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화순·강화 청동기 고인돌 답사 여행
청동기 시대 속으로
유네스코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발굴·보호·보존하기 위해 1972년에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협약’을 채택했다. 우리나라는 1995년 석굴암·불국사, 종묘, 해인사 장경판전 등재를 시작으로 모두 12점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유산을 차례대로 소개한다. <편집자>
| 양영훈 여행작가 |
우리나라는 ‘고인돌 왕국’이다. 전 세계에 7만여 기쯤 산재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인돌이 우리나라에만 4만여 기가 있다. 화강암 바위산이 많아서 고인돌 축조에 필요한 석재를 구하기 쉽고, 수백 명의 장정들을 동원해 고인돌을 세울 만큼 강력한 지배력과 경제력을 갖춘 부족국가가 일찍이 존재했던 덕택이다. 전국에 분포된 고인돌 군락 중에서도 밀집도가 높고 원형이 잘 보전된 전북 고창(447기)과 전남 화순(596기), 인천 강화도(70기)의 고인돌 군락은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고창
괸돌, 또는 지석(支石)으로도 불리는 고인돌은 고대 부족국가 지배층의 무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기원전 12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 사이의 청동기시대에 만들어졌다.
고인돌은 평지나 땅속에 돌로 만든 널방(무덤방)을 만든 다음, 그 위에 커다란 돌을 덮는 형태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지역의 고인돌은 하나의 널방에 하나의 덮개돌을 올린 것이 특징이다. 기본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외형에서는 지역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평지에 높은 받침돌로 널방을 만든 ‘탁자식’은 북쪽 지방에 많이 분포돼 있다. 그래서 흔히 ‘북방식’이라 불린다. 반면에 낮은 바둑판 같은 받침돌이나 땅을 파서 만든 널방 위에 덮개돌을 올린 ‘덮개식’은 남쪽 지방에 흔해 ‘남방식’ 고인돌이라 부른다.
전북 고창군 일대에는 무려 2000여 기의 고인돌이 산재해 있다. 그중 고창읍 죽림리, 도산리 일대의 447기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랐다. 남쪽 지방답게 바둑판식, 덮개식 같은 남방식 고인돌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전형적인 북방식 고인돌도 있다. 도산리의 탁자식 고인돌은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의 축소형처럼 형태가 완벽해서 고창 고인돌 가운데 가장 인기가 많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민가 뒤뜰의 장독대 옆에 있어서 ‘장독대 고인돌’이라는 애칭이 붙었다.
화순
전남 화순군의 고인돌 유적은 도곡면 효산리, 춘양면 대신리 일대에 596기가 밀집해 있다. 채석장도 4곳이나 발견되었다. 옛날에 보성과 나주를 잇는 보검재(보성재·188.5m)를 따라가면 군데군데 형성된 고인돌 무리가 눈에 띈다. 대부분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는 산자락에 자리한 덕택에 보존 상태가 아주 좋다. 농경지에 자리 잡은 고창의 유적보다 훨씬 더 원형이 또렷하다.
화순 고인돌 유적의 커다란 고인돌 중에는 주민들에게 불리는 이름이 따로 있다. 옛날에 이 고개를 넘어가던 원님이 잠시 앉아 쉬면서 민원을 처리했다는 관청바위, 달처럼 동그랗게 생긴 달바위가 대표적이다. 이곳의 고인돌 유적이 목포대 이영문 교수에 의해 처음 발견된 것은 1995년의 일이지만, 주민들에게는 이미 오래전부터 친숙한 이름으로 불리던 추억 속의 장소였다.
화순의 고인돌 가운데 가장 무거운 고인돌은 핑매바위이다. 길이 7m, 높이 4m에 이르는 덮개돌의 무게만 200톤이 넘는 초대형이다. 이 고인돌은 인근 운주사의 천불천탑 전설과도 관련돼 있다. 새벽닭이 홰를 치기 전까지 운주골에 천 개의 탑을 완성하기 위해 치마폭에 돌을 담아 가던 마고할미가 돌 하나를 흘렸는데, 그 돌이 바로 이 핑매바위라는 것이다. ‘핑매’는 돌팔매를 뜻하는 사투리다. 이 바위가 선사시대 유적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어느 조상은 정면에 ‘여흥민씨세장산(世葬山)’이라는 한자를 깊게 새겼다. 바위 위쪽의 산등성이에는 각시바위 채석장도 있다.
