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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시대

vol 119 | 20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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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광복과 한일관계

중견국가 한국과 일본이 공존하는
방안은 무엇인가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돼 있는 소녀상. 한국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돼 있는 소녀상. 한국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1965년 한일협정 체제는 한계에 도달했다. 한일 간 격차가 줄고 과거사 문제가 풀려나가면서 양국은 다른 차원의 외교로 들어가야 한다. 일본의 변화를 직시해 새로운 대일 전략을 짜야 한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면서 일본은 패망했고, 한국은 일본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았다. ‘일의대수(一衣帶水)’ 혹은 ‘가깝고도 먼 나라’로 비유되는 한일관계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이 양국에 준 의미는 상반되었다. 광복을 맞이한 지 71년이 되었지만 한일관계에는 여전히 갈등 요소가 있어 양국 관계는 안정적 발전을 하지 못하고 있다.

왜 전후의 한일관계는 순탄한 궤도에 이르지 못하고 갈등과 반목을 반복하는 것일까? 광복 이후 한일관계는 어떻게 변화해왔고, 앞으로 어떠한 관계가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바람직한 한일관계의 구축을 위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노력은 무엇일까? 광복 71주년이라는 시점에서 거시적 관점으로 한일관계를 검토해보고자 한다.

광복 71주년 한일관계의 현주소

광복 이후 우리의 대일(對日) 인식은 이중적이었다. 일본은 ‘청산의 대상’이었지만, 냉전체제에서 살아남고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준동맹국’이 된 것이다. 세계적인 냉전체제가 해체되면서 한일관계가 이완됐다고 해도 경제와 안보 분야에서 원활한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면 쌍방이 손해 보는 관계에 있다는 데는 변함이 없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감안할 때 양국은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최소화하고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한일관계는 여전히 과거사 문제로 요동치는 불안정한 구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해 말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 방안에 합의하기까지 4년 가까이 한일 간에는 정상회담이 개최되지 않았다. 외교 마찰은 경제, 사회, 문화 분야로 파급돼 양국 간의 투자와 교류를 위축시켰다.

일본을 보는 우리의 태도는 전에 없이 냉각되었고, 일본에서는 반한(反韓) 감정의 확산과 함께 한류(韓流)가 급속히 퇴조했다. 올해 들어 한일관계가 일정 부분 개선됐지만, ‘화해치유재단’의 설립과 운영을 둘러싼 정치 과정은 과거사 문제의 민감성을 보여준다.

탈냉전 이후의 한일관계는 ‘냉탕-온탕’ 사이클을 반복해왔다. 그 과정에서 상호 배려가 사라지고, 영토·과거사 문제와 안보·경제·민간 교류를 분리해서 대응하자는 기조(정경 분리원칙)가 훼손되는 사례가 늘어났다. 위안부, 역사 교과서, 야스쿠니 등 역사 인식 문제와 독도 문제를 축으로 대결 구도가 선명해졌다.

2015년 11월 21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세안(ASEAN)+3(한·중·일) 정상회의에서 손을 맞잡은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2015년 11월 21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세안(ASEAN)+3(한·중·일) 정상회의에서 손을 맞잡은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

이는 양국 정부가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 기초해 한일관계를 관리하던 이른바 ‘1965년 체제’가 시대적 한계에 직면했음을 의미한다. 과거사와 영토 문제에 대한 입장 차이를 간직한 채 안보와 경제 논리를 우선해 타결지은 한일 합의는 냉전기 한반도 안정화와 한국의 경제 발전, 나아가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도 기여했으나, 과거사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등장하면서 한일관계 발전을 제약하고 있다.

냉전 해체로 한일 간의 안보 연대감은 약화되었고, 상대적인 국력 격차도 줄어들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양국의 정치·경제체제가 수렴하고, 한일관계에서 시민단체 등 비정부 주체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한일 교류 형태는 다양해졌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

민주화 이후에 한국에서는 여론과 시민단체가 외교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졌기에 외교 현안이 국내 정치의 쟁점으로 부상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등 사법 당국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징용 피해자 보상 문제 등에서 한국 정부와 일본 기업에 해결을 요구하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외교 당국이 짊어지는 ‘내교’의 중요성도 커졌다.

일본 정계에서는 ‘강한 외교’를 주장하는 전후 세대의 보수 정치인들이 주류로 등장하면서 역사수정주의와 영토내셔널리즘이 힘을 얻었다. 반성과 사죄를 기본으로 하던 일본 정부의 대외 태도가 바뀐 것이다. 보수 성향의 정치가들이 외교를 압박하면서 일본 외교의 전통이었던 정경 분리원칙이 훼손되는 경우가 늘어났다.

