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지난해 7월 한국으로 망명했다. 평양외국어학원, 평양외국어대를 졸업하고 덴마크, 스웨덴에서 외교관으로 일했다. 2000년 영국 근무를 시작해 2014년 마지막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망명 후 국가정보원 조사와 한국 생활 적응 준비 등 5개월여의 시간을 보냈다. 올해 1월부터 공개 활동을 시작했다.
태 전 공사는 2월 7일 필자와 만나 “아들을 노예주(主)의 노예로 살게 할 수 없어 탈북했다”면서 “북한은 노예주가 다스리는 노예사회”라고 말했다.
“북한은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다. 공산주의는 세습 통치를 반대한다. 북한은 노예주가 다스리는 노예사회다. 노예사회를 생각해보자. 어떤 느낌이 드나. 젊은이라면 노예 해방을 위해 일어서야 한다. 서구의 민주주의 나라에서는 자본주의, 공산주의 개념을 다 받아들인다. 공산주의는 이데올로기의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노예사회는 결코 용인해서는 안 되는 체제다.”
‘수령’에서 ‘돈’으로
그는 “북한 주민의 신심(信心)이 수령에서 돈으로 이동하고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념이 바뀌었다. 과거엔 ‘하나는 전체를 위해, 전체는 하나를 위해’라는 집단주의 정신이 머릿속에 있었다. 수령에 대한 믿음 또한 존재했다. 이제는 돈이 없으면 죽는 사회다. 장마당에 나가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아야 먹고산다. 신심의 대상이 수령에서 돈으로 옮겨가는 거다. 북한 노동자가 베트남, 라오스, 아프리카 나라 등에 가서 일한다. 북한이 과거에 배로 쌀 실어다주면서 돕던 나라에 인력을 파는 것이다. 북한 사람들이 이 같은 상황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공산 정권에 미래가 있다고 여길까. 수십 년을 버텼으나 미래가 없다고 판단하는 거다. 북한 주민들의 마음과 사상이 지금 달라지고 있다.”
그는 “북한 주민이 각성해 김정은 정권을 무너뜨리는 게 통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해법은 오직 그것 하나다. 북핵, 북한 문제를 분리한 단계적 해결 방안은 말이 안 된다. 국제사회가 입때껏 몇 번 속았나. 또 사기를 칠 것이다. 속여온 체질이 변할까? 변하지 않는다. 북한 사람들은 김정은 위에 배 다른 형 김정남, 이복누이 김설송, 같은 피 김정철이 있다는 것도 모른다. 사람들이 내부 실상을 아는 날 큰일이 나기 시작한다. 북한에 정보를 꾸준히 넣어 각성하게 해야 한다.”
태영호 전 공사가 2월 15일 민주평통 운영위원과의 간담회에서 북한 김정은 정권의 실체에 관해 소개했다.
그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는 “생각하던 한국과 겪는 한국이 다르다”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상당히 많은 부분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 북한 외교관치고 한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했고 한국 사회가 대단히 민주화돼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막상 생활상 측면에서 부딪쳐보니까 한국의 보건 시스템이 아주 잘돼 있는 것 같다. 북유럽의 스웨덴, 덴마크, 영국 등 말하자면 복지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모델이라는 나라들에서 살았는데 한국에 와서 보니 그 나라들보다 상당히 보건 시스템이 잘돼 있다. 영국에 살 때는 병원에 가서 예약하고 치료받자면 3개월에서 6개월 걸리는데 여기서는 병원에 가면 즉시 그 자리에서 의사 선생님들이 처리해주더라.”
그는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통일을 통해 한국의 산업이 다시 한 번 도약할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에 와서 보니 건설업체, 제조업체, 중공업이 상당히 침체 상태더라. 그러면서 한편에서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 계속 얘기하는데 4차 산업혁명으로 한국이 빨리 도약하는 건 좋은데 그렇게 되면 건설업과 제조업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 수만 명이 다 실업자가 되는 것 아닌가. 그렇기에 경제적으로 보면 한국에 일정한 과도기가 필요한데 이 과도기를 남북통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통일이 되면 북한 지역에는 엄청난 건설과 제조업 수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통일은 이렇게 한국이 4차 산업으로 부드럽게 넘어가는 하나의 발판이 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北, 적화통일 포기한 적 없어”
그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핵은 한국을 겨냥한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김정은(노동당 위원장)은 한국 국민에게 정말로 핵을 쓴다. 2013년 채택한 핵·경제 병진노선은 핵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만들어 한국이라는 실체 자체를 불바다로 만들어 한국군을 순식간에 무력화하려는 것이다. 북한 정권은 어느 한순간도 대남 적화통일 목표를 변경시킨 적이 없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미군 병력의 증원을 차단해야 하는데 미국이 (한반도 유사시) 개입 여부를 고민하게 만들기 위해 만든 것이 핵이다. (북·미) 평화협정을 체결해도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태영호 전 공사는 “북한의 통치체계가 바뀌면 빠른 속도의 경제 발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북핵 문제 해법은 명확하다”면서 “김정은 정권 소멸”이 해답이라고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단언했다.
