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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IN

평양 시가지 풍경. 평양 시가지 풍경. 욕망의 바벨탑인가,
시장경제의 첨병인가

북한 평양의 스카이라인이 바뀌고 있다. 늘어나는 고층 아파트들 때문이다. 최고 20만 달러까지 값이 치솟고 있다는 평양의 아파트는 북한 주민들에게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일깨워주는 좋은 교재가 될 것이다.

1980년대 방 한 칸에 100달러에 팔리던 평양의 주택이 2000년대 들어서면서 만 달러대에 진입했고, 1년 단위로 가격이 상승해 2017년 현재 20만 달러가 넘는 아파트가 등장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더 주목할 점은 신축 아파트의 건설과 판매다.

아파트가 대거 건설된다는 것은 자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보이지 않는 손’, 즉 투자자인 돈주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북한에서 아파트를 건설하는 주체는 국가다. 하지만 국가는 실제 이를 수행할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각 구역별로 기관 및 공장기업소에 건설을 할당한다. 예를 들어 A구역은 체신소가, B구역은 보위성이, C구역은 검찰소 등이 맡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자금이 충분하지 못한 기관·기업소는 개인 투자가를 끌어들인다. 결국 기관·기업소는 아파트가 완공되면, 개인 투자가의 투자금을 상환하기 위해서라도 일부를 시장에 판매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변해갔다.

지금은 여기서 한층 더 발전해 건설주가 아파트를 건설하기도 전에 미리 입주 희망자를 모집해 아파트 대금을 받고, 이 대금으로 아파트를 건설한다. 이른바 분양이다. 지하와 1층만 잘 닦아놓아도 입지만 좋으면 사전에 돈을 주고 구입하겠다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북한에서 시행사는 아파트 건설을 위해 많은 비용이 필요 없다.

평양의 58층 초고층 주상복합건물.  평양의 58층 초고층 주상복합건물.

시공사 입장에선 입지가 매우 중요하다. 아파트 입지만 좋으면 돈을 싸들고 온다. 교외로 조금만 나가도 아파트를 건설할 공터가 풍부함에도 굳이 평양 중심지의 건물 사이에 아파트 건설이 집중되는 이유다. 특히 평양은 지하철이 다니는 구역이 중심이다. 그 중에서도 평천구역은 노동자구역이지만 평양화력발전소가 있어 난방과 전력 사정이 좋아 주택지로 인기가 높다. 따라서 최근 아파트 건설이 가장 많이 이루어졌다.

이렇다 보니 판매 가능한 아파트 건설 부지가 한정돼 있다. 입지만 좋다면 용도 변경도 강행한다. 예를 들어 폐교 직전의 학교나 유치원이 있으면 용도 변경을 강행해 아파트를 건설한다. 이미 주변에 인프라가 형성돼 있어 시공주가 투자금을 모집·회수하는 데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부각된 변화 중 하나가 아파트를 건설할 때 ‘철거’를 동반한다는 사실이다. 시공주는 아파트 건설 부지를 제공받는 대신 철거민에게 물질적 보상(예를 들어 신축 아파트 한 채 제공)을 약속한다. 그러나 건설주와 철거민 사이에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철거민에게 몇 층 아파트를 제공할 것인지 때문이다. 북한은 전기가 부족해 엘리베이터가 작동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저층에 대한 선호도가 강하다. 10층 아파트의 경우 로열층은 3층에서 6층 사이다. 고층과 저층 사이 가격차가 집 한 채를 사고 남을 정도로 크다. 최근 평양에서는 이러한 분쟁을 중재해줄 ‘중재재판관’이라는 새로운 공무원 직업이 나왔을 정도이다.

관료들도 부동산 시장에 참여

아파트가 신축되면 가격 상승은 시간문제다. 입지가 좋은 데다 신축 아파트에 대한 희소성이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근 평양의 ‘려명거리’ 집들은 철거 작업이 한창인데 완공되면 금방 10만 달러에 팔 수 있다. 따라서 철거 대상의 집들은 고가에 거래된다. 시가가 5000달러였다면 철거 직전엔 1만 달러로 상승한다. 가난한 사람에겐 매우 큰돈이다. 장사 밑천을 삼을 수도, 일반 집 두 채를 구입해 자식 내외를 분가시킬 수도 있다. 특히 북한은 내장 공사를 하지 않고 분양한다. 내장 비용이 집값에 맞먹을 만큼 부담이 크다. 이런 이유로 가난한 계층은 신축 아파트 입주를 포기한다. 여기서 또 한 차례 빈부 격차가 발생하고, 중산층이 생겨난다.

공사중인 아파트 모습. 공사중인 아파트 모습.

아파트 건설은 입지 선정에서 분양에 이르기까지 기관들의 도장을 수없이 필요로 한다. 도장이 찍힐 때마다 관료들의 주머니는 두둑해진다. 게다가 고부가가치를 획득할 기회의 시장이라면 관료들의 시장 참여를 유인한다. 관료도 점차 부동산 시장에 참여하고 있으며, 새로운 ‘돈주’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것이다. 이권 확보에는 국토 개발계획 정보를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가 관건인데, 이 상황에서 고위 관료는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이와 같이 간부의 시장 참여 및 확대 여부는 향후 북한에서 시장경제로의 이행에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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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은 이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베이징대학교 한반도연구센터 객원연구원, 일본 ERINA 동아시아경제연구소 초빙연구원 등 역임. 주요 논문 ‘5·24 조치가 북·중 무역에 미친 영향에 관한 분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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