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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탈북민과 남한 국민의 이질감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탈북민의 진솔한 생각을 보여주는 TV프로그램 한 장면. 탈북민과 남한 국민의 이질감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탈북민의 진솔한 생각을 보여주는 TV프로그램 한 장면. 탈북민을 성공적 통일의 시금석으로

탈북민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과 차별, 배제가 여전하다. 3만 명의 탈북민도 품지 못하면서 2500만 북한 주민들과의 통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탈북민이 처한 현실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의 통일은 쪽박일 가능성이 크다

비무장지대(DMZ)에서 북측의 심리전방송요원으로 근무하던 필자는 매서운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겨울날 따뜻한 남쪽 나라를 그리며 한국에 왔다. 20대 초반의 혈혈단신의 몸으로 휴전선을 넘어와 10년 넘게 연고도 없는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 기간에 희망의 크기만큼 고난도 많았다. 그럼에도 버티고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고향을 그리는 마음과 통일에 대한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온 해에 대학에 입학한 후 학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고 탈북민에 대한 냉대와 차별적 시선을 이겨가며 국회를 비롯해 여러 대기업에서 일하기도 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한 지 10년 만에 통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는 대학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분단과 북한 문제, 그리고 통일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탈북민 출신으로 한국 사회에 어느 정도 정착했다고 자부하는 편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나를 대하는 명칭만큼은 아직도 낯설고 이질적일 때가 많다. 6·25전쟁 전후 월남하신 분들은 실향민 혹은 월남자로 명칭이 통일되어 있다. 하지만 정전협정 이후 탈북한 사람들은 수십 가지 호칭으로 불린다. 귀순자, 월남귀순용사로 불리던 시기도 있었고 탈북 난민, 탈북 동포, 탈북자로 호명했던 때도 있었다. 북향민, 이주민, 정착민이라는 호칭도 만들어졌다. 정부가 2005년 새터민이라는 용어를 만들었으나 정작 탈북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탈북 어린이들이 주먹밥을 이용해 한반도 모형을 만들고 있다.탈북 어린이들이 주먹밥을 이용해 한반도 모형을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 ‘탈북민’이라는 용어를 스스로 정해 부르고 있으며, 한국 사회와 정부도 이 명칭을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법적, 행정적 표현은 북한이탈주민이다. 탈북민에 대한 명칭조차 오랫동안 통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탈북민 정착제도의 난맥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2017년 현재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은 3만 명을 넘어섰다. 시기별 입국 유형도 다양하다. 체제 경쟁이 치열했던 1990년 이전까지는 모두 ‘정치적 귀순’으로 칭했던 데 반해, 북한이 ‘고난의 행군’으로 명명했던 시기에 탈북한 이들은 대체로 경제형, 생계형 탈북민으로 분류됐다. 그 후 먼저 온 탈북민이 가족이나 친지 혹은 친구들을 입국시키는 ‘연계형 탈북’으로 형태가 바뀌었고, 지금은 경제적 이유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이민·유학·목적형 등 복합적 형태의 탈북 양상을 보이고 있다.

5명 중 1명,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럼에도 휴전선을 통해 25분 만에 한국에 온 필자나 중국과 제3국에서 10년 넘게 떠돌거나, 수년간의 쫓기고 잡히는 공포와 아픔을 경험하며 입국한 탈북민의 공통점은 바로 죽음의 역경을 딛고 한국에 왔다는 점이다. 하지만 사선(死線)을 넘어온 탈북민을 기다리는 것은 또 다른 사선(死線)의 환경이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탈북민은 여전히 빈곤하고 적응하기 어려운 존재로, 사회적 약자로 인식된다.

통일부와 남북하나재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탈북민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에 비해 더 많지만 월 평균소득은 76만 원 정도 더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탈북민의 평균소득은 146만 원으로 한국 출신 근로자 평균소득의 절반도 안 되며, 실업률도 전체 국민 실업률보다 3, 4배 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탈북민들이 한국에 오면 가장 먼저 생활하는 하나원 내부.탈북민들이 한국에 오면 가장 먼저 생활하는 하나원 내부.

이뿐만 아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진행한 탈북민 대상 조사에 따르면 탈북민의 범죄 피해율은 24.3%에 달한다. 한국에서 태어난 국민의 범죄 피해율 4.3%의 5배가 넘는 수치다. 사기피해율도 탈북민 5명 중 1명꼴로 사기를 당했는데, 이 또한 한국인 피해율의 43배에 달한다. 지난해 우리 국민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7.3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였으나, 탈북민의 자살률은 한국인보다 3배가 넘는 16% 이상으로 나타났다. 2015년 한 해에만 9명의 탈북민이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더 안타까운 건 자살로 목숨을 끊은 5명 중 3명이 20대 청년이란 사실이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의 삶이 어떤 젊은이들에게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고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죽하면 탈북민 5명 중 1명이 평소에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겠는가. 북한인권정보센터(NKDB)가 지난해 3월에 진행한 탈북민 설문조사에서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있느냐’는 물음에 ‘있다’는 비율이 20.8%에 달했다. 실제 한국 사회에서의 차별과 정착의 고통 때문에 목숨 걸고 온 이 땅을 떠나 제3국으로 가는 탈남 사례와 북한으로 재입북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탈북민들이 한국에 오면 가장 먼저 생활하는 하나원 내부.탈북민들이 한국에 오면 가장 먼저 생활하는 하나원 내부.

