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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에 소녀상이 설치된 것에 반발해 일본이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고 있다.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에 소녀상이 설치된 것에 반발해 일본이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고 있다. 사안별 분리 대응 통해
경제·안보 이익 극대화 초점 맞춰야

일본이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에 반발해 주한 일본대사를 소환하고,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는 등 한일관계가 총체적 난국으로 치닫고 있다. 한반도 안보와 경제를 위해 한일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한일관계에 풍랑이 그칠 날이 없다. 박근혜정부 출범 후 3년 동안 한일 양국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대립했다. 2015년 말에 양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합의하면서 2016년 한 해 동안에는 관계가 일시적으로 개선되었지만, 2017년에 다시 대결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해 말 부산의 일본 총영사관 앞에 소녀상이 설치된 것에 반발해 일본 정부가 주한 일본대사를 소환했고, 여기에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더해지면서 대사의 귀임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3·1절을 앞두고 한일관계는 총체적인 난국을 향하고 있는 모양새다.

문제는 한일 양국이 상호 소통과 협력이 안 되면 두 나라 모두 손해를 보는 관계라는 점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이 상징하듯 광복 이후 우리의 대일 인식은 이중적이었다. 우리에게 ‘청산의 대상’이자, 냉전체제에서 살아남고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준(準)동맹국’이었다.

미국과의 동맹관계(미국의 아·태 지역 관여) 및 자유무역 체제에 사활적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한일 양국은 전통적으로 안보와 경제 분야에서 국제 정세의 불투명성이 증가할 때 상호 협력을 강화해왔다. 냉전체제가 해체되면서 한일관계가 이완됐다고 하지만, 경제와 안보 분야에서 양국 간에 원활한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면 쌍방이 손해를 보는 관계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한일관계 긴장 수위 높아질 가능성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의 기치 아래 보호무역주의와 고립주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국제 정치·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졌다. 이뿐만 아니라 국제 경제의 침체와 불안정 요인, 북한의 거듭되는 핵·미사일 도발,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중관계의 경색 등을 감안한다면, 2017년은 그 어느 때보다 한일 양국이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최소화하고 전략적 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엄중한 국제 정세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한일관계는 역사 문제, 특히 위안부 문제가 가시처럼 남아서 양국 간의 소통을 제약하고 있다.

한일 간에는 매년 특정 시기에 과거사와 독도를 둘러싸고 서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악순환이 계속돼왔다. 금세기에 들어 일본의 국정교과서와 외교청서 및 방위백서 등에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의 주장이 기술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 25년간 한일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2010년대 들어 소녀상 문제로 비화했다. 게다가 일본 근대 산업시설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는 문제, 일제강점기에 강제 동원된 피해자 보상 문제, 일본 대마도 불상의 반환 문제 등이 한일 간의 외교 현안으로 남아 있다.

한편 2017년은 한국에서 ‘정치의 해’에 해당하는 만큼 유동성이 극대화된 한국의 국내 정치가 한일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탄핵 정국과 이에 따른 리더십 부재라는 과도기적인 상황에서 대외정책에 대한 정부의 장악력 약화가 우려된다. 야당은 사드 배치, 위안부 합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등 박근혜정부가 지난 1년 동안 결정한 주요 외교 현안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좌)부산 일본 영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 (우)한일 갈등의 요인이 된 대마도 불상.(좌)부산 일본 영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 (우)한일 갈등의 요인이 된 대마도 불상.

현 정부는 탄핵 정국과 무관하게 이들 정책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여소야대의 국회 의석 분포와 탄핵 정국이라는 비상 상황을 감안할 때 정부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올해 실시될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주요 외교안보 이슈가 정치 쟁점화하고 대선 후보자들의 선거 공약에 이에 대한 찬반양론이 포함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이 현실화한다면 한일관계의 긴장 수위는 높아질 것이다. 2015년 말 위안부 합의에서 일본 정부가 위안부의 모집과 관련해 군의 관여(위안부 제도의 강제성), 정부의 책임 통감, 내각 총리로서의 사죄와 반성, 정부 예산에 의한 금전적 조치를 약속한 것은 사실상의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것과 다름없다. 이에 대한 일본 국내의 비판을 피하고자 아베 내각은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점을 누차 강조해왔다. 즉, 합의 사항의 이행을 통해 위안부 문제가 한일 간의 외교 현안에서 해소되었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입장이다.

