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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트럼프/김정은 앞이 안 보이는 남북관계 & 북·미관계 고도의 군사적 긴장 조성이냐
파격적인 협상 타결이냐

북한의 무모한 핵·미사일 개발이 점점 심각해지는 가운데 ‘미국 유일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앞이 안 보이는 남북관계, 북·미관계의 해법은 무엇일까.

한국은 강대국들로 둘러싸인 채 국토와 민족이 분단된 지정학(地政學)적 조건, 부존자원이 빈약해 세계를 무대로 삶을 영위해야 하는 지경학(地經學)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나라 밖으로 노출된 국가 이익이 매우 크고 그만큼 외교의 중요성도 크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정학과 지경학에서 어쩌면 건국 이래 가장 큰 변화가, 그것도 대체로 부정적인 방향에서 일어나고 있어 우리 외교에 큰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첫째는 중국의 부상을 단초로 한 ‘지정학의 귀환(Return of Geopolitics)’, 혹은 강대국 정치의 부활이다. 곧 강대국들의 전략적 경쟁에 따라 국제법과 규범보다 힘, 특히 군사력을 앞세우고 약소국의 이익을 무시하는 권력정치의 패턴이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주권적 영토인 크림반도를 반(半)무력적으로 병합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국제해양법협약의 당사국인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영토주권을 과도하게 주장하고 필리핀의 제소에 따른 국제중재재판소의 판결을 무시한 것도 또 다른 예다. 중국이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인 ‘한국 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굳이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 차원에서 해석하고, 그 반대·철회를 위해 한국에 온갖 압력을 가하는 것이 우리에겐 가장 두드러진 예다.

둘째는 냉전 종식 이후 절정에 달해 강대국 정치에 재갈을 물렸던 자유주의 세계 질서의 위기다. 자유민주주의 정치 질서, 개방적 시장경제 질서, 국제기구와 제도를 통한 국제 협력과 통합이라는 전후 세계 질서가 그 질서의 결과로서 나타난 세계화의 부작용에 따라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건국 이래 가장 큰 변화

각국에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이 등장하면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 그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이, 심지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배타적 민족주의에 호소하면서 개방적 국제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자유주의의 원조인 영국에서 국민들이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함으로써 국제 통합의 흐름에 결정적인 제동을 걸었다. 20세기 자유주의 세계 질서를 구축한 바로 그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신임 대통령이 대선 공약과 취임 초기 행보를 통해 자유무역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셋째, 그 같은 배경 속에서 북한의 도전이 강화되고 있다. 젊은 지도자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의 정세가 불확실한 데다 김정은의 행태가 도발적이어서 한반도에는 군사적 긴장이 자주 조장되고 있다. 특히 2016년에 들어와 북한은 두 차례의 핵실험을 단행하고 장거리 미사일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300mm 장사정포 등 온갖 발사체를 시험발사 내지 위협발사했다. 2017년에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호언장담하더니 2월 12일 ICBM의 능력을 암시하는 신형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북극성 2형’을 발사했다. 김정은 정권은 조만간 미국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갖출 것이라는 신호를 새로 취임한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에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등장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의 추세가 지속된다면, 트럼프 행정부의 성향과 맞물려 한반도에 폭발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공약과 취임연설에서 ‘America First’를 거듭 선언했다. 그것을 대부분 ‘미국 우선주의’로 번역하지만 달리 보면 ‘미국 제일(第一)주의’다. 그런데 트럼프가 호소하고 있는 미국의 정치적 맥락과 외교적 전통을 짚어보면 차라리 ‘미국 유일(唯一)주의’라는 의역이 맞을 것 같다.

북한의 핵공격 능력이 커질수록 ‘선제타격’ 또는 ‘예방공격’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사진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 모습. 북한의 핵공격 능력이 커질수록 ‘선제타격’ 또는 ‘예방공격’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사진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 모습.

미국의 역사와 북미 대륙의 지정학적 조건에 따라 형성된 미국 예외주의와 고립주의의 전통에 뿌리를 둔 그의 정서에 따르면 외국은, 동맹국이든 적대국이든, 일단 남이다. 동맹국인 일본과 한국이 싸우더라도 그들의 일이니 “잘해보라”라고 했다. 과거에 적대국이었더라도 언제든지, 한시적이지만, 친구가 될 수 있다. 러시아에 대한 태도가 그렇다. 그 같은 기본 입장이 적용될 경우 향후 북·미관계는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다.

한 가지는 북한의 도전을 남의 일로 취급하고 무시하는 것이다. 1990년대 초 클린턴 행정부는 북핵 문제를 핵 비확산 레짐의 안정성에만 무게를 두고 세계 패권국가인 미국의 입장에서만 접근해 동맹국인 한국을 서운하게 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북핵 문제를 대체로 지역안보 문제로 간주하고 6자회담을 통해 그 제1차적 책임을 중국에 넘기려고 했다.

