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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시대

vol 119 | 20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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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정원’ 조선 왕릉

서울 속의 녹색 쉼터이자
파란만장한 역사의 보고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의 합장릉인 원릉. 동구릉 내의 울창한 숲에 둘러싸였다.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의 합장릉인 원릉. 동구릉 내의 울창한 숲에 둘러싸였다.

유네스코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발굴·보호·보존하기 위해 1972년에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협약’을 채택했다. 우리나라는 1995년 석굴암·불국사, 종묘, 해인사 장경판전 등재를 시작으로 모두 12점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유산을 차례대로 소개한다. <편집자>


| 양영훈 여행작가 |

우리나라의 왕릉은 단순한 능묘가 아니다. 역사와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지난 2009년에 조선 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던 것도 ‘자연과 공존하는 역사 유적’이라는 점이 크게 고려됐다. 반만 년의 역사를 이어온 ‘한반도 왕실 무덤 건축의 완성’이라는 의미도 간과할 수 없다.

1408년부터 1966년까지 무려 5세기에 걸쳐 조성된 조선 왕릉은 현재 18개 지역에 산재한다. 그중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능역은 동구릉이다. 경기 구리시 인창동에 자리 잡은 동구릉에는 모두 17명의 왕과 왕비가 묻혀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역사상 최대의 전란인 임진왜란을 겪은 선조, 조선의 문예 부흥기를 연 개혁군주이자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인 영조의 능도 이곳에 모셔져 있다.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은 1408년(태종 8년)에 조성됐다. 기본적으로는 고려 공민왕의 현릉 양식을 본떴지만, 석물의 조형과 배치는 크게 변화됐다. 오늘날 건원릉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봉분에 잔디 대신 억새가 뒤덮여 있는 점이다. 아들인 태종 이방원이 고향(함흥)을 몹시 그리워하던 아버지를 위해 고향의 흙과 억새를 가져오게 해서 단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효심 깊은 아들로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듯싶다. 태조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죽으면 계비 신덕왕후와 함께 묻히기를 원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에 자신의 묏자리까지 마련해두기도 했다. 그러나 신덕왕후를 몹시 미워한 태종은 아버지의 간절한 바람을 외면한 채 지금의 동구릉에 모셨고, 신덕왕후의 능은 도성 밖으로 이장해버렸다.

봉분에 잔디 대신 억새가 심어진 건원릉.봉분에 잔디 대신 억새가 심어진 건원릉.

조선의 임금 가운데 가장 재위기간이 길고 장수했던 21대 영조의 능은 원릉이다. 51세 연하의 계비인 정순왕후 김씨와의 합장릉이다. 영조도 자신의 뜻과 달리 이곳에 묻혔다. 원래는 정비 정성왕후가 묻힌 서오릉의 홍릉을 자신의 능으로 삼고자 했다. 하지만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인 할아버지에게 적잖은 반감을 가졌던 손자 정조는 할아버지의 능을 이곳에 조성했다.

조선 왕릉 최초의 합장릉은 4대 세종과 소헌왕후를 모신 영릉(永陵)이다. 경기 여주시 능서면 왕대리의 나지막한 산자락에 17대 임금 효종의 영릉(寧陵)과 이웃해 있다. 처음에는 경기 광주시 대모산(지금의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 자락의 헌릉 근처에 자리 잡았다. 아버지인 태종의 곁을 지키겠다는 뜻이었지만, 워낙 터가 좋지 않다는 주장이 끊이질 않았다. 결국 8대 예종 때에 천하 명당이라는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영릉은 의외로 소박하다. 기존 왕릉에는 난간석에 십이지신상을 조각해서 방위를 표시한 반면, 영릉은 문자로만 간소하게 표현했다.

순종의 유릉. 고종의 홍릉과 함께 황제릉이어서 기존 왕릉들과는 확연히 다르다.순종의 유릉. 고종의 홍릉과 함께 황제릉이어서 기존 왕릉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왕위에 오르지 않은 추존왕인데도 세종의 영릉보다 더 화려하게 치장된 능이 있다. 22대 임금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와 어머니이자 <한중록>의 저자인 경의왕후(혜경궁 홍씨)의 합장릉인 융릉이다. 열 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참혹하고도 억울한 죽음을 지켜본 정조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아버지의 원혼을 달래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먼저 사도세자의 존호(尊號)를 ‘장헌세자’라 하고, 묘호도 ‘수은묘’에서 ‘영우원’으로 바꿨다.

재위 13년(1789년)에는 양주 배봉산(지금의 서울 휘경동)에 있던 묘를 지금의 경기 화성시 안녕동에 위치한 화산으로 옮겼다. 그때 ‘현륭원’으로 바뀐 묘호가 ‘융릉’으로 승격된 것은 장헌세자가 ‘장조’로 추존왕이 된 고종 때의 일이었다.

