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한반도 통일 환경은 매우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적으로 문명(Civilization)의 전환기를 맞아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단기적으로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강대국 스트롱맨들이 서로 힘겨루기를 할 것이기 때문에 한반도 주변 정세가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북한이 핵과 미사일의 고도화에 전력투구하고 있으나 우리 사회는 탄핵 정국으로 야기된 리더십 공백 때문에 급변하는 통일 환경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산업문명(Industrial Civilization)에서 디지털 문명(Digital Civilization)으로 넘어가는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높다. 산업혁명이 열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의 발명에서 시작된 것처럼 정보통신기술을 비롯한 디지털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현실세계의 모든 인간 활동이 사이버 세계에서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것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사물인터넷, 스마트폰, 드론(무인기), 자율주행자동차, 빅데이터, 온라인 뱅킹, 인터넷 쇼핑, 가상현실, 인공지능,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이 세상을 바꿔나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의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예를 들면 인간지능을 능가하는 인공지능 기술이 보편화되는 시기에 우리의 삶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를 상상하기 힘들다. 앞으로 이러한 변화가 우리의 통일 과정이나 수단을 어떻게 변화시켜나갈 것인지를 전망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로 등장할 것이다.
불확실성의 근본적인 원인
불확실성을 높여주는 또 하나의 요인은 세계적인 리더십의 부족이다. 문명사적 전환기에 인류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방향을 제시해주는 학자나 정치가가 없다. 더구나 2001년 미국의 9·11 테러 사태 이후 전쟁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는데, 이러한 테러와의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는 지도자가 없어 전 세계가 테러의 불안에 떨고 있다.
또 2008년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커다란 난관에 봉착했으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나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를 대체하거나 수정·보완할 수 있는 비전이나 정책 방향이 나오지 않고 있다. 더욱이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미국에서의 트럼프 집권 등으로 ‘반세계화’ 추세가 등장하는 바람에 자유주의 국제질서(Liberal International Order)와 세계 자본주의의 장래가 불안해지고 있다. 이러한 불안이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한반도 통일을 달성하려는 우리의 노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여 매우 안타깝다.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강대국의 최근 모습을 보면 스트롱맨들의 자국 이익 우선주의가 강화되는 추세다. 미국의 트럼프, 중국의 시진핑, 일본의 아베, 러시아의 푸틴 등이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목표와 가치를 공유하려는 노력 대신 힘을 앞세워 노골적으로 국익을 추구하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에 대한 열렬한 추종자를 중심으로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자국 영토와 경제 보호, 군사력 강화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이 민주적 절차나 외교 시스템 대신에 개인의 리더십을 중심으로 대외정책을 추진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2월 10일(현지 시간) 트럼프 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을 하며 친밀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미 트럼프는 취임사에서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를 강조하고, “무역, 세금, 이민, 외교에 관한 모든 결정은 미국 노동자와 미국 가족의 이익을 위해 내려질 것”이라면서 “우리는 우리 제품을 만들고, 우리 기업을 훔치고, 우리 일자리를 파괴하는 다른 나라들로부터 우리 국경을 지켜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의 새로운 정책 기조가 과연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어떻게 적용될 것인지, 특히 북핵 문제, 주한미군 주둔비 분담금, 한미 자유무역협정 등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했다. 이런 문제들이 우리의 통일 노력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것이다.
시진핑은 지난해 가을에 ‘핵심’ 지도자로 등장해 36년간 지속돼온 중국식 집단지도체제를 1인 지도체제로 바꾼 또 하나의 스트롱맨이다. 우리는 시진핑의 대한반도 정책뿐만 아니라 미·중관계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의 등장으로 미·중 간의 갈등이 더욱 고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우리가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올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100일 이내에 미·중 무역관계를 점검하고 중국의 환율 조작 여부를 조사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또한 선거 때 “중국은 지난 20년간 군사비를 연 13%씩 증강했으나 오바마 대통령은 군사비를 4000억 달러나 삭감했다”고 비판하면서 앞으로 미국의 군사력 강화를 약속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동중국해, 남중국해 등에서 군사력으로 중국을 압도하겠다는 생각이다.
스트롱맨들의 자국 우선주의
반면 시진핑 주석은 남중국해를 비롯한 영토 문제는 중국의 핵심이익에 해당하기 때문에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양국이 전면적인 충돌로 가는 것이 모두에게 불행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갈등이 고조될 때마다 서로 타협한 결과 일정 수준에서 멈췄다. 중국은 경제성장과 내부 안정을 위해 미국과 전면전을 벌이는 것이 불리하다고 판단해 미국에 대한 정면 도전을 자제하고 있고, 미국은 중국 내 미국 기업과 중동 문제 등을 위해 중국을 적대국가로 만드는 것이 손해라는 인식 아래 타협을 해왔다.
그런데 트럼프의 경우 군사력, 관세, 환율 조작 등을 내세워 공세적인 관여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으로 미·중관계가 원만하지 못할 경우 우리는 북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양국의 협력을 얻어내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특히 북한 내부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하는 경우 양국의 협력이 긴요하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양국을 설득할 수 있는 준비태세를 갖춰나가야 할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도 자국 우선주의를 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악수를 나누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스트롱맨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러시아의 푸틴은 강대국의 지위를 회복하려는 야심 아래 시리아와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과 충돌하는 가운데 ‘서방의 위협에 국민 총단결’을 내세워 지난해 총선에서 대승을 거뒀다. 한편 러시아의 푸틴에 우호적인 트럼프의 등장으로 미·러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과연 미국이 러시아와 손잡고 중국을 견제할 것인지가 관심사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함으로써 한·러관계에 진전이 없었으나 앞으로 미·러관계가 변하는 경우 러시아를 통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히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입, 북한을 통과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연결사업 등이 오래전부터 논의돼온 사항인데, 이러한 대형 프로젝트가 성사될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이 만들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입체적이고 세련된 통일외교 필요
동아시아의 새로운 맹주로 등장하려는 일본의 아베 총리는 일본의 재무장과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자민당 총재의 임기를 연장해 2021년까지 장기집권의 길을 열어놓았다. 더욱이 트럼프 당선 직후 양자 간의 정상회담을 개최한 데 이어, 트럼프 취임 후 미·일이 첫 정상회담을 할 정도로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다.
미·일동맹을 견고하게 만들어 중국을 견제하려는 아베의 정책은 트럼프의 등장으로 탄력을 받고 있다. 특히 일·중 간의 최대 현안인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와 관련해 트럼프가 미·일동맹을 통해 지켜줄 것을 약속함으로써 아베는 대내외적으로 매우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되었다. 또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도 미·일이 공동 대응하기로 천명했다.
이러한 아베의 발 빠른 대응은 우리에게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지니고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미·일이 공조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일본의 개입이 오히려 한반도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또 우리의 대북·대외정책의 자율성을 제약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아베는 식민지사관에 젖어 있는 보수 우파의 핵심이어서 과거사 문제와 위안부 문제, 그리고 독도 문제 등에 대해 전혀 반성과 양보의 의사가 없기 때문에 한일 간의 정치·경제·군사적 협력에 한계를 지니고 있다. 특히 우리의 경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아베의 대중 견제정책을 무조건 따라갈 수 없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을 상대로 한 통일외교가 입체적으로, 매우 세련되게 추진돼나가야 할 것이다.
김 용 호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정치학 박사. 외교안보연구원·한림대 교수, 한국정당학회장, 한국정치학회장, 인하대 사회과학대학장 겸 행정대학원장 역임. 현재 민주평통 기획조정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