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해외 은닉자금
현지인 명의 빌려 계좌 만들었다
몽땅 털리는 사고 당하기도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안은 회원국에 북한 은행 지점을 90일 이내에 폐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북한 해외 비자금의 완전한 동결은 이뤄지지 않는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한뜻으로 대북 제재에 나서고 있다. 북한에 들어가는 돈줄을 막아 핵과 각종 무기 개발에 자금이 전용되지 않도록 하고, 김정은 통치에 타격을 줘서 근본적인 변화를 유도하기 위함이다.
이번만큼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대북 경제 제재를 통해 북한으로 하여금 잘못된 행동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궁극적으로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내고자 전방위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 중심에 북한이 갖고 있는 금융 통로를 꽉 틀어막겠다는 의지가 있다.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 2270호는 강력한 대북 금융 통제를 담고 있다. 유엔 회원국에 있는 모든 북한 은행의 지점을 90일 이내에 폐쇄하도록 했다. 북한에 있는 회원국 금융기관 역시 인도적 활동 등을 제외하고 90일 이내에 사무소와 계좌 등을 폐쇄해야 한다.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에 따른 제재 대상의 해외 자산은 모두 동결하게 된다. 금(Gold)의 거래에 대해서도 기존 금융거래 금지의무를 적용하도록 명확하게 했다.
유럽연합(EU)은 대북 송금 및 금융 서비스 규제를 강화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6월 1일 북한을 주요 ‘자금세탁 우려국’으로 지정해 북한의 국제 금융망을 차단했다. 러시아는 5월 19일 중앙은행을 통해 북한 기관과 단체, 개인과의 모든 금융 거래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김정은이 유학 시절 수년 동안 머물렀던 스위스 정부마저 5월 18일 북한의 금융 및 자산을 전면 동결했다. 중국은행을 통해 거래하던 북한 무역회사들의 은행 거래도 대부분 차단됐다.
하지만 북한 자금줄을 완전히 옥죄는 데는 한계가 있다. 북한은 여러 차례 대북 금융 제재를 당하면서 교묘한 방법으로 자금 통제를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북 금융 제재의 실질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핵심 조치는 북한이 해외에 은닉한 검은돈을 몰수하거나 동결하는 일이다. 북한의 해외 은닉자금은 전부 김정은의 비자금이다.
김정은도 정확히 알지 못할 해외 은닉자금
북한의 해외 은닉자금 규모는 얼마나 될까? 김정은 말고는 정확히 알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의 해외 자금은 은밀하게 은닉이 이뤄지고, 여러 곳에 위장 분산돼 있는 경우가 많아 김정은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다.
북한이 해외에 숨겨둔 검은돈의 규모는 최소 30억 달러에서 최대 50억 달러 정도 되지 않을까 추정된다. 이러한 추정은 해외에서 직간접적으로 김씨 일가의 통치자금을 조성·관리해온 고위층 출신 탈북자의 전언과도 어느 정도 일치한다. 해외에서 조성·관리되는 돈은 1인당 평균 1000만 달러인데, 300명 정도가 비밀리에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해외 은닉자금은 단기간에 조성된 것이 아니다. 김정일 시절 때부터 오랫동안 조성돼왔고, 대부분 김정은에게 승계되었다(약 30억~40억 달러).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는 외화 상납 등의 충성 경쟁으로 증가한 것이 특징이다.
김정일로부터 물려받은 해외 은닉 비자금도 김정은 정권 시대에 들어와 확대됐을 것으로 파악된다. 북한의 대외 거래와 인력 송출이 대폭 늘었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국면에도 불구하고 불법적인 외화벌이 활동 등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해외 은닉자금은 누가 어떻게 조성할까? 북한 3대 세습·통치자금을 관리·담당해왔던 노동당 39호실이 직접 지휘한다. 39호실은 소속 기관을 통해 직접 비자금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인민군 정찰총국과 대외경제성 등 당·정·군에서 보내오는 ‘상납금’과 ‘충성자금’을 관리하는 김정은의 개인금고다.
39호실 산하엔 대성그룹이나 대성경제연합체 등 100여 개의 무역회사와 은행, 금광 등이 있다. 해외에 나가 있는 39호실의 각 기관들은 매년 3억~5억 달러를 벌어 김정은의 해외 비밀계좌에 분산 예치해왔다.
금 판매는 39호실이 전담하는데, 판매금의 전부는 39호실로 들어가 비자금으로 조성된다. 금 판매로 얻는 외화 수입은 연간 1억 달러 정도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공식, 비공식 대외무역 자금 결제 과정에서 일부 빼돌려 은닉하는 경우도 많다. 공식적인 수출대금으로 받은 외화(연간 30억 달러)의 일부(수출대금의 약 10%)가 김정은의 비자금으로 흘러 들어간다.
