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주요 기념일인 광명성절(2월 16일, 김정일 생일)을 앞두고 북한의 중거리 미사일 도발(2월 12일)과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피살 사건(2월 13일)이 연이어 벌어졌다. 2월 16~17일 강원 속초시 마레몬스호텔에서 열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 주최 ‘제20차 남북관계 전문가 토론회’는 중차대한 시기에 열린 의미 있는 행사였다.
유호열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개회사에서 “남북관계 전문가 토론회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전문가들이 모여 서로 다른 입장을 이해하고 배우며 발전해온 민주평통의 가장 의미 있는 행사”라며 행사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이번 토론회는 남북관계를 둘러싼 상황과 시기를 감안한다면 어느 한 사람이 주제를 발표하고 토론하기보다 20여 명의 전문가가 발표자가 되어 토론하는 것이 적합하다”며 “통일이 중요한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국론이 나눠진 안타까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도록 전문가들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달라”고 당부했다.
사회를 맡은 남궁영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별도 기조발표 없이 12명의 전문가가 ‘남북관계 전망’ 1세션을, 나머지 12명의 전문가가 ‘민주평통의 역할’ 2세션 주제를 놓고 토론하겠다”며 토론회를 진행했다.
유호열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개회사에서 “남북관계 전문가 토론회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전문가들이 모여 서로 다른 입장을 이해하고 배우며 발전해온 민주평통의 가장 의미 있는 행사”라며 이번 행사 의미를 설명했다.
첫 토론자로 나선 김갑식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2017년 남북관계 변수로 트럼프 미 행정부 출범과 국내 정치 상황을 꼽았다. 그는 “북한이 도발을 하더라도 트럼프 행정부가 어느 수위에서 어떻게 대응할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기각 혹은 인용되더라도 탄핵 후유증을 치유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올 상반기 동안 대북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이럴 땐 대북정책을 급작스럽게 변경하고 수정하기보다 기존 정책을 유지하면서 북한의 오판을 막고 확정된 정책 안에서 남북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재 상황을 ‘지구상에서 가장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와 김정은이 맞붙은 형국’이라고 정의하고 “사업가 마인드로 중무장한 트럼프는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돈이 되지 않는 대북정책을 매력적으로 여기지 않을 것 같지만,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보조카드로 대북정책을 활용할 가능성은 있다”고 분석했다.
2017년 남북관계 변수 세 가지
김민석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이 북한의 신형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인 북극성 2형을 쏠 때 주무부처에 거의 살다시피 했다는데, 그렇게 집념을 보일 정도로 미사일 개발에 몰두하는 것은 김정은이 무척 급하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며 “북한이 다시 미사일을 날리는 요인을 여러 각도로 분석하면 북한을 좀 더 잘 전망할 수 있고, 그에 따른 대처 방안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는 “북한 내부 갈등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북한 엘리트층 간의 갈등은 있지만, 그것이 쿠데타나 혁명으로 이어지려면 민심이 확 바뀌어야 하는데 북한 내 김정은의 지지도가 상당하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최근 탈북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주체사상에 대한 자부심이 63%(2016년)를 기록했고, 세대별 김정은 지지도는 20대(71.2%)와 30대(66.2%)가 50대(59.8%)와 60대(60.2%)보다 높았다고 한다.
김수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핵 문제는 북한 정권의 본질적 속성에 기인하고 있어 안보뿐 아니라 인권을 통합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호 국방대 안보문제연구소 소장은 “탄핵 이후 차기 행정부가 들어선다면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거래 시도 등을 통해 후반기에는 북한의 태도에 따라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남북관계 전망’을 주제로 토론자로 나선 김갑식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민석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김수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영호 국방대 안보문제연구소 소장, 김중호 한국수출입은행 선임연구위원, 김창수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김태우 건양대 초빙교수, 김태현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 남광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윗줄 왼쪽부터).
