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5차 핵실험 이후 유엔의 대북 제재
유엔의 지속적인 대북 제재 필요하지만 외부 정보 유입이 효과적일 수도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했지만 미·중관계 경색으로 유엔을 통한 북한 제재엔 한계가 있다. 북한 민주화를 위한 ‘정보 폭탄’ 투여가 정답에 가깝다.
북한이 지난 9월 9일 5차 핵실험을 한 데 이어 10월 15일에는 무수단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유엔 안보리는 올해 들어 11번째의 언론성명을 통해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면서 유엔헌장 제41조를 기반으로 한 추가적인 ‘중대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유엔헌장 제41조는 철도, 항공, 전신 등 교통과 통신수단의 차단 및 외교관계의 단절 등 비군사적 제재조치들을 포함한다.
그러나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안 채택은 쉽지 않아 보인다. 북한의 5차 핵실험 후 유엔 안보리가 대북 제재 결의안을 채택하기까지 57일이 걸렸지만 이번에는 그보다 더 길어질 수도 있다.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와 사드 배치를 둘러싼 미·중의 힘겨루기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 발사 이후 채택된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 2270호는 북한의 핵·미사일과 관련된 해외 자산의 동결, 북한산 금·석탄·희토류 등의 수입 금지, 북한 통항 항공기의 검문 및 통행 제한 등 ‘물자와 돈’을 차단하는 강력한 제재를 포함했지만 중국의 미온적인 태도로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북·중관계는 전통적으로 입술과 이의 관계 즉, 순치관계(脣齒關係)라고 불려왔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듯이(脣亡齒寒·순망치한) 북한이 미국과 중국 간의 직접 대결을 막아주는 완충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중국이 6·25전쟁에 참전한 것은 38선을 수호하려는 결단 또는 미국의 전술적 책동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전략적 추세에 대한 신중한 고려와 평가를 바탕으로 결정되었다고 한 바 있다.
마오쩌둥은 북한이 무너지면 한반도에서 미국의 세력 확장으로 중국 공산당의 안위가 보장될 수 없다는 계산에 근거해서 참전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중국의 대북 제재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미국 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새로운 대북 제재안은 민생 보호 등 ‘인도적 예외’ 조항을 대폭 줄이는 방향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2014년 북한의 대중 섬유 수출은 7억4100만 달러에 이르지만 ‘민생품목’으로 인정돼 제재에서 제외됐다.
미 하원, 인질 몸값 지불 금지법 결의
북한이 수출하는 섬유제품들은 대부분 군과 노동당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중국은 연간 10억 달러 상당의 북한 석탄을 수입하고 있으며, 북한산 철광석의 최대 수입국이기도 하다.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5개월간 중국의 북한산 철광석 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7% 증가했다. 북한은 중국인 관광객들로부터 한 해 약 4000만~5000만 달러의 관광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대북 제재 결의안 2270호의 ‘민생 예외’ 조항의 허점을 이용해 북한과 은밀한 거래를 지속하면서 김정은 정권의 생명줄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노동자 해외 송출도 대북 제재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2015년 유엔 북한인권보고서는 북한이 해외에 파견한 노동자 수가 5만~6만 명 정도이며, 이들이 연간 약 23억 달러(2조5000억 원)에 달하는 외화를 북한으로 송금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통일연구원은 북한의 해외 송출 노동자의 수가 11만~12만 명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이들이 연간 약 50억 달러(약 5조 원) 이상의 외화를 김정은에게 보낸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에 따라 미국은 유엔 안보리의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안에 북한의 주요 수출품인 광물 전체에 대한 포괄적인 수출 금지와 중국인의 북한 관광 제한, 그리고 북한 노동자의 해외 송출을 금지하는 내용을 추가하려고 한다.
이와는 별도로 미 하원은 북한에 대해 현금, 수표 및 귀금속 지급을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한 ‘향후 이란에 몸값 지불을 금지하는 법안(H.R. 5931)’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는 ‘북한에도 적용된다’는 조항이 있어 북한이 불법적으로 억류하고 있는 미국 시민 또는 영주권자의 석방을 위해 미국 정부는 김정은 정권에 몸값을 지불하지 못한다.