1965년 6월 22일 일본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협정 조인식. 왼쪽이 이동원 외무부 장관이고 오른쪽은 시나 에쓰사부로 일본 외무상이다.1965년 6월 22일 일본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협정 조인식. 왼쪽이 이동원 외무부 장관이고 오른쪽은 시나 에쓰사부로 일본 외무상이다.

신뢰에 기반을 둔 안정적인 한일관계를 구축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21세기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 및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공유하고 있는 한일 양국의 우호·협력관계가 불가결하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한일관계는 한미관계와 함께 한국 외교의 전통적인 지지 기반이었다. 한·미·일 3국 간의 우호협력관계는 국제 환경 변화라는 높은 ‘파고(波高)’에서 한국의 국익을 지켜내는 ‘닻’으로 기능해왔다. 한일 간의 긴장이 커지면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 타격을 받고, 한미 동맹관계의 전략적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

한일 간의 협력은 지역 질서의 안정화에 기여한다. 동아시아 국제관계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어 ‘G2’ 질서의 출현이 회자되는 상황에서, 강대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고 역내국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것은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중견국의 역할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후 유럽에서의 독일과 프랑스처럼 한일 양국이 역사 화해를 통해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경제체제를 공유하는 한일 협력관계는 양국의 국익은 물론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지역 공공재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중국의 부상에 대응해 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강화하고, 한국은 북한 및 통일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그리고 대량살상무기와 테러, 환경 등 비전통 안보 이슈와 국제 금융경제의 불투명성 등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한일 협력을 필요로 한다.

대일 외교는 현안을 넘어 거시적인 차원에서 한일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해야 한다.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그동안 한일 양국은 공동 작업을 통해 ‘과거 직시’, ‘상호 이해와 신뢰’, ‘선린우호협력’, ‘공생의 복합 네트워크’ 등의 개념을 중심으로 한일 미래 비전과 실천 방안을 제시해왔다.

김대중 정부와 오부치 내각은 1998년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통해 한일관계의 미래 비전으로 “과거를 직시하고 상호 이해와 신뢰에 바탕을 둔 우호협력관계”를 제시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한일 정상회담 합의로 발족한 한일 신시대 공동 연구는 2010년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한일관계와 국제정치, 국제경제 등 분야의 구체적 협력 방안과 함께 한일 양국 정상에 대해 신시대 한일관계의 발전 방향을 담은 ‘한일 신시대 공동선언’ 채택을 제언하고 있다.

한일관계 발전을 위한 발상 전환

미래 지향적 한일관계의 구축은 과거의 노력과 성과를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추진 과정에서 몇 가지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첫째, ‘과거와 미래의 시점’을 공유하려는 시도이다. 과거사 직시와 상호 협력을 병행함으로써 ‘지배·피지배 기억에 집착하는 과거 회귀적인 발상’이나 ‘미래의 밝은 협력만을 강조하는 이분법적 접근’을 극복하자는 것이다.

둘째, ‘양자에서 다자로’의 관계 전환이다. 양국 간 현안에만 매몰되지 않고, 북한 문제와 중국 부상 등을 감안해 안정적인 지역·세계 질서의 구축이라는 다자적 관점에서 한일 양국의 상호 전략적 가치를 재인식해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셋째, ‘정부 주도에서 시민사회로’ 주체를 다양화해야 한다. 한일관계에서 정부·비정부 주체(여론, NGO) 간 소통 강화 및 성숙한 시민의식을 토대로 과도한 민족주의, 포퓰리즘, 외교의 정치수단화를 견제해 한일관계의 안정성과 정책 일관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도쿄에서 벌어진 혐한 시위. 한일관계는 1965년 체제가 아닌 새로운 체제로 발전시켜야 한다.도쿄에서 벌어진 혐한 시위. 한일관계는 1965년 체제가 아닌 새로운 체제로 발전시켜야 한다.

구조적 전환기에 들어선 한일관계의 재정립을 위해서는 위안부, 강제동원(징용) 피해자 보상 문제, 역사교과서, 독도 문제 등 과거사 관련 현안에서 우리의 원칙을 유지하면서 경제, 안보, 인적 교류 등의 분야에서 한일 협력을 확대해나가는 접근법이 요구된다. 보수 우경화라는 일본의 중·장기적 추세를 현실로 인정하고, 한일관계의 전략성에 대한 종합적 평가를 바탕으로 대일 외교를 재구성해야 한다.

일본 사회의 역사수정주의가 노골화되고 있다. 아베 정권 같은 보수 내각의 장기 집권이 현실화할 경우에 대비한 중·장기적인 대일정책의 방향 및 과거사 프레임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어프로치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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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
일본 도쿄대 정치학박사. 국민대 일본학중점연구소 전임연구원 등 역임. 현재 국립외교원 아시아태평양연구부 교수, 일본연구센터 교수, 외교사연구센터장. <동아시아 다자협력의 제도화>, <한일관계, 이렇게 풀어라> 등 공저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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