상담회 등을 통해 많은 경제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성과를 냈다. 멕시코 방문 때는 34건, 이란 방문에는 66건의 경제협력 MOU를 맺었다.
결연함은 북한과 관련이 있다. 북한은 올해 초부터 제4차 핵실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중거리미사일(IRBM)에 해당하는 무수단을 수차례 발사하며 위협적이고 모욕적인 언사를 거듭해왔다. 이에 대해 국제사회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270호를 필두로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강화했다.
박 대통령은 핵무장을 비롯한 북한의 도발적 행동이 세계 어디에도 설 곳이 없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러한 노력을 통해 북한이 하고 있는 셈법을 바꾸어 북한 비핵화를 유도하며 평화적인 통일의 초석을 닦고자 한다. 그 러한 맥락에서 북한의 핵 프로그램 파트너였던 이란으로부터 비핵화에 대한 지지를 얻어냈다.
아프리카 방문도 같은 맥락이다. 이 세 나라는 케냐(1340달러)를 제외하면 공식환율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에도 못 미치는 저개발국이다. 그런데 근년의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경제 개발 의욕을 보이면서 최근 연 5% 이상, 에티오피아는 10%가 넘는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새로 생겨나는 경제적 기회를 선점해 경제 도약의 발판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 박 대통령이 아프리카 순방외교에 나선 경제적 동기다.
대통령이 외교 총사령관이 된 이유
이번 아프리카 방문에서는 3국을 합쳐 총 82건의 경제협력 MOU가 체결됐다. 에티오피아와는 섬유산업 협력, 우간다와는 농어촌 개발과 보건 협력, 케냐와는 에너지산업 협력 등 국가별로 특화된 협력 사업을 도출하고 논의했다.
우간다는 쿠바, 시리아, 미얀마, 이란 등과 더불어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많지 않은 나라 중 하나였다. 그러한 우간다로부터 북한과의 군사협력을 중단하고 파견된 50여 명의 북한 군·경 교관을 철수시키기로 한 약속을 얻어냈다.
박 대통령의 외교 행보는 한편으로는 세계화 시대 외교의 일반적 성격에 대해, 다른 한편으로는 기로에 선 대한민국 외교의 방향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첫째는 외교의 총력화다.
세계 경제가 세계화되면서 국가의 이익과 국민 삶이 대외에 노출되는 정도가 크게 높아졌다. 부존자원이 빈약하고 무역 의존도가 매우 높은 지경학(地經學)적 조건과 강대국에 둘러싸인 채 국토와 민족이 분단된 지정학(地政學)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국가 이익의 대외 노출이 상대적으로 심하다. 그래서 박 대통령은 관과 민을 이끌고 외교의 총사령관이 되어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그 같은 외교적 성과를 거둔 배경이다. 박 대통령이 적극외교를 펼치고 성과를 거둔 이면에는 우리나라 국력의 증진이 있다. 지난 반세기의 성장을 통해 우리나라는 경제력과 외교력에서 선진국 반열에 올랐고, 덕분에 다른 나라와 실속 있는 협력외교를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선진국 중 선진국 클럽인 개발원조위원회(DAC)의 회원국도 됐다.
그에 걸맞은 시장과 기술, 그리고 개발원조기금이 외교력의 경제적 기초가 된다. 짧은 기간에 경제성장과 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경험, 한류로 세계를 매료시킨 문화가 외교력의 인식적 기초이다. 그리고 건국 이래 국제무대에서 북한과 치열하게 벌인 정통성 외교로 쌓아온 좁은 의미의 외교력도 갖고 있다.
