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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시대

vol 119 | 20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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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명거리와 200일 전투

핵과학자 위한 보금자리…
북한 주민의 가혹한 희생으로 세워져

지난 4월 3일 평양에서 열린 려명거리 건설 착공식.지난 4월 3일 평양에서 열린 려명거리 건설 착공식.

평양의 스카이라인을 바꿔놓을 려명거리 건설 200일 전투.
그러나 ‘만리마 속도’로 달리고 있어 ‘마천루의 저주’에 걸리지 않을까 매우 염려된다.


| 김민서 세계일보 외교안보부 기자 |

유례없는 폭염에도 200일 전투를 치러야 하는 북한 주민들의 올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무덥고 힘겨웠을 것이다. 북한 매체는 하루가 멀다 하고 200일 전투 소식을 선전하고 있으나 무리한 속도전의 부작용이 속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일 전투의 핵심 사업인 려명거리 건설 사업이 계획대로 완료된다면 평양의 스카이라인을 바꿔놓을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지극히 비정상적인 공사 과정을 거쳐 탄생한 초고층 아파트 단지는 김정은 체제에 정치·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북한은 지난 5월 열린 제7차 노동당 대회에서 제시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2016~2020)의 첫해 목표 달성을 위해 6월부터 200일 전투를 시작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7월 25일 “200일 전투가 시작된 이후 50일 동안에 전투장들에서 다발적으로, 연발적으로 승전의 소식들이 울려 나왔다”고 전했다. 이 통신은 “전력공업 부문에서는 더 많은 전력을 생산했으며, 석탄공업 부문에서는 50일간 생산계획을 103% 수행했다”고 소개했다. 대표적 제철소인 황해제철연합기업소에서는 6월 생산목표를 초과 달성한 데 이어 7월에 들어서도 매일 생산계획을 150% 수행하고 있다고 선전했다.

북한은 ‘자력갱생’의 김정은 시대 버전인 ‘자강력 제일주의’를 부르짖으며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도 200일 전투를 통해 인민경제 향상을 이뤄낼 수 있다는 식으로 주민을 겨냥한 선전작업을 하고 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면에 게재한 사설(7월 22일자)에서 “오늘의 200일 전투는 우리 공화국을 질식시키려는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의 고립·압살 책동을 물거품으로 만들기 위한 자력갱생 대진군”이라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사설은 또 “우는소리만 하는 현상, 자기의 것은 홀시하고 덮어놓고 남의 것만 쳐다보는 그릇된 태도가 절대로 나타나지 않게 하여야 한다”고도 했다. 우는소리 하지 말고 성과를 내라는 얘기다.

온갖 노력 동원에 ‘무료봉사’해야 하는 주민들의 인적, 물적 피해는 상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노동력뿐만 아니라 건설 자재 공급도 주민 호주머니를 털어 충당한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폭염 속 무더위에도 열악한 환경에서 휴일도 잊은 채 장기간 노동에 시달리다 보니 부상자와 사망자도 많다는, 북한 현지 소식통을 인용한 보도도 끊이지 않는다. 노동신문이 7월 8일자에서 과거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1·2호 건설을 추진하는 속도전 사업에서 사상자가 속출했다는 점을 이례적으로 공개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미래과학자거리의 두 배 규모

200일 전투의 핵심 과제는 려명거리 건설이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지난 3월 려명거리 건설을 지시하면서 올해 안에 완료하라고 지시했다. 려명거리는 김일성·김정일 부자 시신이 보관된 금수산태양궁전과 영생탑이 있는 영흥 사거리까지 동서로 뻗은 3km 구간이다. 70층, 55층, 50층, 40층, 35층 아파트와 상업·공공시설 등 100여 동을 신축·보수한다. 김 위원장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위한 주거 공간이다. 2015년 10월 노동당 창건 70주년과 올해 5월 7차 당대회를 위해 김정은 체제의 치적용으로 건설했던 미래과학자거리의 두 배 규모다.

김 위원장은 “미제와 그 추종세력(한국)과의 치열한 대결전”이라며 “올해 중에 반드시 일떠세우자(건설하자)”고 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북한 매체들은 려명거리 건설 성과를 중계했다. 15층 살림집 골조를 불과 20여 일 만에 보란 듯이 일떠세움(5월 30일)→2000여 가구 살림집 골조공사 완료(6월 11일)→2800여 가구의 살림집 골조공사 완료(6월 19일)→두 달 남짓한 기간에 려명거리 55층 살림집 골조공사 완공(7월 18일)→려명거리 모든 건축물 골조공사 100% 완수(8월 5일) 등 속도전의 연속이었다. 북한의 대외 선전매체들은 “대북 제재에도 려명거리 70층 골조공사를 완성한 것은 기적”이라거나 “고강도 제재에 대한 우리 인민의 대답”이라고 자평했다.

지난 6월 27일 찍은 려명거리 건설 현장. 평양을 마천루 도시로 만들려다 경제를 무너뜨리는 것은 아닐까.지난 6월 27일 찍은 려명거리 건설 현장. 평양을 마천루 도시로 만들려다 경제를 무너뜨리는 것은 아닐까.

무리한 속도전의 이면에는 주민들의 가혹한 희생이 존재한다. 건설 중장비도 변변찮은 상황에서 6월부터 하루 100가구에 달하는 아파트 골조공사를 완료했다는 북한 매체의 보도로 미뤄 려명거리 건설 현장에 동원된 청년 돌격대와 젊은 학생들의 노동 강도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엄청난 속도로 70층, 100층 초고층 아파트를 짓는다 한들 과연 그 아파트가 안전할까. 평양 주민들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2014년 발생한 아파트 공사 현장 붕괴사고 기억이 선명할 것이다. 전력 공급이 이뤄지지 않아 엘리베이터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초고층 아파트에 누가 들어가서 살고 싶을까.

더 큰 의문은 ‘만리마 속도’ 구호를 외쳐대며 올린 초고층 건물이 과연 인민 경제 향상으로 이어질까 하는 점이다. 마천루 건설에 집착하면 그 나라 경제가 무너진다는 ‘초고층 빌딩의 저주’가 평양은 피해갈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일까. 아직까지 이러한 의문에 대해 김정은 체제는 이렇다 할 답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려명거리가 너무나 불안하고 위험해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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