효심이 남달랐던 정조는 현륭원을 왕릉처럼 화려하게 꾸몄다. 정조는 현륭원의 석물 배치나 조경까지도 세심하게 지켜보며 지시했다. 봉분에는 모란과 연꽃이 조각된 병풍석을 둘렀다. 그 앞에는 구름무늬와 매화, 난초, 국화 등을 화려하게 새긴 팔각장명등도 세웠다.

반면에 정조와 효의왕후의 합장릉인 건릉은 융릉에 비해 소박하다. 융릉과는 달리 봉분 주위에 병풍석을 두르지 않고 난간석만 둘렀다. 하지만 석물의 형태와 조각, 봉분 주변에 아늑하게 둘러쳐진 곡장, 합장릉이면서도 상석이 하나만 놓인 점 등은 융릉과 똑같다.

한양도성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단종의 장릉.한양도성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단종의 장릉.

무인석이 없는 단종의 장릉

조선 왕릉 가운데 한양도성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은 6대 단종의 능인 장릉이다. 숙부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은 영월 청령포에 유배된 지 4개월 만인 1457년 10월에 사약을 받았다. 강가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은 영월호장 엄홍도가 한밤중에 몰래 수습해 청령포에서 5리쯤 떨어진 동을지산에 묻었다고 한다.

단종의 무덤은 중종 11년(1517년)에 어명으로 찾을 때까지 60년 동안이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마침내 숙종 때인 1698년에 복권되어 비로소 임금 대접을 받게 되자 단종의 묘도 왕릉으로 격상되어 ‘장릉(莊陵)’이라는 능호가 붙었다. 장릉은 조선 왕릉 가운데 가장 소박하다. 난간석과 무인석이 없다. 칼 든 자에게 왕위를 빼앗겼대서 문인석만 세웠다고 한다.

그지없이 소박한 장릉보다 더 낯설어 보이는 왕릉은 홍유릉이다. 경기 남양주시 금곡동에 자리한 홍유릉은 26대 고종의 홍릉과 27대이자 마지막 왕인 순종의 유릉이 합쳐진 이름이다. 정문을 들어서서 왼쪽으로 가면 고종과 명성황후 민씨가 합장된 홍릉, 오른쪽으로 가면 순종과 순명효황후 민씨, 순정효황후 윤씨가 합장된 유릉이다. 엄밀히 말하면 왕릉이 아니라 황제릉이다. 1897년에 조선의 국호가 대한제국으로 바뀌고, 연호를 광무로 정한 때부터 고종은 왕이 아닌 황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추존왕의 묘인데도 왕릉 못지않게 화려하게 치장된 사도세자의 융릉.추존왕의 묘인데도 왕릉 못지않게 화려하게 치장된 사도세자의 융릉.

조선의 첫 황제릉인 홍릉은 명나라의 황제릉을 본떠 꾸몄다. 유릉의 형식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러나 나머지 조선 왕릉들과는 확연히 달라서 매우 낯설게 느껴진다. 제향을 올리는 건물인 정자각 대신에 훨씬 더 큰 규모의 일자형 침전(寢殿)이 들어섰다. 홍살문과 침전 사이에 늘어선 석물은 더 파격적이다. 양쪽에 일곱 마리씩 늘어선 동물들 중에는 낙타, 코끼리, 기린도 있다. 이국적인 조각 수법에서도 정감이 느껴지질 않는다. 순종의 유릉 앞에 늘어선 석물들은 비교적 세련되고 사실적으로 조각돼 있다.

서울 강남의 빌딩 숲에 둘러싸인 선릉·정릉 능역. 서울 강남의 빌딩 숲에 둘러싸인 선릉·정릉 능역.

조선 왕릉은 대부분 인구 밀집지역인 서울과 경기도에 산재한다. 심지어 선릉·정릉은 강남 한복판의 빌딩 숲에 둘러싸여 있다. 왕릉을 찾을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 앞선다. “왕릉이 아니었으면 도시화와 근대화의 광풍 속에서 그토록 훌륭한 숲이 살아남을 수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도시 속의 소중한 녹색 쉼터’라는 의미만으로도 조선 왕릉은 위대하다.

여행 정보


관람정보
관람 시작시간 : 09:00.
※동구릉, 정릉, 선릉·정릉, 서오릉, 장릉(김포) 등은 06 : 00 (11~1월 06:30)
관람 종료시간 : 18:00(2~5월, 9~10월), 18:30(6~8월), 17:30(11~1월).
※ 관람 종료시간 1시간 전에 매표 종료. 선릉 ·정릉은 21:00까지 개방
안내전화
동구릉(031-563-2909), 광릉(031-527-7105), 홍릉 ·유릉(031-591-7043), 태릉 ·강릉(02-972-0370), 선릉 ·정릉(02-568-1291), 헌릉·인릉(02-445-0347), 서오릉(02-359-0090), 서삼릉(031-962-6009), 융릉·건릉(031-222-0142), 영월 장릉(033-370-2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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