“북한은 모든 권력기관과 무력이 분권화돼 김정은에게 종속된 체제다. 이는 김정은 유일 독재체제를 떠받치는 데는 장점이나 일단 김정은이라는 우두머리가 없어진 뒤에는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지휘체계다. (김정은이 사라지면) 권력세력 간에 엄청난 충돌이 일어나고 그 과정에서 북한은 저절로 무너져 앉을 거라고 생각한다. 민중봉기나 통일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특히 한국 국민과 정치인분들이 어떻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정의가 승리한다”
태 전 공사는 지난해 12월 27일 기자간담회에서 만세를 부른 사연을 두고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정말 오랜 심리적 고충과 준비를 거쳐 한국에 왔다. 한국 땅에 발을 디디는 순간 노예에서 해방된 희열을 만세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마중 나온 관계기관 요원들이 지금은 만세 부르고 그런 시절이 아니라더라. 네티즌(누리꾼) 반응을 좀 봤는데, ‘잘 오셨다, 환영한다’는 말보단 ‘누구의 사촉을 받아 왜 이 시점에 기자간담회 하냐, 정부가 만세 부르라고 시켰냐’는 이런 반응들이 눈에 더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이것만은 좀 똑바로 밝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 한국 실정이나 정서를 몰라서 더 많이 공부해야겠지만, 정말 나의 마음은 만세를 부르고 싶다.”
그는 북한의 통치체계가 바뀌면 아주 빠른 속도로 경제 발전이 가능하다고 ‘신동아’ 인터뷰에서 내다봤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김정은 아버지 김정일에게 제안한 게 있다. 러시아~북한~한국을 잇는 가스관이다. 가스관이 지나가는 길에 가스발전소를 세우면 에너지 문제가 단박에 해결된다. 동유럽이 서유럽으로 가는 러시아 가스관 통과료를 받아 먹고산다. 푸틴 제안만 받아들여도 전기 걱정할 일이 없다. 중국이 10년 전부터 단둥~개성~서울을 잇는 고속도로를 짓자고 한다. 통과료를 북한에 주겠다는 조건이다. 도로가 이어지면 단둥에서 서울로 가는 화물이 가득 찰 것이다. 냉장고든, 휴대전화든 배로 가는 것보다 육로로 가는 게 기업 처지에서 유리하지 않나. 서울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을 실은 버스가 고속도로를 내달릴 것이다. 북한 농민이 중국에 놀러 가는 한국인 관광객과 물자를 가득 실은 차량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신심이 낮아지는 정도가 아니라 김정은 저거 없애버리고 한국과 함께 살자는 마음이 들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북한 처지에서 중국이 매달 10억 달러씩 준대도 고속도로를 놓을 수 없는 거다.”
영국 런던의 북한대사관 모습.
그는 한국의 촛불시위와 북한 정권 붕괴를 다음과 같이 연결해 설명했다.
“광화문 촛불시위에 사람들이 왜 모이는지 아나? 한국 시민들은 할아버지, 아버지에게서 부정의에는 참지 못하는 DNA를 물려받아 진화했다. 승리해본 경험도 있다. 6월 항쟁을 보면서 자랐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참을 수 없는 거다. 누가 나오라 말 안 해도 뛰쳐나온다. 북한 사람들도 의심하고 하나씩 알아가고 행동해 저항하게 만들어야 통일을 이뤄낼 수 있다. 역사 발전 과정을 돌이켜보면 정의는 항상 승리했다. 부정의는 정의를 이기지 못한다. 5년, 10년, 15년이 될지 모르겠으나 김정은 정권은 무너진다. 북한 사람들이 걸어오느냐, 달려오느냐는 우리가 얼마나 투쟁하는지에 달렸다. 아버지, 할아버지가 부정의와 싸우는 것을 본 한국 시민들처럼 (북한 사람들이) 저항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송홍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