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 세대도 일본에서 어렵게 차별을 이기며 살아왔는데, 그런 차별이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일본 내 탈북자 지원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일본에 거주하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통계 자료를 발표했다. 통계에서 파악된 165명(일본 정부 추정 200여 명)의 연령별 분포를 보면 10세 미만이 11명, 11~20세 9명, 21~30세 24명, 31~40세 34명, 41~50세 21명, 51~60세 26명, 61~70세 24명, 71~80세 4명, 81세 이상의 고령자도 3명이나 됐다. 나머지 9명의 나이는 확인되지 않았다. 거주지별로는 도쿄 등 관동지역에 112명, 오사카 등 관서지역에 51명, 거주지 불명 2명 등으로 나타났다.
민주평통은 지난해 11월 26일 서울 세종호텔에서 ‘재일본 탈북자 초청 간담회’를 개최했다. 일본 거주 북한이탈주민의 애로사항을 듣고 통일의지를 고취하려고 개최한 이날 행사에는 기노시타 기미가쓰(가명) 관동탈북자협력회 회장 등 북한이탈주민 7명이 참석했다. 그중 한 사람은 “그 땅에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사람이 누가 있겠나. 씨앗은 똑같은 씨앗인데 어느 땅에 뿌려지느냐에 따라 알차게 여물거나 구실을 못 하게 되거나 한다. 우리는 잘못 떨어진 씨앗”이라며 눈물을 쏟았다.
이번 한국 방문은 재일한국민단(이후 민단) 탈북자지원민단센터를 통해 이뤄졌다. 여건이(67·사진) 민단 부단장 겸 센터장은 2003년 일본 내 탈북자지원민단센터 설립을 주도했고 지금까지 이 센터를 이끌고 있다. 여 센터장은 지난해 9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제16기 해외지역회의에 참가했을 때도 일본 내 북한이탈주민 200여 명에 대한 한국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거듭 당부했다.
“조총련의 재일동포 북송사업(1959~1984년)으로 북한에 간 사람이 9만4000명에 달합니다. 당시 재일동포의 7분의 1에 이르는 수이고, 일본인도 6000명이나 됩니다. 북송선을 탔던 이들 중 생존자와 가족, 북한에서 태어난 자손이 일본으로 돌아오고자 하나 일본 정부는 순수 일본인을 제외한 탈북자들의 입국을 반기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북송사업을 주도한 조총련으로선 북한을 배반하고 돌아오는 이들을 드러내놓고 지원할 수 없지요. 결국 민단이 나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초기에 민단 원로들은 탈북자 지원을 반대했다. 1959년 북송사업이 시작됐을 때 목숨 걸고 북송을 반대했던 재일동포 1세대들은, 조총련이 시작한 일을 왜 민단이 뒷수습을 해야 하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1994년부터 북한의 식량 문제가 심각해지자 탈북자가 속출했고, 일본으로 오는 탈북자 수도 함께 증가했다. 조총련 간부들조차 은밀히 민단으로 연락해서 북한을 벗어나 중국에 머물고 있는 친척이 있는데 도와줄 방법이 없느냐고 문의를 해올 만큼 상황은 점점 더 긴박해졌다. 탈북자 문제는 한국, 북한, 중국, 일본 모두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지만 인권 차원에서 외면할 수도 없었다.
<사진> 북한이탈주민의 일본 생활 정착을 돕기 위한 일본어 교실 개강 당시 일본어 사전을 증정하고 있는 여건이 센터장(얼굴이 노출된 사람들은 일본의 NPO단체 임원들).
정치적으로는 민감해도 인도적 도움 필요해
2002년 여 부단장은 김재숙 당시 민단 단장에게 탈북자지원센터 설립을 건의하는 한편 순수하게 인도적 차원에서 하는 일이라며 민단 원로들을 설득했다. 이렇게 1년여를 준비한 끝에 2003년 6월 3일 민단 중앙본부 내에 탈북자지원센터가 문을 열었다. 그 후 해마다 탈북자 10여 명이 탈북자지원민단센터의 돌봄을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민단 오사카본부 내에도 지원센터를 설립했다.
“저희 센터는 일본 민간기구인 ‘북조선난민후원기금’, ‘북조선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모임’과 협력해 탈북자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일본 단체가 중국에 있는 탈북자 가운데 일본행을 원하는 사람을 데려오면 저희가 공항에 나가 그들을 맞이합니다. 일본 정부는 탈북자 1인당 10만 엔을 지급하는 것으로 이 일에서 손을 떼고, 이후 민단에서 그들의 정착을 돕고 있어요.
구청으로 데려가 외국인 등록을 해주고, 거처를 마련해주고 가스, 전기, 전화 사용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을 하나하나 가르쳐줘야 합니다. 중국에서 불법체류자로 쫓기며 살아온 분들 가운데에는 경찰 순찰자의 사이렌 소리만 들려도 자다가 벌떡 일어날 만큼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려 정신과 상담이 필요한 경우도 많습니다. 이들을 위해 재일동포 3세인 의사가 상담을 해주고 있어요. 일본 사회에 정착하려면 무엇보다 일본어 습득이 시급한데 어학원에 다니는 비용도 센터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여 센터장은 탈북자들이 자신을 조선족(중국 동포)이라고 속이는 것이 더 가슴 아프다고 했다.
“일본인 납치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 국민의 눈에 북한 사람은 ‘악마’나 다름없어요. 그러니 북조선 출신이라고 하면 사람을 사귈 수도 없고, 일자리를 얻기도 어렵습니다. 우리 부모 세대도 일본에서 어렵게 차별을 이기며 살아왔는데, 그런 차별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일본 내 탈북자 지원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여건이 센터장은 1948년 시즈오카현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2세로 본적은 충북 영동이다. 일본에서 부동산 임대업으로 성공한 사업가이지만, 1남 2녀 가운데 막내딸이 3년 전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 사는 것이 또 다른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뒤늦게 배운 한국어가 다소 어눌해도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