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은 드레스덴 선언을 통해 군사적 대결의 장벽, 불신의 장벽, 사회문화적 장벽 등을 극복해나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천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3월 28일 드레스덴 선언을 발표한 지 1년이 지났다. ‘새로운 한반도 건설을 위한 장벽 허물기’를 표방한 드레스덴 선언은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통일 바람을 불러일으켰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해결하고 개선해나가야 할 과제도 많다. 이들 과제를 하나하나 짚어보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월 1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는 견해를 처음 밝혔다. 박 대통령은 한반도의 통일이 우리 경제가 실제로 대도약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한마디로 ‘통일은 대박’이라고 지적했다. 또 “우리 국민 중에 ‘통일 비용이 너무 많이 들지 않겠느냐’, ‘굳이 통일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지적하면서 “통일은 우리 경제가 대도약할 기회”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은 남북 간 군사적 대치, 신뢰 결여로 인한 남북 협력사업의 파행 등 분단 때문에 발생한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는 사실과 함께 통일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갈수록 약해지는 추세를 염두에 두고 통일 대박론을 말했다. 특히 젊은 세대의 통일관은 갈수록 약화되는 추세이며, 통일 비용에 대한 지나친 우려와 더불어 각종 조사마다 들쭉날쭉한 차이점이 드러나 통일 비용에 대한 논란도 여전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박 대통령은 앞으로 “남북 분단으로 인한 사회 분열과 비용을 줄이는 차원에서 한반도 통일시대를 열기 위한 기반 구축을 해나가겠다”고 언급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은 지난해 3월 28일 드레스덴 구상에서 더욱 진화된 정책으로 제시됐다. 드레스덴 연설에서 박 대통령은 통일 구상 방향을 ‘새로운 한반도 건설을 위한 장벽 허물기’로 규정하고 군사적 대결의 장벽, 불신의 장벽, 사회문화적 장벽, 단절과 고립의 장벽을 극복해나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천명했다.
구체적으로는 남북 협력을 위한 3개 의제를 발표했다. 첫째는 남북한 인도적 문제 해결(Agenda for Humanity)로서,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북한 주민을 위한 인도적 차원의 지원 확대를 거론했다. 둘째는 남북한 민생 인프라 공동 구축(Agenda for Co-prosperity)으로, 북한 내 농업·축산·산림 복합농촌단지 조성, 한국의 북한 내 인프라 건설 지원 및 북한 자원 개발, 남·북·러 및 남·북·중 협력사업을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공동 발전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셋째는 남북 주민 간 동질성 회복(Agenda for Integration)으로, 순수 민간 접촉 확대를 위해 역사, 문화, 예술, 스포츠 등의 교류를 장려하는 한편 국제 협력을 통해 북한에 경제 관련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남북교류협력사무소 설치 제안, 남북 간 대결적 패러다임 전환의 상징으로서 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조성, 유라시아 통합 패러다임으로의 전환, 북한 핵포기 및 비핵화 시 대북 국제사회 편입 지원도 패키지로 포함돼 있다. 구체적으로는 북한의 국제 금융기구 가입 및 투자 유치를 적극 지원하고, 동북아개발은행 설립 및 다자안보 협의체 구성을 통해 북한의 경제·안보 필요를 충족시키겠다는 구상이다.
드레스덴 구상 전면 거부한 북한
<사진> 우리 정부가 남북 당국 간 대화를 재개하려면 금강산 관광, 이산가족 문제 등에 ‘실질적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북한의 호응 여부인데, 예상대로 북한은 드레스덴 구상을 전면 거부했다. 북한 국방위원회는 대변인 담화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통일 구상을 ‘흡수통일’ 논리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국방위 대변인 담화는 우선 박 대통령이 독일 드레스덴에서 통일 구상을 밝힌 것을 두고 “도이췰란드(독일)는 ‘흡수통일’로 이루어진 나라”라며 “바로 그곳에서 박근혜가 자기가 구상하고 있다는 ‘통일’에 대해 입을 놀렸다는 것만으로도 불순한 속내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드레스덴 선언’은 나라와 민족의 이익은 덮어두고 몇 푼 값도 안 되는 자기의 몸값을 올려보려고 줴친(떠든) 반통일 넋두리”라고 강변했다. 북한의 이러한 반응은 김정은 정권의 불안감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식량 증산을 위한 복합농촌단지 건설, 교통·통신 등 인프라 투자 등을 위해서는 북한이 한국이나 국제사회와 교류하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그로 인한 ‘황색바람’이 자기 체제를 위협할 개연성을 우려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 대박론이 등장한 지 1년이 되는 2015년 연두 업무보고에서 통일부는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정부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통한 남북관계의 정상적 발전을 의연하고 일관되게 추진해왔다고 평가했다. 통일부는 그간 우리 정부가 남북 간 대화를 통해 현안을 해결해나가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음을 평가하고, 남북대화를 통한 신뢰 형성 노력을 지속해 실천 가능한 문제부터 하나씩 해결을 추진해왔다고 밝혔다.
그간 남북관계는 우여곡절과 부침을 겪으면서도 △4년 만에 이산가족 상봉 개최(2014년 2월), △개성공단 발전적 정상화에 합의(2013년 7~8월), △2차 고위급접촉 제의(2014년 8월), 통준위 명의 회담 제의(2014년 12월) 등 일정한 수준의 접촉을 지속해왔다. 그러면서도 북한의 도발과 위협, 부당한 요구에 대해서는 원칙을 지키며 단호하게 대응한 것으로 평가했다.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는 우리 측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민간단체 대북 전단 살포 중단 등의 일방적 요구를 계속하고 있다.
