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과 화면반주음악실, 웨딩드레스와 첫날옷, 컵과 고뿌, 자두와 추리….
같은 대상을 지칭하지만 전혀 다른 이 단어들은 각각 남한과 북한에서 사용되는 언어다. 당장 통일이 되더라도 남북 언어 사이에는 이처럼 큰 간극이 존재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오래전부터 인식해온 민주평통 인천 중구협의회 이승부 회장은 2015년 7월 취임 이후 남북 언어의 차이를 비교·정리한 <남북 기초 생활 용어 대조 자료집> 발간 작업에 팔을 걷고 나섰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통일을 대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언어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대책이 없는 상황이에요. 탈북민들을 만나 대화를 나눠보면 저 같은 어른도 말을 거의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은데, 통일의 주역이 될 우리 청소년들은 더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요? 하루라도 빨리 이런 문제를 해소할 방법을 찾아야 된다고 생각했고, 그 일환으로 남북 언어를 비교·정리한 자료집 발간을 추진하게 됐습니다.”
통일안보 분단 현장 견학을 마친 뒤 회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 12월 20일 발간된 <남북 기초 생활 용어 대조 자료집> 은 남북의 일상어를 교육, 경제, 교통, 여가 등 다양한 영역으로 나눠 폭넓게 대조한 단행본이다. 유관 공공기관인 겨레말큰사전남북공통편찬사업회와 협업을 거쳤고, 기획부터 제작까지 약 1년의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배포할 목적으로 그들이 주로 사용하는 언어를 중심으로 표준어 비교표를 만들려고 했어요. 그런데 자료를 취합하다 보니 더 광범위하게 다루고 싶은 욕심이 나더군요. 결국에는 용어 전반을 다 아우르면서 어른들도 볼 수 있는 방대한 자료집으로 만들게 됐죠.”
그러나 국가 차원에서 진행된 프로젝트가 아닌 만큼 예산의 한계가 컸다. 발행부수가 몇백 부에 그친 것도 그 때문이다.
‘미래 통일 주역’ 청소년 행사 적극 추진
“애초 계획보다 많은 내용을 담으면서 책이 두꺼워졌고, 검증 과정도 오래 걸렸고, 제작비도 비싸졌어요. 결국 애초에 찍기로 한 부수의 4분의 1인 250부밖에 찍지 못했죠. 예산의 한계로 더 많이 찍지 못한 게 아쉽지만, 언어 통일의 첫걸음인 자료집을 발간한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현재 이 자료집은 인천시내 초·중·고등학교 40여 곳, 인천시 교육청, 관내 동 주민센터, 사회단체 등에 배부됐다. 협의회 측에 따로 요청해 받을 수 있지만 그마저도 수량이 모자라면 받기 어렵다.
“우선은 관내 학교, 관계기관에만 나눠주는 실정이 돼버렸지만, 올해는 좀 더 넉넉히 찍어서 꼭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도 나눠줄 수 있도록 할 계획이에요. 특히 북한에서 처음 오신 분들은 굉장히 필요로 하시거든요. 부족하나마 이 자료집이 남북 언어의 차이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남북이 서로 한마음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자료집 발간을 비롯해 지난 1년간 협의회는 좀 더 실용적이고 일상적인 통일 관련 활동에 초점을 맞췄다. 통일 염원을 매개로 한 음악회나 체육대회 등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모임을 자주 마련한 것도 그러한 사례다.
평화통일 준비 음악회에 참가해 통일상을 수상한 학생들의 모습.
“통일을 위한 노력에는 돈, 시간, 사람 세 가지가 복합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이 중 사람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대표적으로 탈북자들과의 자리를 자주 마련해 이들이 남한 사회와 연결고리를 맺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누가 자신을 고발할까 두려워하는 탈북민들은 쉽사리 대화를 시도하지 못하는 등 마음의 문이 닫혀 있어요. 그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음악회 같은 문화 행사를 자주 열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학생 통일강연회, 역사·통일골든벨 퀴즈대회, 통일 꿈나무 체육대회 등 어린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행사에도 열심이다. 이는 ‘미래 통일의 주역은 바로 어린이, 청소년’이라는 이 회장의 확고한 의지에서 비롯됐다.
“통일은 세대에 관계없이 이뤄지는 것인 만큼 모든 행사의 주체는 초등학생부터 어른까지 전 연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반영한 활동이 늘어나서인지 과거에는 우리 협의회가 무게 있는 활동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여성과 청소년 등 젊은 층의 자유로운 토론과 대화 등이 보편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청소년들이 자기들만의 모임 장소를 만들어서 통일에 대한 고민을 나누거나, 여성 위원들이 탈북민들의 멘토를 자처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인천 송도중학교에서 역사와 통일을 주제로 한 골든벨 퀴즈대회가 열렸다.
누구나 머릿속으로 고민하고 생각할 순 있지만 직접 실행에 옮기는 일은 또 다른 문제다. 중구협의회의 강점은 바로 이 실행력에 있다. 갈수록 격차가 심해지는 남북 언어의 격차를 극복하고, 미래 통일의 주역인 아이들에게 통일 의식을 심어주는 것, 이 두 가지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의 작은 노력이 평화통일의 밑거름이 되어 청소년들이 외국에 나가지 않고도 한반도에서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회가 어서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