김중호 한국수출입은행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경제 상황을 통해 남북관계를 전망했다. 그는 “김정은 정권의 군사 도발에 대한 국제 제재 강화에도 불구하고 경제지표(경제성장률, 대외무역, 시장 환율, 쌀 가격 등)는 안정세를 보인다”며 “북한 경제 체제의 생산성이 향상되지 않은 가운데 대중국 무역과 유통, 건설 등 특정 분야에서 비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북한 경제가 안정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남북 경협 전면 중단 및 대북 제재 강화 추세 속에서 우리 정부가 새로운 대북 레버리지(적은 돈으로 큰 수익률을 얻기 위해 빚을 내는 투자기법)를 확보하기 위해 주변국과의 전략적인 대화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대안이다.
김창수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실제 ICBM 실전 배치까지 얼마나 시간이 소요될 것인지, 북한이 미국의 선제타격을 유도할 군사적 도발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미국은 예방타격 혹은 선제타격을 어떤 조건에서 고려할 것인지, 선제공격에 따른 파장과 오산의 위험은 무엇인지, 한국 정부와의 조율 없이 가능한지 등을 심층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우 건양대 초빙교수는 “탄핵 결과에 따른 대통령 선거 실시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여야 및 대선후보 간 안보, 핵, 북한, 통일 분야에 대한 공통적인 인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태현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미국의 주목을 끄는 게 오히려 미국에 대한 북한의 위협을 과도하게 부각시켜 대북 선제타격 가능성을 포함한 군사적 위기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한국의 의사가 100% 반영되지 않은 가운데 미국과 북한의 정치적인 타결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남광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는 트럼프 시대 한미동맹의 성격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는 트럼프의 대한정책이 아닌 한국의 국내 정치라고 진단했다. 그는 “불확실한 국제 환경 속에서 한미동맹 관리도 중요하지만 통일로 가는 기회도 대비해야 하므로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 지원과 북한 체제 변화를 위해 한미 양국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일로 가는 기회 대비해야
토론회는 2017년 한반도 정세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은 후, 제2세션에서 민주평통의 역할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박종철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민주평통이 자문위원뿐 아니라 국민의 다양한 견해를 반영해야 하는 만큼 다양한 성향, 세대, 계층 등을 대변하는 사람들로 자문위원을 구성하고, 여러 대안의 선택지를 건의할 때 소수 견해도 같이 첨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시중에 등장하는 여러 정책과 대안의 사실관계 오류를 밝히고 장단점과 이해득실을 비교해 국민이 판단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은 북핵 상황의 정확한 평가와 대국민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민주평통의 역할임을 분명히 했다. 이석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민주평통이 서로 다른 시각과 논쟁, 대립이 이뤄지는 용광로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다가 새로운 정부가 일정한 정책을 형성한 후에는 국론 결집을 도모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평통의 역할’을 주제로 토론자로 나선 박종철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 이석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소장, 이종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 교수, 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남훈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연구소 소장, 홍규덕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현장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통일사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선 민주평통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소장은 “민주평통이 주관하는 통일 관련 문화행사나 이벤트를 늘린다면 경기침체와 김영란법 시행 등으로 그동안 미뤄져온 민간 주도의 통일운동이 예산 제약이라는 난관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종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 교수는 “대북 지원이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민생 지원이 될 수 있도록 국제기구 등과 협조해 지원 물품이나 의료 지원 등이 집적 주민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 변화를 위해 북한 당국과 북한 주민에 대한 분리 접근에서 한발 더 나아가 북한 당국 내에서도 김정은과 엘리트 계층을 분리해 접근하는 정책 개발과 이를 전파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각계각층 국민의 목소리 들어야”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부 남북관계 전문가 사이에서 ‘연방제 통일’ 방식이 남북관계의 현실에 비춰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민주평통 차원에서 연방제 통일이 갖는 의미와 현실적으로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남훈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젊은 세대의 통일운동 참여와 함께 통일 교육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민주평통 내 젊은 세대의 참여가 늘어나야 한다”고 제안했다.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연구소 소장도 “각계각층 자문위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종합하는 본연의 역할을 추구하면서 정부의 입장을 지역에 하달하는 일방적인 기능은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홍규덕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일 및 대북정책은 정권의 향배에 따라 접근 방식이 달라질 수 있지만 원칙은 지켜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