무엇이 문제일까. 전문가들은 탈북민의 한국 사회 적응과 관련해 탈북민 스스로의 의지, 탈북민 관련 정부 정책, 탈북민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라는 3박자가 고루 갖춰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한국 사회에 적응하려는 탈북민의 의지는 과거에 비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정부 정책도 지원형 정책에서 자립형 정책으로 구체적이고도 효율적인 반영을 모색해왔다. 하나원(탈북민 정착 지원시설) 교육의 다양한 프로그램이라든지, 하나센터(탈북민 지역 적응센터) 운영, 하나재단(탈북민 지원재단)을 통한 생활 안정 지원 등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최근에는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사회통합형 정책’도 발표했다. 그러나 탈북민과 함께 통합과 통일을 준비하겠다는 구체성이 보이지 않는 아쉬움도 있었다.

탈북민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가장 문제로 꼽고 있는 것은 경제적 빈곤이나 정착에 관한 정책보다는 탈북민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편견, 차별, 배제가 압도적이다. 탈북민에 대한 한국 사회의 편견과 차별, 배제는 크게 세 가지의 특징이 있다. 첫 번째, 오랜 분단시대가 만든 적대와 대립의 ‘아비투스(Habitus)’, 즉 관습의 차원이다. 반공·반북의 의식은 분단의 피해자인 탈북민에까지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연평도 폭격이 있던 날, 어느 면접장에서 “당신네 북한은 왜 저러냐?”며 내게 건넨 면접관의 질문에서 탈북민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배타적인 타자성을 확인했다.

탈북민에 대한 한국 사회의 편견과 차별, 배제

두 번째는 체제 경쟁 후에 나타난 우월적 인식에 기인한 태도의 변화이다. 못나고 가난한 아우를 바라보는 묘한 승리자적 감정이다. 탈북민이 미디어에서부터 일상적인 자리에서까지도 끊임없이 자신이 살아온 삶을 부정해야만 생존과 생계의 기회를 얻는 이질적이고도 불편한 구조도 풀어야 할 숙제이다.

세 번째는 무한경쟁사회가 만든 소외와 배제이다. 탈북해 소외된 채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사회와 색안경을 끼고 이들을 배제하려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다.

탈북민에 대한 한국 사회의 편견과 차별, 그리고 배제에 대해 필자가 수년 전부터 우려를 표해왔지만 크게 신경 쓰는 이가 없었다. 의도적인 외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정부, 언론, 전문가들이 빼놓지 않는 단골 메뉴가 됐다. 일찌감치 관심을 가졌더라면 오늘처럼 공익광고나 대국민 캠페인을 통해 탈북민에 대한 작금의 사정에 대하여 호소하는 상황까지 오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탈북민들이 한국에 오면 가장 먼저 생활하는 하나원 내부.탈북민들이 한국에 오면 가장 먼저 생활하는 하나원 내부.

무엇보다도 걱정되는 것은 한국 사회에 실재하는 탈북민에 대한 편견과 차별, 배제가 북한 주민들에게 전해질까 하는 우려이다. 오래전부터 북한 주민들은 한국이 자본주의 경쟁사회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보다는 나을 거라는 희망과 한국 주민들은 한 동포라는 믿음을 갖고 탈북한다. 하지만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탈북민에 대한 편견과 차별, 배제가 한국 사회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북한 주민들이 안다면 우호적인 친남한(親南韓) 감정은 고사하고 통일마저 거부할 수 있음을 지금이라도 아프게 생각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의 통합은 차치하더라도 통일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3만 명의 탈북민도 품지 못하는 한국 사회가 2500만 북한 주민들과의 통일을 감당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나아가서 통일이 되면 8000만의 공동체가 될 텐데 함께 상생할 수 있느냐 하는 근본적인 물음에도 답을 내놓아야 한다.

탈북민은 통일 공동체의 리트머스 시험지

한국 사회에서 탈북민이 처한 현실에서 우리가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설사 통일을 이루더라도 그 통일은 쪽박일 가능성이 크다. 탈북민을 두고 ‘먼저 온 통일’로, ‘통일 공동체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탈북민들이 소외이웃을 위해 김장 담그기를 하는 등 남한 사회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탈북민들이 소외이웃을 위해 김장 담그기를 하는 등 남한 사회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덧붙인다면 정부가 먼저 탈북민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 지금까지 탈북민은 늘 가르치고 도움 주는 존재로만 인식돼왔고 그 때문에 그들은 수동적인 타자로, 수혜자로만 판단되어온 측면이 컸다. 사회적 차별과 배제로 고통스러워하는 그들이 한국 사회의 떳떳한 일원으로, 통일의 주역으로 인정받고 살 수 있는 것은 동등한 환경에서 함께할 수 있는 위치를 정부가 먼저 만드는 것이다. 일례로 한국에 와서 죽기 살기로 공부해 석·박사 학위를 받은 탈북민이 200명 가까이 되지만 지금껏 이들과 함께하려는 노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통일을 준비한다면서도 그 통일에 기여하겠다는 탈북민을 배척하고 배제하는 자화상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새로운 사회통합형 탈북민 정책이나 실질적인 통일 준비 주문 또한 공허한 메아리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분명한 것은 정부든 사회단체든 이러한 문제를 절박하고도 엄중하게 직시할 때가 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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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승 현
전주기전대 군사학과 교수
비무장지대에서 북한군 심리전방송요원으로 복무하다 휴전선을 넘어 탈북.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석·박사. 현 민주평통 자문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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