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유엔 회원국을 유지할 자격이 있는가
안보리 결의안에는 저항하며
대북 지원은 호소
북한은 유엔 회원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9월 22일 제71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북한은 핵과 미사일 실험 발사 등으로 안보리 결의를 반복적으로 위반하고 있다”면서 “북한이 평화를 사랑하는 유엔의 회원국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재고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오준 유엔 주재 한국대사도 이미 다른 유엔 회의에서 북한의 행태가 국제사회의 요구와 안보리 결의에 위반됨을 지적하면서 북한의 유엔 회원국 자격 문제를 거론한 바 있다. 2년 전 북한의 인권 상황에 반대해 북한과 단교한 아프리카의 보츠와나공화국 대표도 이번 유엔총회 연설에서 “유엔의 가치와 원칙을 존중하지 않고 준수하지도 않는 북한은 유엔 회원국의 자격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북한의 유엔 회원국 자격 유지 여부가 제기되는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북한의 일련의 행동이 유엔 회원국으로서의 자격에 부수되는 의무와 책임을 현저히 위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차례에 걸친 참혹한 세계대전에 대한 반성과 세계 평화를 갈망하는 국제사회의 바람 속에 1945년 탄생한 유엔은 헌장(제4조)에서 모든 회원국은 ‘평화애호국가(Peace-loving State)’로서 역할을 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왜 우리는 북한과 유엔 동시 가입을 했는가
유엔 회원국은 유엔의 기본정신(헌장 전문)과 목적(헌장 제1조)인 국제 평화와 안전의 유지, 인권의 보호와 신장, 국가 간 평화적 협력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하며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특히 분쟁의 평화적 해결, 무력 사용 금지와 같은 원칙(제2조)을 준수할 의무를 진다. 그러나 북한은 지속적으로 유엔 헌장과 국제 규범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위협하고 있어 유엔 회원국의 기본 자격을 갖고 있는지 의심케 하고 있다.
북한은 1991년 대한민국과 함께 유엔에 동시 가입했지만, 북한과 유엔은 오래전부터 악연을 가지고 있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북한은 남한과는 달리 1948년 유엔총회 결의에 의한 민주선거의 실시를 거부한 바 있다. 1950년엔 6·25전쟁을 도발해 유엔 안보리로부터 즉각 침략자로 규정받은 바 있다. 이에 따라 16개 유엔 회원국으로 구성된 유엔군이 6·25전쟁에 참가했다.
유엔의 강력한 군사 제재로 북한군은 38선 이북으로 격퇴되었다. 1953년 휴전협정 이후 북한은 여전히 유엔군 및 유엔사령부와 대결하는 형국으로 남아 있다.
북한이 유엔 회원국이 된 것 자체는 매우 중요한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탈냉전 시대를 맞아 한국이 공세적인 북방외교를 펼쳐 한국의 유엔 가입이 기정사실화되자, 북한도 서둘러 유엔 가입을 희망해 동시 가입이 이뤄진 것이다. 당시 한국과 국제사회는 유엔 회원국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북한이 유엔의 정신과 목적에 맞추어 ‘정상국가’로서 거듭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북한은 회원국의 의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유엔 헌장과 유엔의 역할에 반하는 행태를 취해왔다. 올해 가입 25주년이 되었지만 북한은 유엔의 ‘말썽꾸러기 국가’라는 불명예를 쌓아가는 실정이다. 북한은 지속적인 핵 도발과 인권유린 등으로 유엔 헌장과 유엔 결의를 가장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가장 위험스러운 국가로 인식되고 있다.
북한이 핵·미사일 위협으로 한반도를 넘어 국제 평화와 안전에 가장 심각하게 도전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북한은 1993년 핵 개발 시도가 발각되자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의무사항인 사찰을 거부하고 역사상 처음으로 NPT 탈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6자회담, 양자회담 등 대부분의 평화적 해결 노력을 무산시켰을 뿐만 아니라 천안함 사건과 비무장지대 지뢰 도발 사건 등 수많은 정전협정 위반을 반복했다.
2006년 최초로 핵실험을 한 이래 지금까지 5차례의 핵실험과 20여 차례 이상의 미사일 실험 발사를 감행하며 노골적으로 NPT와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해왔다.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 2270호 등 안보리가 헌장 제7장(41조)에 따라 부과한 상당한 수준의 포괄적 경제 제재를 무시하거나 회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히려 북한은 유엔 결의안을 비난하고 한국, 일본, 미국을 향한 핵위협을 더욱 노골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의 혹독한 인권유린도 문제다. 유엔은 북한의 인권유린을 유엔 헌장과 보편적 국제 인권규범에 대한 심각한 위반으로 보고 국제적 의제로 부각시켰다. 2003년 유엔의 구 인권위원회가 최초로 대북 인권 결의안을 채택한 이래 현 인권이사회도 매년 북한 주민에 대한 기본적 인권 제약, 탈북 송환자 처벌, 강제 납치자, 정치범 수용소 문제 등을 개선하라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있다.
