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지난해 3월 24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2014 핵안보정상회의 개회식에 참석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아베 일본 총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15년은 미·중 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미·일과 중·러 대결구도가 명확해지고, 북한은 오랜 두 우방과 관계발전의 기회를 맞을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 모두 국제관계의 냉각과 비난을 감수하면서 북한을 감싸지는 않을 터라 북한이 원하는 대외정책의 성과는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2015년 신년사에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온 민족이 힘을 합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가자”라는 구호와 함께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 데 따라 최고위급 회담도 못 할 이유가 없다”고 언급했다. 이는 지난해 말 통일준비위원회의 남북 당국 간 회담 제안에 대한 응답으로 해석되면서 남북대화와 고위급 회담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한편 북한은 신년사에서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은… 핵 억제력을 파괴하고… 우리 공화국을 힘으로 압살하려는 기도가 실현될 수 없게 되자 비열한 인권 소동에 매달리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우리 사회주의 제도를 압살하려는 적들의 책동이 계속되는 한 선군정치와 병진 노선을 변함없이 견지할 것”임을 밝혔다.
이후 미국은 “소니픽처스 해킹은 북한의 소행”이라는 사실을 거듭 밝히면서 강화된 대북 금융 제재안을 내놓았다. 과연 북한의 대외정책은 어떠한 모습을 보일 것인가. 신년사에서 밝힌 “대외관계를 다각적으로 주동적으로 확대 발전”시키는 노력은 북·중관계와 북·중·러 관계의 심화에 집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 지난해 11월 11일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회의장에 도착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시진핑 중국 주석의 영접을 받고 있다.
미·중 경쟁과 미·일-중·러 대결 구도 심화될 것
먼저 북한은 미·중 협력과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북·중관계 회복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엔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와 중국의 ‘신안보관’이 등장했다면 올해는 양자 간 갈등이 본격화될 것이다. 2013년 6월 서니랜드에서 미·중 정상은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눈 듯했으나 이후 양국 관계는 협력보다는 갈등에 무게중심을 두면서 진행돼왔다.
중국은 ‘신형 대국관계’ 비전에서 대국 간 상호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핵심이익’에 대한 존중을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이 말하는 핵심이익의 모호성을 의식하면서 클린턴 국무장관 재임 시 발표한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 지속적으로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5월에 열린 제4차 아시아 교류 및 신뢰 구축회의(CICA) 정상회의 기조연설에서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 국가가 담당한다’는 ‘신안보관’을 제시했고,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대항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맞서는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에 대한 구상을 밝혔다.
향후 미국은 3대 국제 문제(이슬람 국가, 우크라이나 사태, 에볼라)에도 불구하고 외교정책의 중심을 아시아로 옮기는 대전략을 유지할 것이며, 중국은 상승하는 국력과 5세대 지도부의 등장으로 ‘중국의 꿈’과 ‘아시아·태평양의 꿈’을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미·중 간의 동아시아 패권을 둘러싼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북한은 자신의 전략적 가치를 강조하면서 시진핑 체제 이후 소원해진 북·중관계 개선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북한은 지난해에 나타난 미·일과 중·러 사이의 대결 구도를 이용해 북·러와 북·중·러 관계를 심화시키고자 할 것이다. 일본은 지난해 제3차 아베 내각의 출범으로 올해에도 미·일동맹을 기축으로 우경화와 재무장 행보를 지속할 것이다. 비록 북한과 일본은 지난해 5월 스톡홀름 합의를 발표한 바 있으나 납치자 문제의 성격과 북핵 문제의 장기화로 일본이 미국을 벗어나 독자적인 동아시아 외교를 취할 개연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서방의 경제 제재와 더불어 미국발 셰일혁명으로 야기된 유가 하락으로 위기를 겪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는 지난해 가스 공급협정 체결과 정상회담에서 나타난 중·러 밀월관계를 내재된 갈등 요인에도 불구하고 사실상의 동맹관계로 발전시키고자 할 것이다. 2015년은 미국과 중국의 갈등 심화 속에서 미·일과 중·러라는 대결 구도가 명확해지는 상황을 맞이할 것이고, 북한은 오랜 두 우방과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가질 것이다.
<사진> 한국, 미국, 일본의 북한 핵문제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지난해 4월 7일 미국 워싱턴에서 회담을 갖고 3국 공조 체제를 재가동했다. 왼쪽부터 일본 대표 이하라 준이치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미국 대표 글린 데이비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한국 대표 황준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신냉전 구도 부활 개연성 낮아
그렇다면 한·미·일과 북·중·러의 대결을 의미하는 신냉전이 도래할 것인가. 일각에서는 이러한 북방 세력과 남방 세력 간 대결 구도가 동아시아에서 재현될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그러한 개연성은 낮다. 핵개발 지속과 인권 문제, 사이버 테러로 인해 국제적 고립과 압박이 심화한 상황에서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에 접근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다.