따라서 한국 측에 의한 위안부 합의의 재검토 시도는 약속에 대한 일방적 번복으로 비칠 것인바, 일본 정부는 수용 불가의 입장을 고수하고 한일관계는 경색 국면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소녀상 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국민 감정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만큼 상호 간에 절제된 대응이 없는 한 경색 국면의 장기화는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대해서도 한국 측에 의한 일방적인 무효화 내지는 재검토는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입장이다. 지난해 11월 양국 대표의 서명과 동시에 발효된 이 협정은 1년간 유효하며, 이후에는 어느 한쪽이 상대방에게 종료 의사를 90일 전에 통보하지 않는 한 자동적으로 1년씩 연장된다고 명기돼 있다. 따라서 이 협정은 최소한 내년 11월까지 유효하며, 한국이 연장을 원하지 않을 경우에는 절차에 따라 통보하면 그 후에는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한일 역대 정권 ‘냉·온탕 사이클’

이 협정의 목적은 한국과 일본 양국의 군사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정보 제공 방법 및 유출 방지 대책 등이 규정돼 있다. 일본 정부는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대북 억지력 강화의 일환으로 추진된 이 협정에 대해 그 실제 효용은 물론 한일 및 한·미·일 간 전략적 연대를 상징하는 사례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북한의 위협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협정 무효화는 이러한 일본 정부의 설명을 무색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한·미·일 공조를 통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억지력을 강화해야 하는 한국의 국익에도 반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2017년은 우리의 대일 외교가 ‘분리대응’의 기조 위에서 한일관계의 악화를 막기 위해 철저한 관리 모드에 전념해야 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현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과거사와 독도 등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한일관계의 실타래를 시원하게 풀어줄 수 있는 리더십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대일정책의 근본적인 재검토는 차기 정부에 맡기고, 그때까지는 기존 정책의 연장선 위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고 관계 악화를 방지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위안부, 독도 문제나 강제동원(징용) 피해자 보상 문제, 역사교과서 기술 문제 등에서 우리의 기본 입장을 견지하면서 외교 마찰을 관리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국제 경제의 불투명성에 대비한 한일 간 통화 스와프 재개 문제, 대북 공조 문제, 지역 협력 문제 등에서 실질 협력을 확대해 우리의 경제 및 안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은 독도의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고 있다.일본은 독도의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고 있다.

탄핵 정국과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일부 정치가들의 돌출 발언이나 퍼포먼스 혹은 언론의 과격한 보도가 분출될 경우, 양국 관계는 대결 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음에 유념해야 한다. 물론 한국 정부는 위안부 합의와 정보보호협정 추진 과정에서 국민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겸허히 반성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관계의 전략적 중요성에 비추어볼 때, 권력 교체기에 대외 관계와 국내 정치의 과도한 연계는 대외정책의 연속성을 훼손하고 한일관계에 불안정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거시적으로 볼 때, 차기 정부의 출범을 앞둔 2017년의 우리 대일 외교의 과제는 안정적인 한일관계 구축을 위한 토대 마련에 있다고 할 것이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역대 정부는 집권 초기에는 한일 우호협력관계의 구축을 약속했지만, 과거사나 독도 문제가 불거지면 예외 없이 대일 강경 노선으로 전환하였다. 과연 차기 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한일 양국이 박근혜정부 시기의 소원했던 한일관계를 극복하고 전통적인 우호협력관계를 복원할 수 있을지, 아니면 역사·영토 문제를 둘러싼 대립과 갈등이 재연될지는 지금으로서는 예단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한일 양국이 역대 정권의 ‘냉탕·온탕 사이클’이라는 전철을 밟지 않고 진정한 의미의 우호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방책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을 기회 요인으로 활용할 필요

‘지정학의 부활’이 회자되고 현실주의 국제정치관이 힘을 얻고 있는 동아시아 국제 정세는 우리 외교가 국익 극대화라는 전략적 관점에서 한일관계를 재검토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50년간의 한일관계가 식민 지배의 가해자와 피해자, 혹은 선진국과 개도국이라는 수직적인 특수 관계의 성격이 강했다면, 새로운 한일관계는 수평적인 보통의 국가관계를 특징으로 할 것이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부상을 배경으로 역내 국제 관계가 빠르게 재편되는 상황에서 한일 양국이 상대방의 전략적 가치를 느끼지 못하면 협력하기 어려운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중 양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질서가 역내 중소국가들에게 불편한 것이 되지 않도록 견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일 양국의 협력이 불가피하다.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라는 지역적이고 다자적인 관점에서 일본을 제약 요인이 아니라 기회 요인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어떠한 접근이 필요한지, 과거사 프레임에 속박되지 않는 한일관계를 어떻게 구축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목전의 선거를 의식해 여론에 편승한 자극적인 공약을 남발하기보다는, 정권 획득 후에 실제로 실현 가능한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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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양 현
국립외교원 교수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일본 도쿄대 정치학 박사. 국민대 일본학연구소 전임연구원, 현 국립외교원 아시아태평양연구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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