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차 당대회로 본 김정은 시대의 인물들
원로에겐 명예를, 신세대엔 실무를,
그리고 김정은에게는 권력 강화
청년을 강조하며 원로를 껴안은 북한의 7차 당대회에서는 어떤 인물이 등장했고, 어떤 이가 사라졌는가. 김정은은 누구와 북한을 끌고 나갈 것인가.
지난 5월 평양에서 36년 만에 북한 노동당 제7차 대회가 열렸다. 김정은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으로 추대됐고, ‘김정은 시대’를 이끌어갈 핵심 간부 진용이 새롭게 선출됐다. 김정은은 당 중앙군사위원장, 정치국 상무위원 등의 직책을 겸임해 명실상부한 ‘당의 중심’ 지위를 보유하게 됐다.
이러한 권력 배치는 2인자가 존재할 수 없는 고도로 집중화된 구조로, 김정은의 ‘영향력 확대’와 ‘권력 안정화’에 중점을 둔 것이다. 김정은이 초기부터 직면했던 ‘권위 구축’과 ‘경제 회생’이라는 2대 과제에 입각해 ‘지배 세력의 부동성과 집행적 보완성’을 강화했다는 정치적 함의가 있다.
북한은 2012년 4월 김일성 생일 100주년에 맞춰 김정은을 내세우며 ‘김일성의 환생’으로 미화했다. 30대 시절의 김일성을 쏙 빼닮은 외모로 김일성의 ‘인민들 속에서’라는 정치 방식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것처럼 비춰졌다. 김정은의 이러한 등장은 북한이 두 가지 과제를 인식했다는 분석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첫째, 김정은의 권위를 구축하는 과제이다. 세습권력을 정당화해야 하는 김정은에게 김일성의 존재는 더없이 중요한 권력 기반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양상은 김일성의 권위(위대성)에 대한 의존 현상으로, 권위가 없는 권력 행사에는 한계가 있다고 인식했음을 드러낸다.
김정은은 자신만의 권위를 확보해야 ‘유일한 조절자’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따라서 지난 5년간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 당대회에서도 ‘영향력의 확대’를 권력 재편의 중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둘째, ‘경제 회생’이란 과제이다. 쇠퇴일로를 걷고 있는 북한의 경제 문제는 3대 세습권력과 궤를 같이한다. 북한은 2013년 3월 31일에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노선’을 채택했다. 이를 두고 1962년 김일성의 경제·국방 병진노선을 계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조부와 부친이 물려준 ‘부(負)의 유산’이기에 김정은은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경제·핵(군사) 딜레마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제7차 당대회에서 경제·핵 병진노선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 권력 재편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급격한 세대교체를 피했다
제7차 당대회에서는 36년 전의 제6차 당대회에 등장했던 원로 간부들이 자리를 유지해 관료적 권위주의 구조로 평가된다. 김영남(88)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기남(87) 당 선전비서, 박봉주(77) 내각 총리, 양형섭(91)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은 36년 전 김일성·김정일 앞에서 ‘충성 맹세’를 했던 원로들이다.
이번에 당 핵심부에 진입한 최룡해·황병서·김영철 당 부위원장, 박영식 인민무력부장,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최부일 인민보안부장 등도 3대째 충성하는 측근들이다.
김정일 시대 군부의 최측근 ‘3인방’ 중 한 명이던 이명수 군 총참모장은 이번 당대회에서 정치국에 진입했다. 이들은 김정은 정권을 지탱해주는 ‘지배 세력’으로 분류된다. 김정은 집권 이후 군 총참모장이 당 정치국 후보위원이었던 점을 미뤄볼 때 군 원로에 대한 특별대우로 보인다.
김정은은 현철해와 김영춘 등 김정일 시대의 군부 원로들에게 원수 칭호를 수여하고, 빨치산 출신 원로들에게 생일상을 차려주는 등 ‘원로 우대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김정일과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해외를 떠도는 이복 삼촌 김평일을 평양으로 불러들이는 등 아버지 시대의 원로 끌어안기에 나섰다.