또한 핵과 미사일 관련 부품 수송을 도맡고 있는 고려항공의 이착륙을 금지하고, 북한을 전 세계 달러 결제 시스템에서 차단하기 위해 국제금융정보통신망(SWIFT)에서 배제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최근 미국은 북한의 돈세탁을 돕고 핵 개발에 필수적인 산화알루미늄 등을 수출한 혐의로 중국 단둥의 중견기업 훙샹(鴻祥)그룹을 제재했다. 미국이 제3국 기업을 직접 제재한 조치로서 사실상의 ‘세컨더리 보이콧’이라고 할 수 있다. 북·중교역의 70%를 차지하는 단둥에는 훙샹그룹처럼 북한을 대신해 돈세탁을 하고 제재 물품을 은밀히 거래하는 기업이 수십여 개 있다고 한다.
중국은 “어떤 나라도 자국법을 중국 기업이나 개인에게 확대 적용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움직임에 반대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의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안에 의해 ‘세컨더리 보이콧’이 의무화될 경우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은행이 미국과 거래하려면 북한과의 거래를 끊어야 한다.
여기에는 중국 기업 상당수가 적용 대상이 되기 때문에 중국 동북3성의 경제 불안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중국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김정은 정권이 불안정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국은 북한산 석탄과 철광석 수입 및 중국산 원유의 대북 수출 전면 금지 등 유엔의 고강도 대북 제재안에 반대하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중국이 대북 제재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남중국해에 대한 헤이그 중재재판소의 판결과 한반도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은 노골적으로 ‘북한 편들기’를 하고 있다. 유엔의 대북 제재가 북한 주민들의 민생과 인도적 요구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지난 7월 라오스에서 개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보여준 중국의 태도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당시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함께 베이징에서 라오스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 기내에서 6시간을 같이했고, 비엔티안에서도 같은 호텔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ARF에서 북·중 외무장관 회담은 북·중 친선과 관계 발전을 강조한 반면, 한중 양자회담은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
지난 5차 핵실험을 북한은 “핵탄두의 위력 판정을 위한 핵 폭발실험”이라고 하면서 “핵탄두가 표준화·규격화”되었고 “소형화·경량화·다종화된 보다 타격력이 높은 각종 핵탄두들을 마음먹은 대로 필요한 만큼 생산할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제 북한이 스커드, 노동, 무수단, 대포동 등 다양한 발사체에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의미다.
북한은 한미 정보당국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이른 시일 내에 핵무기를 실전 배치할지도 모른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2, 3년 내에 핵무기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실전 배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외부 정보 유입시켜 북한 변화 유도해야
임기 말년의 오바마 정부와 미국의 대선 정국,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중 갈등,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중 간의 마찰 등으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힘을 잃고 있다. 북한은 이 기회를 포착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멈추지 않고 있으며, 올해 안으로 6~8차의 핵실험을 감행할 수 있다고 협박하고 있다.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미국의 일부 정치인과 싱크탱크가 거론하고 있는 핵시설 및 저장소, 미사일 발사대, 핵실험장 등에 대한 선제 타격과 경제적 보상에 의한 북한의 자발적 핵 포기, 또는 김정은 정권의 변환과 체제 전환 등이 아니면 북핵과 미사일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미국은 직접적인 방법보다는 유엔을 통한 다자적 접근을 선호하고 있다. 한국은 북핵과 미사일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으며 미국과 중국은 의지가 없어 보인다.
북한이 핵을 탑재한 ICBM을 실전 배치하게 되면, 북한은 미국과 핵 협상을 요구한 후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체결해 한미동맹을 와해시킬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또는 워싱턴을 향한 미사일 발사를 볼모로 미국의 한반도 개입을 차단한 뒤 그들이 말하는 ‘통일전쟁’을 도발할 수도 있다.
미국에서 거론되고 있는 대북 선제 타격론과 우리 국내에서 대두되고 있는 핵 무장론 및 주한미군 전술핵 재배치가 현실적 대안으로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외부 세계의 정보를 북한에 유입시켜 북한 체제를 변화시키는 것이 어쩌면 비효율적이지만 북핵 문제 해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지도 모른다.
구본학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미국 신시내티대 정치학 박사.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대통령실·민주평통·국방부·통일부 자문위원 역임. 현재 육군 정책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