12개국 130여 곳에서 영업하는 북한의 해외 식당에서 벌어들이는 수입과 상품 판매수입(연간 5000만~1억 달러)의 상당 부분도 김정은의 해외 은닉자금으로 빠져나간다. 해외 인력 송출 사업을 통해 주민들이 피땀 흘려 번 돈(연간 2억~3억 달러)의 70% 정도를 착취해 김정은의 금고로 보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비자금은 은밀한 불법 거래에서 벌어들인 돈이다. 국제 감시망을 피해 군사 무기를 판매하고, 핵과 군사 기술을 전수하며 받은 대가(연간 2억 달러)가 해외 비자금으로 은닉된다.
북한은 사이버 보안이 취약한 동남아 국가들에 불법 온라인 도박 사이트를 차려놓고 정보기술(IT) 인력을 투입해 비자금을 벌기도 한다. 대남 사이버 공격을 하며 축적한 사이버·IT 기술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에도 검은돈 은닉하고 있을 것
중국, 동남아 등 해외에 파견한 IT 인력의 규모는 2000명 수준이며 1인당 연평균 2만~3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슈퍼노트’로 불렸던 위조달러를 제조·유통시키는 아이템도 북한이 해외에서 비밀 자금을 벌어들이는 수단이었다.
해외에서 코끼리 상아와 코뿔소의 뿔을 밀수하고 마약을 밀매하며 위조 화폐와 가짜 담배, 밀주(密酒)를 제조해 유통시키고 불법 무기를 운송하면서 김정은의 비자금을 만들고 있다.
북한은 해외 은닉 비자금을 어느 국가에 어떻게 숨겨놓고 있을까.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BDA) 사태 이후 북한의 은닉자금 처리 방식은 고도화됐다. 북한의 비자금은 예금자의 비밀을 보호해 조세 회피처로 이용되는 스위스나 버진아일랜드 등에 만든 비밀계좌에 분산 예치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홍콩, 마카오, 동남아 등지에도 검은돈이 많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 등 불법 계좌를 찾기 어려운 국가에도 숨겨놓았을 수도 있다.
북한의 해외 은닉자금은 규모가 크고 관리하는 방법이 다양하다 보니 사고도 수시로 발생한다. 검은돈을 관리하던 북한 간부가 돈을 갖고 해외로 탈출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다. 차명계좌에 분산 예치해놓음에 따라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2012년 중국 단둥에서 북한인과 관련된 사기 사건이 일어났다. 북한 관리원에게 명의를 사용하게 해줬던 중국인이 60만 달러를 횡령해간 것이다. 북한 관리원은 타인 명의 계좌를 불법으로 이용해왔으니 상소할 수가 없었다.
2014년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북한의 관리원이 러시아 상인 명의로 만든 계좌에 불법으로 예치해놓은 800만 유로 상당의 자산을, 은행 파산을 근거로 그 러시아 상인이 횡령해버린 것이다.
2014년에는 김정은의 비자금 5000만 달러 정도를 중국인 명의의 계좌에 보관시키고, 돈을 더 불리기 위해 그 관리를 다른 이에게 맡겼는데, 그가 몽땅 갖고 도망가버린 일도 있었다. 그 때문에 북한에서 조사단이 나와 몇 개월간 조사하고 책임자를 평양으로 압송해 처벌했다.
그때 해외 은닉자금의 책임자였던 노동당 39호실의 전일춘 실장은 책임을 피하기 위해 김정은에게 해외 자금 관리원들의 탈북 동요가 있다는 보고를 올리고, 전원을 평양으로 복귀시키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해외 비밀자금을 관리하던 북한의 고위급 인사들이 탈북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해당 국가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불법적으로 조성·관리되는 북한의 해외 비자금은 북한 주민들과 상관없는 김정은의 통치자금으로 활용된다. 용처는 김씨 일가의 욕망 채우기와 개인적 우상화 등등이다.
핵개발과 무기 수입뿐만 아니라 김씨 일가 동상 건립, 김정은의 치적사업 등에 사용된다. 오메가 등 초고가 시계를 수입해 측근에게 나눠주는 선물정치에 사용되고, 김정은 가족의 사치품 구입에도 쓰인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쓰이는 자금 유입을 차단하고, 김정은 정권의 약점을 정조준해서 북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대북 금융 제재가 빈틈없이 이행돼야 한다. 그것은 해외에 있는 북한의 검은돈을 동결·몰수토록 하는 일이다.
북한의 해외 은닉 비자금을 찾아내려면 중국을 비롯한 해당 국가의 절대적인 협력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 유엔 안보리뿐만 아니라 양자 차원에서도 김정은의 해외 은닉 비자금을 뿌리 뽑는 조치를 강화해나가야 한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동아대 경제학박사. 합참 북한정보본부 자문위원, 남북경제인협회 부회장 역임. 현재 민주평통 상임위원,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개성공단기업협회 자문위원, 북한연구학회 부회장. 저서 <통일 기업에 기회인가 위기인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