이는 김정일이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삼촌이자 라이벌이던 김영주 전 부주석을 복권시키고 1995년 12월 ‘혁명 선배를 존대하는 것은 혁명가들의 숭고한 도덕 의리이다’라는 논문을 발표해 정권 안정을 도모한 것과 같은 통치 방식이다.
이번 당대회에서는 지배세력을 유임시켜 ‘명예직’을 주고 젊은 간부들에겐 실무를 맡겨 체제 안정과 쇄신을 절충했다. 원로들을 한꺼번에 몰아낼 경우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에 갈등이 생겨 불안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고위층의 세대교체는 없었지만 정치국 위원 수를 12명에서 19명으로, 정치국 후보위원도 7명에서 9명으로 늘린 것은 젊은 간부들의 진출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다. 고령인 김영남, 김기남, 박봉주, 양형섭 등의 유고에 대비해 젊은 간부들을 미리 배치한 것이다.
북한이 이번 당대회 참가자를 선발하면서 나이 제한을 두고 2012년 만 60세 이상 남성 당원과 만 55세 이상 여성 당원에게 ‘명예당원증’을 대거 수여했는데 이는 청년 세대의 정치참여율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은 당중앙위원회 위원이 됐는데, 이는 신세대 간부들의 본격적인 등장을 상징한다. 김정은 정권의 새로운 실세로 떠오른 조용원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도 당중앙위원회 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당대회 대표자 가운데 청년 대표의 수도 증가했다. 이번 당대회 대표는 모두 3467명인데 이는 36년 전 제6차 당대회 대표자 3220명에 비해 200여 명 증가한 숫자이다. 인구 1000명당 1명의 대표자를 뽑는 기준으로 볼 때 청년 당원의 수가 20만여 명 증가한 셈이다.
김정은은 집권 초기부터 ‘청년 강국’을 기치로 30대 젊은 지도자에게 맞는 젊고 새로운 인물들을 주요 보직에 앉히며 세대교체 작업에 나섰다. 시·군 당 책임비서들과 조직비서들을 40대로 바꾸고 내각과 성, 중앙기관의 국장급 간부들도 대부분 40대로 바꿨다. 군부에서도 40대 소장과 중장이 나왔다.
내각의 경우 부총리 6명 가운데 절반이 50대로, 세대교체의 폭이 가장 컸다. 통일연구원이 지난달 김정은 집권 첫해인 2012년 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의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기사 중 615건을 토대로 주요 인물들의 특징을 분석한 결과, 당의 젊은 인재 활용 빈도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북한이 당대회 개최를 선언했던 지난해 10월 31일부터 지난달 22일까지 노동신문에 실린 당대회 관련 기사 1554건을 분석하니 ‘청년’이라는 단어를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세대의 진출 가능성 확대
김정은이 젊은 세대에게 공을 들이는 이유는 그들을 자신과 함께 새 시대를 이끌어나갈 주역이자 체제 수호의 근간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새 세대는 병력자원이며 고속도로, 철도, 교량, 발전소 등 기간시설물 건설에 필요한 노동력의 주요한 원천이다. 특히 당중앙위원회 위원과 후보위원 가운데 54.9%가 새로운 인물로 채워진 상황을 볼 때, 향후 젊은 간부들의 중앙 권력 진출 가능성이 높아졌다.
군부 인사에서 두드러진 부분은 내각총리 박봉주의 정치국 상임위원회와 군사위원회 진입이다. 이는 상징성의 측면에서 경제·핵 병진노선을 합리화하고 현실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김정은은 제7차 당대회 사업총화 보고를 통해 핵을 이용한 에너지 문제 해결과 ‘경제 발전 5개년 전략’을 수행하는 방향에서 ‘내각’의 요구대로 새로운 우리식 경제 관리 방법이 추진되며 이와 함께 예산 배분에서는 군사비를 축소하고 지식경제 부문에 예산을 확대하겠다는 의도를 전달했다.