이란, 쿠바, 미얀마 등 구 적성국가들에 관여정책을 펼친 오바마 행정부도 북핵 문제를 하나의 고립된 문제로 관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세계적 차원에서 핵 확산의 흐름을 차단하면 북핵 문제는, 나아가 북한은 자연히 고사(枯死)할 것으로 보고 ‘전략적 인내’를 내세웠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그들의 문제’로 보고 그들, 특히 중국에 짐을 떠넘길 가능성이 있다.

미국 유일(唯一)주의

다른 한 가지는 북핵 문제가 미국의 문제가 되는 경우이다. 곧 북한이 미국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핵 및 미사일 능력을 갖추어 미국의 안보에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위협이 되는 경우다. 이에 대해서는 원론적으로 두 가지 대응이 가능하다. 첫째는 위협이 되는 북한의 ‘능력’을 제거하는 것이고, 둘째는 미국을 위협하고자 하는 북한의 ‘의도’를 바꾸는 것이다.

일단은 비핵화가 우선이고, 미국은 그것을 위한 협상에 임할 것이다. 그러나 제1, 2차 북핵 위기 과정에서 봤듯이 그 협상은 매우 험난할 것이다. 거래의 조건이 워낙 다르니 출발조차 쉽지 않고, 문제의 군사적 성격 때문에 협상 과정에서 무력 사용의 위협도 배제되지 않는다. 따라서 협상은 곧 위기이고, 위기가 확산되면 군사력이 위협을 넘어 실제 사용될 수도 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핵·미사일 개발로 한반도 안보 불안을 고조시키고 있다.북한 김정은 정권은 핵·미사일 개발로 한반도 안보 불안을 고조시키고 있다.

군사력의 사용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는 위기 국면에서 전쟁이 불가피한 것으로 간주될 경우 상대의 공격 능력을 불식시켜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하는 ‘선제타격(Preemptive Strike)’이다. 이는 한미 양국이 채택하고 있는 ‘킬 체인’ 전술과 같은 것이다. 여기서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은 주관적인 것이다. 그 판단은 북한의 군사적 능력이 증진될수록, 그에 비례해 북한의 공격으로 나타날 피해가 커질수록 느슨해질 수 있고, 따라서 위기 국면이 전쟁으로 확전될 개연성도 높아진다. 다른 하나는 협상을 통한 비핵화가 불가능하거나 지연되는 가운데 북한의 능력이 계속 증진되면 그 위협이 더 커지기 전에 제거하는 ‘예방공격(Preventive Attack)’이다. 이라크의 오시라크 원자로를 폭격한 이스라엘의 행동이 대표적인 예다.

선제타격이든 예방공격이든 그 개연성은 북한의 능력이 커질수록 높아지게 마련이다. 그 위에 트럼프 행정부의 성향이 있다. 미국 제일 또는 미국 유일주의는 곧 미국이 무력 사용을 결정할 때 한국을 포함한 역내 국가에 대한 배려가 낮다는 뜻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입장이 있다. 이단아인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를 비롯한 제도권 정치의 저항과 낮은 지지율이라는 이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지율을 높이는 데는 국제적인 위기나 전쟁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런데 만일 기술적 또는 군사적 이유로 북한의 군사시설에 대한 선제타격 내지 예방공격이 여의치 않으면 미국은 북한의 능력을 제거하는 대신 적대적인 의도를 바꾸려는 시도를 할 수도 있다. 즉 북·미 평화협정을 통한 파격적인 관계 개선이다. 한국의 입장에는 아랑곳없이 비핵화가 아닌 핵 동결이 목표가 될 수도 있다.

위기는 변화의 동력, 변화는 개선의 첫걸음

요컨대 한편으로는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유일주의를 추구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등장함으로써 한반도 정세는 고도의 군사적 긴장이 조성되거나 파격적인 협상이 타결되는, 양 극단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한국의 입장이 주변화될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두 가지 점에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첫째는 한반도에 고도의 군사적 긴장이 조성될 경우 그것을 정체된 한반도 정세를 적극적으로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활용하는 전략적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둘째는 강대국 정치 속에서 우리의 입장이 주변화되지 않도록 그 외교적 위상을 제고하는 전략적 처신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우리의 태도다.
첫째, 고래들 속의 새우 신세라는 역사적 경험에 매몰된 패배주의적 사고를 불식해야 한다. 둘째, 군사적 위기에 너무 경동하지 말고 북·미관계 개선에도 너무 소극적이지 않은 당당한 입장이 필요하다. ‘위기는 변화의 동력이고, 변화는 개선의 첫걸음’이라는 태도를 견지해 위기를 헤쳐나감으로써 위험 속에서 기회를 찾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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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태 현
중앙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정치학 박사.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및 외교안보연구실장, 한국국제정치학회장 역임. 중앙대 국가대전략연구소장, 외교부·통일부 정책자문위원. 역서 <20년의 위기>, <세계화 시대의 국가 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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