드레스덴 구상은 제대로 이행만 된다면 남북 간 신뢰를 형성하고 통일의 초석을 쌓을 수 있는 발전적 구상으로 평가된다. 우리 정부는 실천 가능한 사업을 통해 상호 신뢰를 쌓아 통일의 기반을 구축해나가는 단계적인 접근법, 즉 ‘작은 통일’에서 ‘큰 통일’로 나간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취약계층에 대한 인도적 지원 및 순수 사회문화 교류를 지속하는 한편,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민생 협력 방안도 제시했다.
우리는 작은 통일에서 큰 통일로 나아가고, 인도주의 문제부터 풀자는 입장인 반면, 북한은 ‘통일은 인도주의다’, 즉 정치·군사 문제를 해결하면 인도적 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는 시각을 드러내 큰 통일에서 작은 통일로 간다는 상반된 입장을 취하고 있어 서로 접점을 찾기 어렵다.
드레스덴 구상이 나온 지 1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그동안 왜 이 구상이 진전되지 못했는지 냉정히 되돌아보고 발전적 재검토를 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통일 대박론 2.0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드레스덴 구상을 되돌아보면, 우선 정부 측 논의는 대체로 우리의 희망적 시각을 크게 반영한 반면, 북한의 호응을 초래할 방안에 대해서는 별다른 고민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대부분의 대북정책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호응이 없이는 정책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 단계 남북관계의 구조적 상황이다.
또한 기존 남북관계의 약속은 어떻게 할지에 대한 방향 제시를 결여하고 있어, 과거의 약속도 이행되지 않는데 새로운 제안이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 제기될 소지가 있다. 대표적으로 5·24 조치는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의 개연성을 지적할 수 있는데, 5·24 조치가 어떤 식으로든 해결되지 않으면 남북관계의 진전은 물론,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추진이 사실상 한계에 봉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과도 분명히 있다. 무엇보다도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에서 출발해 드레스덴 구상으로 이어진 지난 1년간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정립해 통일 대박론 2.0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현재까지의 통일 논의를 비용 대 편익 차원으로 환원하는 것을 지양하고 새로운 국가 건설(new nation building), 한국 경제의 대도약, 국운의 대도약으로 규정함으로써 통일 논의를 새로운 차원으로 격상할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의 애초 대박론 언급은 소박한 의식에서 출발했으나 결과적으로 거대한 통일담론으로 확대됐다. 따라서 이를 기존의 통일담론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 통일은 비용 대 편익 논의를 넘어서 주변국에도 엄청난 ‘안보 편익’을 가져다준다는 점을 부각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통일로 북핵 문제의 근원적 해결이 일거에 가능해지고, 통일한국의 동북아 균형자 구실도 가능해질 것이다.
남북관계 타개를 위한 전략적 반전
<사진> 지난해 6월 열린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5차 회의. 5·24 조치가 해결되지 않으면 남북관계 진전은 한계에 봉착할 수 있다.
현재의 남북관계는 미국과 한국 모두 ‘전략적 인내’ 정책이 한계에 봉착한 상황으로서 새로운 돌파구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도 북핵 문제 해결의 지연은 박근혜정부 외교안보 핵심 어젠다 중 하나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교착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진척에도 장애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 논의의 재점화를 위해서는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며, 그 출발은 남북 당국 간 대화다. 남북 당국 간 대화를 재개하려면 5·24 조치와 금강산 관광, 이산가족 문제 등에 대해 정책적 원칙은 견지하더라도 ‘실질적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정권 승계 이후 지난 3년간 북한은 수령제 사회주의를 확립하고 파워 엘리트층의 지지를 확보함으로써 일단 권력의 안정성 확보에는 성공한 것으로 보이며, 장성택으로 대표되는 미래의 잠재적 도전도 성공적으로 제거했다. 사상적으로는 김정일 애국주의, 생눈길 정신,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 등의 성과를 거뒀고, 2000년대 초에 비해 식량 사정도 어느 정도 나아졌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식량 사정은 지속적으로 개선돼 2000년대 초 108만 톤의 알곡이 부족하던 상태에서 지난해에는 34만 톤이 부족한 상황으로까지 개선됐다. 하지만 여전히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제적 파탄, 핵문제 미해결로 인한 전쟁과 평화의 압박, 대내 경제개혁 성과를 내야 하는 부담감, 대남·대미관계의 악화 등 김정은 체제가 헤쳐나가야 할 난제는 산적해 있다.
이러한 저간의 변화를 감안한다면 우리 정부가 할 일은 무엇인가. 첫째, 남북대화를 위해 북한 핵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지만, 주어진 여건 내에서 최대한 전술적 융통성을 발휘해야 할 상황이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을 미끼로 5·24 조치 해제나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우회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단, 북한에 대한 지원 문제는 적어도 북핵 문제 논의를 위한 장이 열려 실질적인 비핵화 논의가 시작되는 것과 병행해서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다자적 관여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 현재처럼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는 북한만을 바라보는 접근으로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러시아는 5월의 제2차 세계대전 전승절 기념행사를 기해 다자 초청외교를 전개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자초한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판단된다. 박 대통령의 참석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이런 기회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 밖에도 통일부는 외교부와 협업하여 북한 비핵화와 인권 문제의 실질적 진전을 위해, 북한 비핵화 진전과 남북관계 발전의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키고 북한 인권의 실질적 개선을 위한 노력을 강화해나갈 계획이다. 이러한 목표는 기본적으로 국내-남북-국제사회 차원의 다양한 협력 방안이 유기적으로 연계된다면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통일부의 리더십이 교체되면서 우리의 대북정책에 창조적 진화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동대학원 석사. 한국국방연구원, 미래전략연구원 등에서 연구위원을 지냈고, 외교통상부 정책기획관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