그러한 국력을 기반으로 박 대통령이 탈진할 정도로 노력해 외교적 성과를 이루었다면 그 성과를 다져야 한다. MOU를 구체적인 이행으로 옮기고 그것이 미래에 확대 재생산을 하는 구조를 갖춰나가야 한다. 그 일은 총사령관(대통령)이 아니라 단위부대와 일선의 장병이 수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유념할 일이 있다. 우리나라의 외교적 매력과 실력의 바탕이 된 ‘과거의 역정’이 미래의 성취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첫째는 남북한이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정통성을 다투던 시절의 관행과 인습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다퉜으니 그 경쟁은 항상 제로섬이었다. 남북이 서로를 깎아내렸으니 ‘형제의 난’처럼 부끄러운 모습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한 경쟁은 끝났다. 정치적, 경제적, 외교적으로도 북한은 더 이상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하고 있다. 정통성 외교 시절의 인습에 따라 북한을 비난하고 비방하면 북한을 경쟁상대로 인정하는 것이 된다. 우리의 처지를 북한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어리석은 일이다.
북한 문제를 외교적 안건으로 다룰 경우 그것을 더 이상 한국의 안보, 한반도의 안정에 대한 위협으로만 내세울 일은 아니다. 북한의 핵무장과 도발적 언행은 국제사회의 일체성과 존엄성에 대한 도전으로 문제 삼아야 한다. 우리가 앞장서는 이유는 형제국의 잘못에 대한 도덕적 책임감 때문이라고 해도 좋다.
둘째로는 아프리카 국가들을 포함한 개발도상국과의 관계에서 ‘지나친 자신감’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가진 외교적 매력의 하나는 ‘단기간에 가난과 독재를 떨쳐낸’ 남다른 성취의 경험이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교만’의 함정에 빠질 수 있고, 그로 말미암아 그 매력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역설적인 어리석음을 범할 우려가 있다.
지나친 자신감의 영어 표현은 고대 그리스어에 기원을 둔 ‘휴브리스(Hubris)’이다. 휴브리스는 소포클레스 비극(悲劇)의 핵심 주제를 이룰 정도로 인간 심리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이는 자기정체성의 문제라는 의미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도취적 경향이 있다. 그것은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니 정상적인 현상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에게 자기 존재의 확인은 남들과의 관계에서 가능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남으로부터 ‘자신의 잘남’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잘남을 이용해 남을 학대하고, 자신의 잘남에 빗대어 남의 못남을 빈정거리기도 한다. 그게 바로 지나친 자신감이다. 교만의 욕구는 낮은 지위에 있다가 급속한 상승을 경험한 자수성가한 사람일수록 강하다.
우리는 피식민지배, 분단과 전쟁, 가난과 독재 등 어려운 과거를 떨치고 짧은 기간에 세계의 중심국가로 떠올랐으니 지나친 자신감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교만 추구는 인간 본연의 심리에 근거한 것인지라 이미 우리나라에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선진국 출신 외국인에게는 매우 친절하고, 개도국에서 온 근로자를 학대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격이 국력이다
총력외교 시대에 우리의 외교적 능력과 태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한국을 잘 아는 외국인들은 한국 외교에 대해 두 가지를 지적한다. 한국은 세계 제2, 3위의 경제대국인 일본을 우습게 아는 유일한 나라인데, 다른 한편으로는 주변국을 고래에 빗대고 스스로를 새우로 비하한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인식에는 과대망상과 피해망상이 공존한다는 지적인데, 이는 과거의 어려움과 그 어려움을 극복한 경험에서 오는 인식적 혼란으로 보인다.
새로운 외교의 시대를 맞아 새로운 외교적 정체성을 추구할 때가 됐다. 과거의 망령을 떨쳐 자존자대(自尊自大)하고 자중자애(自重自愛)하여 자기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자기정체성에 걸맞은 외교적 태세를 유지함으로써 국격(國格)을 높여야 한다. 국가의 매력이 국력이듯 국격도 국력이다. 우리는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외교전의 총사령관이 탈진할 정도로 강행군한 이유가 국격을 높여 국력을 상승시키려는 것이었다면, 외교전의 전사들은 이를 이해하고 조응하는 것이 마땅하다.
김태현 중앙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정치학 박사.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및 외교안보연구실장 역임. 현재 한국국제정치학회장, 중앙대 국가대전략연구소장, 외교부·통일부 정책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