유엔총회도 북한 인권특별보고관과 인권조사위원회(COI)의 활동보고서를 바탕으로 2014년부터 매년 대북 인권 결의안을 채택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인권유린 상황에 책임 있는 북한 지도층 인사들을 안보리가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해 ‘반인륜 범죄(Crime against Humanity)’로 처벌하라는 것이다. 올해 유엔총회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결의안이 채택될 전망이다.
하지만 북한은 ‘우리 식 인권’을 내세우며 그동안 제기돼온 지적 사항을 대부분 부인하고 인권 거론이 북한을 전복하려는 음모에 불과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유엔을 비난하면서도 탈퇴는 하지 않는다
유엔 결의와 국제사회의 요구를 무시하는 이러한 위반과 도발적 행태는 북한의 유엔 회원국 자격의 타당성이나 정당성을 의심케 한다. 그렇다면 헌장이 규정(제5조 및 6조)한 대로 북한의 회원국 자격은 정지되거나 제명(축출)될 수도 있는 것인가?
국제정치의 현실상 그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유엔 회원국 가입과 마찬가지로 자격 정지나 퇴출에도 안보리의 권고(동의)와 총회 회원국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안보리 구도하에서 중국은 여전히 북한에 동정적인지라, 그 실현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북한의 회원 자격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도덕적, 정치외교적 경고이며 압력이라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북한은 유엔이나 유엔 활동에 대해 부인하거나 반박만 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에 유엔은 ‘양날의 검’과 같다. 북한은 유엔 활동과 유용성을 적절히 활용하는 이중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유엔의 규탄과 제재를 받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유엔의 인도적 지원과 개발 지원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거나 받아온 것이다. 북한은 식량난이나 가뭄, 수해 등 자연재해나 인도적 혹은 경제적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유엔 기구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식량계획(WFP), 유엔개발계획(UNDP) 등은 한국의 시민단체와 국제 비정부기구(NGO)와 더불어 다양한 구호와 지원, 그리고 개별협력사업 등을 전개해왔다. 지난번 함경북도 지역의 대규모 홍수 사태 후에도 북한은 유엔 기구들의 지원을 요청했다.
북한의 이중적인 행태는 유엔의 압박과 제재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나 유엔의 비판에 대하여 변명하고 적극 활용하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유엔의 제재나 규탄이 있을 때마다 북한은 유엔을 “미국의 앞잡이”라고 싸잡아 비난하지만, 결코 유엔 탈퇴를 언급하거나 시도하지는 않고 있다.
유엔 통한 다자 제재도 반복되면 위력 발휘
북한은 제재에 강경히 맞설 뿐만 아니라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각종 속임수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유엔의 구호 활동을 간절히 요청하거나 유엔을 선전도구로 활용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불량회원국’ 행태는 같은 기간 한국이 유엔의 중추적 회원국으로서 발전하고 기여해온 것과 대조된다.
그동안 국제 분쟁에 대한 유엔의 제재는 유엔 자체의 정치적인 제약과 제재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와 실행 방안의 결함 등으로 인해 효용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돼왔다.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안 2270호가 전례 없이 강력한 제재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 효과는 아직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유엔의 다자 제재는 이라크, 리비아, 이란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국제사회가 일정한 기간과 수준에서 지속적으로, 그리고 좀 더 세밀하게 가하게 되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9월 북한의 5차 핵실험으로 유엔은 그동안의 제재에서 드러난 ‘구멍’을 막고 더욱 강력한 제재를 가하기 위한 논의를 벌이고 있다. 경제 제재와 외교적 제재를 강화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유엔을 통한 다자 제재는 여전히 중요한 도구이다. 대북 제재의 목표는 경제적, 외교적 압력을 통해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하고 인권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도록 유도·압박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북한 정권이 변하지 않는다면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점차 고립될 것이다. 유엔 회원국 자격 문제도 계속 제기될 것이다. 북한의 핵 개발이나 위협은 국제평화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기에 중국마저도 북한을 옹호하거나 방패막이를 하는 명분을 잃을 수 있다.
북한은 핵 개발 같은 무모한 시도를 해 더 이상 평화를 갈망하는 민족의 염원이나 유엔 회원국들의 바람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북한은 유엔을 두려워하거나 유엔이 갖고 있는 엄격한 경제적 혹은 군사적 권한이나 도덕적 권위에 맞서기보다는 유엔이 추구하는 평화 구현자, 개발 지원자, 인권 수호자에 협력하는 길로 나가야 한다. 한국과 협력해 평화통일로 나아가는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박흥순 선문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미 남캐롤라이나대 국제정치학 박사. 현재 한국유엔체제학회장, 선문대 대학원장, 유엔한국협회 부회장,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집행위원, 충남통일교육센터 사무처장. 저서 <국제기구론>, <국제기구와 한국 외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