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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인제 자작나무 숲길

‘순백의 정령’을 만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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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연인을 감싸던 ‘순백의 정령’들이 보고 싶어지면 마음은 자작나무 숲으로 달려간다. 자작나무는 북위 45도 위쪽 추운 지방에서 잘 자라는 수종으로 백두산 개마고원 일대가 유명하고, 남한에서는 강원도 인제의 원대리와 수산리에 자작나무 숲이 조성돼 있다.

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레저 전문기자

영화 ‘닥터 지바고’는 온통 자작나무 숲이다. 자작나무는 정갈하고 기품 있다. 고결하다. 흰 눈밭의 자작나무 숲은 ‘순백 정령들의 궁전’이다. 우아하고 신비롭다. ‘닥터 지바고’ 영화 내용은 잊었어도 뽀얀 살결의 자작나무 숲은 아직까지 기억에 또렷하다.

러시아 사람들은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명함을 내민다. 시베리아 사람들은 자작나무에서 자라는 차가버섯 차를 마시고, 자작나무로 페치카를 달군다. 자작나무 껍질에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쓴다. 죽으면 자작나무 껍질 옷을 입고 묻힌다. 우리나라 자작나무는 백두산 개마고원 일대가 으뜸이다. 남한에서는 강원도 인제의 원대리와 수산리가 볼 만하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자작나무 숲은 몽환적이다. 눈발이 자작나무 흰 목덜미를 살랑살랑 간질인다. 자작나무는 샛별이다. 신새벽 초롱초롱 반짝이는 계명성이다. 자작나무 이파리가 하늘에 올라가면 샛별이 되고, 그 별이 늙어 떨어지면 자작나무 품에서 잠이 든다.

겨울 자작나무는 이를 악문다. 쌩! 쌩! 칼바람에 몸이 아리다. 수십 수백만 그루가 집단 퍼포먼스를 한다. 꼿꼿하지만 여리다. 가녀린 나무들이 한데 모여 거대한 백색 공화국을 만든다. 찬 바람이 불면 가늘게 몸을 떤다. 생선 하얀 잔가시가 비탈에 무수히 박혀 있는 것 같다. 눈부신 옥양목 맨살 드러낸 채 ‘얼음 숲’을 밝힌다. 가끔 촘촘한 ‘참빗 가슴뼈’ 틈새로 햇살이 비껴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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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자작 나무 타는 소리

자작나무는 북위 45도 위쪽 추운 지방에서 잘 자란다. 기름기가 많아 탈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낸다.

자작나무라고 이름 붙은 이유다. 강원도 인제 자작나무 숲은 두 곳이 있다. 하나는 원대봉 자락에 위치한 원대리 자작나무 숲이고, 다른 하나는 응봉산 자락의 수산리 자작나무 숲이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국유림으로 봄과 가을 일정 기간 산불 경계기간에 입산을 통제한다. 다행히 올해는 3월 15일까지 문을 연다.

인제읍 원대리의 자작나무 숲은 오붓하고 아늑하다. 하얀 요정들의 순백 공화국. 눈밭의 ‘숲속 작은 나라’다. 1990년대 초반부터 조림되기 시작해 25ha(7만5000여 평)에 4만여 그루가 빽빽하게 서 있다. 아담한 자작나무 숲 위로 새파란 하늘이 덩그마니 걸려 있다. 규모 면에서 수산리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한곳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어 감상하기엔 안성맞춤이다. 숲에 다가서면 향긋한 나무 냄새가 후욱! 코에 스며든다. 머릿속이 박하처럼 맑아진다. 바로 자작나무 특유의 ‘자일리톨 껌’ 향기다. 자작나무 사이의 산책 코스가 오붓하다. 1코스 0.9km, 2코스 1.5km, 3코스 1.1km. 다 돌아봐도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매끈한 자작나무 몸을 만져보는 맛이 그만이다. 단단하면서도 촉촉하다. 자작나무 움막집은 아이들에게 인기 최고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가려면 산림초소에 도착해서 방명록을 작성한 뒤 임도를 따라 3.2km쯤 걸어야 한다. 승용차는 산림초소 부근 도로나 빈터 주차장에 세워둬야 한다. 입구에서 아이젠을 빌려준다. 아이들과 같이 걸어도 큰 무리가 없다. 오고가는 시간은 넉넉히 잡아 왕복 3시간이면 충분하다.

천마도와 ‘하늘로 가는 사다리’

1973년 경주 천마총에서 자작나무 껍질 위에 그려진 ‘천마도(天馬圖)’가 발굴됐다. 말안장에 깔아 ‘흙 튀김 방지’에 쓰는 장니(障泥·가로 75cm 세로 53cm)에 ‘혀를 빼어 물고 하늘을 나는 동물 그림’을 그렸다. 도대체 이 동물은 뭘까. 어느 학자는 백마(白馬)라고 했고, 어떤 이는 머리에 뿔을 보니 ‘상상 속의 동물 기린’이 틀림없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말’로 의견이 모아졌다. 뿔이 아니라 ‘말 상투’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 그림을 자작나무 껍질에 그렸다는 것이다. 도대체 5, 6세기(추정) 경주에서 자작나무 껍질을 어디서 어떻게 구했을까. 경주는 북위 35.8도에 불과하다. 아예 자작나무가 자랄 수 없다. 백두산 자작나무는 대부분 사스레나무다. 껍질은 시베리아 자작나무와 같이 하얗고 종이처럼 얇게 벗겨진다. 하지만 껍질이 매끈하지 않고 거칠다. 곧지 않고 약간 구불구불하게 자란다.