러시아 역시 서방의 경제 제재와 유가 하락 속에서 반미연합 전선을 환영할 것이고, 중국은 북한에 대한 비판적인 국내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북한 길들이기를 통해 한반도 안정과 중국 영향력 유지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원하는 ‘수준’의 북·중 및 북·러관계 개선은 힘들 것이다. 러시아의 북·러 협력은 결국 남·북·러 협력을 통한 극동과 시베리아 개발을 주목표로 삼기 때문에 북·러관계 강화로 빚어질 수 있는 한·러 및 한·일·러 관계의 냉각을 피하고자 할 것이다.
중국 역시 북·중관계를 유지하지만 미·중관계를 훼손하거나 국제사회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북한 감싸기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북한의 낮아진 경제적, 전략적 가치로 인해 북방 3각과 남방 3각의 대결 구도 정착은 북한의 희망사항으로만 그치고 말 것이다. 냉전기로 돌아가기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치러야 하는 (기회)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한편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은 부활할까. 중국은 지속적으로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주장하지만, 미국은 북한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를 통해 공화당이 상·하원을 장악한 상황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정책은 중동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북한 인권 문제와 사이버 테러로 말미암아 기존의 ‘전략적 인내’로 표현되는 미국의 대북 압박과 제재 수위는 상승한 상황이어서 6자회담 성사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비록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와 전직 관료들을 중심으로 북한과의 ‘탐색적 논의’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존재하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유약한’ 외교에 대한 여론과 야당의 비난 속에서 이란과의 핵 협상도 난항을 거듭하는 실정이다.
만약 북한이 핵시설 동결과 핵사찰 수용 등과 같은 전향적 조치를 취할 경우 미국과 주변국이 긍정적인 반응을 할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 북한 정권은 2015년을 ‘통일대전 완성의 해’로 선언한 바 있으며, 신년사에서 “선군정치와 병진노선을 변함없이 견지하고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굳건히 지킬 것”을 강조하고 있다.
‘통일 대박’ 앞당기려면
2015년 북한은 자국의 낮은 전략적, 경제적 가치로 인해 대외정책에서 원하는 성과를 내기는 힘들 것이다. 김정은 정권은 남·북한, 북·중, 북·러관계를 통한 경제 및 외교 활로를 모색하겠지만, 핵 포기 의사가 없는 상황에서 남북관계 변화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중국과 러시아는 각각 미·중관계와 한·러관계의 훼손을 부담스러워할 것이다. 하지만 핵 포기와 개혁·개방을 선택할 경우 체제 유지가 힘든 김정은 정권은 통치자금 확보와 내부 통제의 어려움 속에서 정권 유지의 딜레마에 다시 한 번 직면할 것이다.
반면 한국은 한미동맹을 이른바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격상하면서 한중 협력을 비(非)경제 영역으로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할 것이다. 2008년 한미 정상이 한미동맹을 가치동맹으로 언급한 이후 양국 관계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을 추구하는 글로벌 차원의 동맹으로 발전해왔다. 북한 인권과 일제강점기 위안부 문제 등과 관련해 한미 양국은 인권과 민주주의 확산을 강조하는 가운데 유·무형의 협력을 확대하고 강화할 것이다. 동시에 중국으로부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일본의 우경화 및 재무장과 관련해 ‘역사 공조’ 제의를 끊임없이 받으면서 경제 이외의 영역에서 협력 가능성을 보게 될 것이다.
따라서 2015년 한국은 미국과의 가치동맹과 중국과의 역사공조를 내실화하면서 통일 준비를 구체화해야 한다. 북한 핵개발과 인권 문제, 위안부 문제에서 한미 공조를 추구하는 한편, 중국과 동아시아 역사인식의 공감대를 확대하면서 북한 핵개발을 비롯한 역내 갈등 해소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서로 다른 영역과 이슈에서 주요 협력 대상을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다수의 전략적 딜레마에 봉착하게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예상하고 우선순위에 따른 입장 정리를 통해 전략적 공간을 창출하고 활용하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할 때 ‘통일 대박’은 미·중 경쟁과 미·일, 중·러의 대립 구도 속에서도 한반도에 다가올 것이다.
정성철 통일연구원 국제전략연구센터 연구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졸업, 동 대학원에서 외교학 석사. 미국 럿거스대 정치학 박사. 연구 분야는 통일외교와 국제 분쟁, 외교정책과 동북아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