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샘 씨는 1997년 초 탈북해 10년 가까이 중국에서 불법 체류자로 살다가 2006년 말 한국에 왔다. 이경자 작가는 이샘 씨 가족 3대가 겪은 이야기를 토대로 장편소설 <세 번째 집>을 발표했다. 소설의 집필 과정에 참여한 뒤 이샘 씨는 이제 ‘내 소설을 쓰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
이경자(67) 작가의 장편소설 <세 번째 집>은 할아버지 김정남에서 손녀 성옥까지 3대에 걸친 이야기다. 그러나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징용으로 관부연락선을 탄 할아버지, 일본에서의 보장된 미래를 포기하고 니가타항에서 만경봉호를 타고 북한으로 온 아버지, 북한에서 탈출해 남한에 정착한 손녀의 이름만 바꾸면 그대로 이샘 씨의 가족사다. 이샘(42) 씨는 1973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났다. 옛 명칭이 주을인 경성은 물 맑고 경치가 좋아서 김일성의 특각(별장)이 세워졌고, 양질의 점토가 많아 도자기로 유명한 곳이다. 이 씨는 소설 속의 성옥이처럼 탁아소에서 “경애하는 아버지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부럼 없어라”를 노래하며 자랐다. 그러나 북송선을 타고 온 재일교포 출신들에게 붙는 ‘귀국자’란 낙인에 괴로워하던 아버지는 끝끝내 북한에서의 삶에 적응하지 못했고, 딸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샘 씨는 이경숙 작가에 대해 “북한 사람들의 마음을 정말 잘 이해한다”고 감탄했다
일제 징용, 북송, 탈북 3대에 걸친 가족사
“저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왜 술만 마시는지, 무슨 불만이 그리도 많아 화를 내시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아니, 이해할 수가 없죠. 그러나 수많은 기억의 편린 가운데서 왜 아버지가 바닷가에 앉아 하염없이 담배만 피웠는지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고향을 떠나 남의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보니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거겠죠.”
1997년 스물네 살의 이 씨는 함경북도 청진 거리에 굶주려 형체도 알 수 없는 시신들을 넘어 여동생과 함께 압록강을 건넜다. 그때만 해도 돌아갈 수 없는 먼 길을 오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고 한다. 2006년 11월 대한민국 국민임을 증명하는 신분증을 받은 기쁨도 잠시, 그는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오랜 병환 끝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금도 이 씨는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에는 무작정 고속버스를 타고 동해로 달려간다. 그곳에서 그 옛날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아버지를 부르며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보고 싶다고 소리를 지른다. 아버지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순간부터 자신의 존재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했다. 마치 뿌리 없는 나무에 새 순이 뻗어나가 뿌리가 자라는 것처럼 말이다.
이경자 작가는 고향인 강원도 양양을 무대로 한 자전적 소설 <순이> (2012년 민중문학상 수상)를 발표한 후, 분단 문제를 균형 잡힌 시선에서 다루려면 이제 북쪽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 소설을 구상하며 수많은 탈북자들과 접촉했고 이샘 씨의 사연을 듣는 순간 푹 빠져들었다.
“부모 때문에 억지로 귀국선(북송선)을 탔지만 이샘 씨의 아버지는 어쩔 수 없는 자유주의자이고 지식인이었죠. 북한 체제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딸은 엄마 배 속에서부터 김일성주의로 ‘유전자 조작’이 돼 태어났어요. 딸은 억울했죠. 자신은 인물도 좋고, 실력도 있고, 체제에 대한 충성도도 높은데 오로지 ‘귀국자’인 아버지가 딸의 앞날을 방해했으니까요. 할아버지에서 아버지, 그리고 딸로 이어지는 난민의 역사, 이샘 씨의 슬픔이 너무나 소설적이어서 작가로서 욕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이 작가는 이 씨에 대해 “문학적 자질이 뛰어나다”고 칭찬했다.
이 작가는 <세 번째 집>을 집필하면서 이 씨와 40차례 가까이 만났다. 사실 이샘 씨는 혹시 이 일 때문에 북한에 남겨진 가족에게 피해가 갈까봐 마지막까지 고민하고 망설였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 기회에 아버지의 억울한 인생을 보상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을 통해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고, 아버지의 인생을 글로 되살리면서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재일교포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었다는 점에 위로받고 있다.
“탈북자는 한국에 들어오는 순간 뿌리가 없어진 나무 같은 존재가 돼요. 그래서 쉽게 넘어집니다.”(이샘)
“집은 유년의 추억이고, 고향이고, 자궁과 같아요. 탈북자들에게 고향이란,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반드시 돌아가고 싶은 곳이죠.”(이경자)
“꿈이 있는 사람은 힘들어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샘 씨는 중국에서 만나 결혼한 한국인 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딸이 하나 있다. 그의 소망이라면 딸에게 튼튼한 뿌리를 만들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