수소폭탄으로 대표되는 핵보유국의 지위를 제고하고 국가기구를 국방관리체계에서 경제관리체계로 변환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하지만 당 중앙군사위 기능은 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 예산을 확대하고 최대한 투자하겠다는 과학기술 분야가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비롯한 최첨단 군사장비와 경제 발전 전략의 교집합적 성격을 가지고 있어 ‘경제·핵 병진노선의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간부 진용에서 이용무·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 등 군부의 노(老)간부들이 당 정치국 위원과 후보위원에서 제외된 것은 군부 인사들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됐다는 의미다. 우리의 국방장관에 해당하는 인민무력부장과 합참의장에 해당하는 군 총참모장은 노동당의 정책결정기구인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진입하지 못했다. 인민무력부장과 총참모장은 지난 5월 사망한 강석주 전 노동당 국제비서 장례위원 명단에서도 서열이 크게 밀렸다.
군사 분야의 모든 사업을 총괄하는 당 중앙군사위원회에 김락겸 전략군사령관, 이용주 해군사령관, 최영호 항공 및 반항공군사령관, 윤정린 호위사령관, 김영복 특수11군단장, 김춘삼 총참모부 제1부참모장 등 군종 및 병종 사령관들이 제외됐다. 군부 핵심 인물들이 지배세력에서 배제된 것 역시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비대해진 권력을 축소해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군부 영향력 축소는 ‘선택과 집중전략’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 등장한 2010년 9월 노동당 제3차 대표자회의에서 부여받았던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직책도 폐지됐다. 당 중앙군사위원회는 1980년 제6차 당대회에서 19명으로 구성됐다가,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이후 사망, 퇴임 등으로 인원이 계속 줄어2010년 8월 6명으로 축소됐다. 2010년 9월 28일 열린 당 제3차 대표자회의에서 19명으로 다시 증가했고 제6차 당대회 때처럼 군부 실세 대부분이 포함됐다.
그러나 올해 5월에 열린 제7차 당대회에서는 인원이 17명에서 12명으로 축소되고 군종·병종 사령관 대부분이 배제됐다. 이는 김정일 시대의 유산인 선군정치에서 탈피해 김정은 중심의 선당정치를 펼치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또 군부에 대한 김정은의 장악력을 높이고, 선군정치 시대 특권화돼 있던 군부의 영향력을 축소해 당으로 이관하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제7차 당대회로 본 권력구조의 재편과 간부 진용 구성은 한마디로 김정은의 권력 안정화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의 잦은 교체와 숙청은 권력 엔트로피의 증가를 반영하고 김정은의 통치력에 누수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증거였고, 김정은의 권위(위대성)가 제대로 구축돼 있지 못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시장의 확산을 통한 사회적 엔트로피 증가도 만만치 않다. 최근 ‘70일 전투’에 이어 바로 ‘200일 전투’에 바로 돌입한 것도 전투기간의 대중운동을 통해 집단주의 정신을 고취해 시장 확산을 통한 개인주의 엔트로피를 축소하려는 인위적인 조치로 분석된다. 개인주의는 집단주의를 방해하고 결국엔 붕괴시키는 암적 요소이며, 집단주의가 무너지면 독재권력은 곧 청산되기에 사회적 엔트로피도 김정은 권력을 위협하는 위험요소이다.
권위는 복종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아직 김정은의 영향력은 미흡하다고 볼 수 있다. 경험에 따르면 대중이 반복되는 학습(교육, 문화, 경제발전 등)을 통해 통치자의 권위에 스스로 복종할 때 지배력이 안정된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당장은 김정은이 공포를 자극하고 폭력 수단을 동원해 대중을 움직인다 하더라도 장기적인 측면에서 지배력 유지에 한계가 드러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최경희 한양대 현대한국연구소 연구위원
함북 청진경제전문대 졸업 후 탈북해 한양대 중문과(문학사), 일본 시즈오카현립대(국제관계학 석사), 도쿄대(정치학박사) 졸업. 도쿄대 교양학부 강사,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 연구원 역임. 현재 일본 시즈오카현립대 한국조선연구센터 객원연구원. 일본 한국조선학회 회원, 조선일보 통일포럼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