화순 고인돌 유적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감태바위이다. 수백 기의 크고 작은 고인돌이 빼곡하게 밀집한 산비탈의 맨 위쪽에 감태바위가 있다. ‘감태’는 갓을 뜻한다. 이 일대 고인돌의 채석장이었던 감태바위의 위와 옆에 갓처럼 생긴 덮개돌이 얹혀 있거나 비스듬히 세워져 있다. 덮개돌을 떼어 내려고 바위에 판 구멍도 남아 있다. 이 구멍에 나무 쐐기를 박은 뒤 물을 부으면 천천히 팽창한 나무에 의해 바위가 갈라진다.
화순 고인돌 유적의 대신리 쪽 입구에는 ‘고인돌 발굴지 보호각’이 있다. 고인돌이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무덤이라는 사실을 직접 확인해볼 수 있는 곳이다. 진짜 고인돌의 덮개를 들어내고 그 아래의 널방을 원형 그대로 보여준다. 보호각 밖에는 발굴작업을 마친 뒤에 다시 원형대로 복원된 고인돌들이 놓여 있다.
강화
우리나라의 고인돌을 대표하는 부근리 고인돌이 바로 강화도에 있다. 높이 2.6m의 굄돌 2개가 길이 6.5m, 너비 5.2m, 두께 1.2m의 화강암 덮개돌을 떠받치는 형태의 탁자식 고인돌이다. 덮개돌의 무게만도 53톤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웅장하며 잘 생긴 고인돌로 손꼽힌다. 워낙 독보적이다 보니,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부근리 일대의 나머지 고인돌 8기는 사람들의 관심 밖이다. 부근리를 찾는 답사 여행객들이나 현장학습을 나온 학생들의 십중팔구는 이 고인돌만 보고 발길을 되돌린다.
‘강화 부근리 지석묘(사적 제137호)’라고도 불리는 이 고인돌은 아직 발굴되지 않았다. 그래서 원래의 형태, 용도, 널방의 구조 등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무덤이 아니라 하늘에 제사의식을 거행하던 제단이라는 주장도 있다.
강화도에는 부근리 이외의 지역에도 고인돌 유적이 여러 곳에 산재한다. 총 160여 기의 고인돌이 고려산과 별립산 주위에 흩어져 있다. 그중 5개의 군락과 3개의 단독 고인돌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대부분의 고인돌은 우리 땅 곳곳에 흔한 바위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고인돌을 찾아가는 답사여행은 일반적인 관광과는 달리 무료하고 지루하다. 육안으로 보는 것으로만 끝내지 말고, 마음으로 느끼고 머리로 상상해야 된다. 그러다 보면 거대한 돌을 자르고 옮기고 세웠던 선사시대 사람들의 함성을 듣는, 독특한 여행의 추억을 남긴다.
여행 정보
탐방 안내
고창 : 고인돌 유적 안으로는 차량 진입이 통제된다. 5개 탐방 코스의 길이가 1.8km에 불과해서 찬찬히 걸어서 둘러보기에 좋다. 채석장 유적을 포함해 5개 코스를 차례로 경유하는 탐방열차를 이용해도 된다. 고창고인돌박물관(063-560-8666)
화순 :자동차를 타고 약 5km의 보검재 고갯길을 넘어가면서 둘러보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비포장도로이지만 승용차도 문제없이 넘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노면이 좋다. 대신리발굴지(061-379-3907)
강화 : 부근리 고인돌 옆에 강화역사박물관, 강화자연사박물관이 있다. 그곳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약 20분이 소요되는 탐방로를 걸으면 부근리 일대의 고인돌을 거의 다 만날 수 있다. 강화역사박물관(032-930-7084)
숙식
고창 :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의 고창읍내에 위치한 동방호텔(063-563-7070), 뉴프린스관광모텔(063-563-4200), 모양성모텔(063-561-5633) 등의 숙박업소와 조양식당(한정식, 063-564-2026), 정통옛날쌈밥(쌈밥, 063-564-3618), 미향(돌솥밥, 063-564-8762) 등의 음식점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화순 : 고인돌 유적 부근에는 고인돌민박(061-372-7612), 흙사랑휠(061-371-5111) 등 민박집만 있다. 효산리에서 10여 분 거리의 도곡온천관광지에 도곡온천관광호텔(061-371-5111)을 비롯한 숙박업소가 많다. 고인돌 유적과 가까운 능주면 소재지에서는 능주삼거리식당(족발과 국밥, 061-372-1376), 해산물품은닭(해물요리, 061-373-2112) 등이 맛집으로 알려져 있다.
강화 : 부근리 고인돌 부근에 장보고한옥펜션(***), 힐링팜스테이(032-933-1336), 하늘펜션(032-933-0124) 등이 있다.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의 강화읍내에 우리옥(백반, 032-934-2427), 왕자정(묵밥, 032-933-7807), 푸른솔가든(돼지화로구이, 032-933-1555) 등의 맛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