수수께끼는 또 있다. 1500여 년 동안 어떻게 썩지 않았을까. 그림판은 자작나무 껍질을 무려 47겹이나 덧붙였다. 잠자리나 매미 날개를 수십 겹 붙여놓았다고나 할까. 그러려면 최소 50년이 넘는 자작나무 껍질을 벗겨야 가능하다. 왜 하필 자작나무 껍질일까. 자작나무 유물은 천마도뿐만이 아니었다. 임금의 모자인 듯한 ‘세모꼴 자작나무 껍질 모자’도 있었다. 그 무덤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학자들은 그 무덤의 주인공이 북방 기마민족 후예라고 말한다. 북방 유목민들은 자작나무를 ‘하늘로 가는 사다리’라고 생각했다. ‘천마가 죽은 이의 영혼을 하늘로 실어 나른다’면 자작나무는 그 영혼이 숨 쉬는 곳인 셈이다. 어느 학자는 천마총이 적석목곽분이라는 점을 들어 그 주인공이 흉노족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적석목곽분은 기원전 4~2세기 중앙아시아 흉노족의 고유 무덤 양식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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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리 자작나무 숲의 이정표. 옛 개마고원 사람들은 자작나무로 움막을 지었지만 지금 수산리 숲에는 캠핑장이 있다.

수산리 임도 뚜벅뚜벅 걸어 6시간

남면 수산리 자작나무 숲은 100만 그루가 넘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자작나무 숲이다. 제지회사인 동해펄프(현 무림P&P)가 1986년부터 1995년까지 10년 동안 600ha(181만5000평) 땅에 심었다. 길게는 25년, 짧게는 16년 정도 나이를 먹었다. 아직 어리다. 큰 것이 밑동 지름 20cm, 키 15m쯤 될까. 하나같이 ‘빼빼로’다.

수산리 자작나무 숲은 소녀티가 물씬 난다. 여리여리하고 가냘프다. 수줍음을 탄다. 목이 긴 하얀 사슴 같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펜화다. ‘하얗고 긴 종아리가 슬픈 여자(최창균 시인)’ 닮았다. 그래서 더욱 애틋하다. ‘자작나무 숲의 벗은 몸들이/이 세상을 정직하게 한다/ 그렇구나 겨울나무들만이 타락을 모른다(고은 시인)’.

수산리 자작나무 숲길은 수산리~어론리 19km 임도를 따라 걷는 게 최고다. 느릿느릿 걸어도 5, 6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임도는 해발 450~580m에 걸쳐 있다. 대체로 평탄하지만 겨울철에는 먹고 마실 것과 아이젠 준비는 필수다. 승용차는 산 아래 수산리에 주차해야 한다.

수산리에서 6.7km쯤 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에선 발아래 한반도 모양의 자작나무 숲을 볼 수 있다. 햇살이 언뜻언뜻 구름 사이로 비치면 그 모습이 더 황홀하다. 우듬지 잔가시에 걸러진 햇살이 아슴아슴하다. 푸른 잣나무, 황갈색 낙엽송, 하얀 자작나무의 어우러짐도 볼 만하다. 12.1km 지점 빙골삼거리에서부터 어론리에 이르는 길은 자작나무를 바로 코앞에서 볼 수 있다. 흰 몸뚱어리에 무수한 검버섯 상처 자국이 뜻밖이다. 그렇다. 이 세상 상처 없이 크는 생명이 어디 있던가!

옛 개마고원 사람들은 자작나무로 움막을 짓고, 자작나무 껍질로 지붕을 얹었다. 자작나무 장작으로 밥을 짓고 군불을 땠다. 자작나무 횃불로 길을 밝혔다. 산삼을 캐면 자작나무 껍질에 싸서 고이 보관했다. 여름날 밥이 쉬지 않도록 자작나무 껍질에 갈무리했다. 그리고 마침내 숨을 거두면 자작나무 껍질에 싸여 땅에 묻혔다.

1938년 4월 18일 시인 오장환(1918~1951)은 일본의 한 온천에서 선배 이육사 시인(1904~1944)에게 엽서를 보냈다. 그것은 귀한 엽서였다. 다름 아닌 자작나무 껍질을 씌워 만들었던 것. 오장환은 말을 아꼈다. 단 3줄의 문장으로 대신했다. ‘백화 껍질이요. 이곳은 나무가 만소. 동무들에게 소식 전해주시오.’

백화(白樺)는 한자말로 자작나무를 뜻한다. 오장환은 다짜고짜 ‘자작나무 껍질 엽서’인 것부터 뽐냈다. 그가 바로 순진무구한 ‘자작나무 소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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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리 자작나무 숲은 100만 그루가 넘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자작나무 숲이다. 수령이 길게는 25년, 짧게는 16년이다.

김화성 | 1982년 매일경제 입사 후 1988년 동아일보로 옮겨 편집부, 생활부, 주간동아, 스포츠레저부 등을 거쳤다. KBS ‘TV 책을 말하다’ 자문위원, <육상월드> 편집위원, 기정기념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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