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 전망과 대책
트럼프의 ‘입’을 보지 말고,
미국과 공화당의 구조를 보라
포퓰리스트 트럼프의 시대가 열렸다. 그가 쏟아낸 말 때문에 불안해하는데, 미국은 이미 구축해놓은 시스템이 있다. 트럼프도 그 안에서 정책을 펼쳐나가야 한다. 그러나 트럼프 시대 미국이 변하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 11월 8일 각종 여론조사 결과와 주요 언론들의 전망이 무색하게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물리치고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새 대통령이 당선되면 그 정책 방향에 대한 궁금증이 제기되기 마련이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전망하기는 쉽지 않다. 그는 공직 경험이 없는 ‘아웃사이더’인 데다 공약이 파격적이고 공화당과도 거리를 둔 ‘이단아’이기 때문이다.
파격적이고 그래서 불확실한 것이 그의 대외정책 방향이다. 자신의 조부도 독일에서 미국으로 온 이주민인 그는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겠다며 미국의 뿌리인 이민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취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Trans-Pacific Partnership),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 주요 무역협정을 비판하며, 미국의 핵심 가치인 자유주의적 시장경제 원칙의 국제적 투영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 자유무역 질서에 도전했다.
독일, 일본, 한국 등이 미국에 안보적으로 ‘무임승차’한다고 비판하고 더 많은 방위비 분담금을 요구하겠다고 했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의 위상을 지탱해준 동맹체제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것이다.
트럼프 후보의 공약이 우리의 국가이익에 직간접적으로 미칠 영향을 놓고 우려가 높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과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 등은 직접적으로, 중국에 대한 무역 제재 등은 간접적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파격적인 정책 공약은 실천에 옮겨질 것인가? 그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그의 개인적 성향, 그가 읽고 호소한 표심, 공약이 정책으로 전환돼 추진되는 과정에서 작용할 안팎의 제약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첫째, 트럼프 당선자의 공약이 파격적이고 평소 그의 행실이 부도덕하더라도, 그가 성공한 사업가이며, 당내 경선과 전국 선거에서 이겨 대통령이 됐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는 뛰어난 지능과 카리스마를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업가로서의 배경과 그의 행태를 감안하면, 좋게 말해서 그는 실용주의자(Pragmatist)이며 나쁘게 말해서 포퓰리스트(Populist)이다.
트럼프, 그는 포퓰리스트인가
둘째, 포퓰리스트로서 그가 읽고 호소한 미국의 표심은 ‘분노’다. 그가 대중 득표수에서 지고 선거인단 득표수에서 이긴 이유는 전통적인 공업지대로 노동조합이 강해 진보적인 민주당을 지지했던 오대호 주변의 3개 주, 즉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주의 표심이 돌아선 탓이다. 세계화와 자유무역이라는 거대한 조류에 밀려 일하던 공장이 문을 닫거나 해외로 이전하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은 그 지역의 노동자들이 분노해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한 트럼프 후보를 지지하고 투표했다.
그 같은 표심은 일시적이거나 국지적인 현상이 아니다. 세계적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지난 6월 영국은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EU)을 탈퇴하기로 결정했는데 그 같은 움직임은 유럽 각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독일과 더불어 EU의 양대 축을 이루고 있는 프랑스에서 특히 강해, 자칫 EU의 존속이 문제시될지도 모른다.
한때 시대정신을 이루었던 개방적 국제주의가 쇠퇴하고 폐쇄적 민족주의가 득세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파격적 공약(公約)을 포퓰리스트적 공약(空約)으로 단정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셋째, 지명되거나 거론되고 있는 입각 후보자를 보면 강경한 공약들이 실천에 옮겨질 가능성도 높게 점쳐진다.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는 제프 세션스 상원의원이 법무장관에, 이슬람 극단주의가 존망적 위협이라고 한 전 국방부 정보국장 마이클 플린 예비역 중장이 국가안보보좌관에, 고문 수사를 금지한 오바마 대통령을 맹비난한 마이크 폼페오 하원의원이 중앙정보국(CIA) 국장에 지명됐다. 또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부 차관을 맡았던 대표적 강경론자 존 볼튼이 국무장관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제약도 만만치 않다. 우선 그는 선거에서 다수 득표를 하지 못했다. 선거라는 비상한 상황에서 분노의 감정을 통해 동원한 지지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그가 일반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사사건건 의회의 제약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정당의 기율이 약한 미국에서는 국민의 지지율이 대통령이 의회를 통제할 수 있는 밑천이기 때문이다. 공화당이 2008년 선거에서 내주었던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되찾았지만 큰 도움이 안 될 수 있다.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자유무역을 지지해왔다. 현재 지명되거나 거론되고 있는 각료들도 공화당 주류가 아니라고 평가되고 있는 만큼 공화당 주류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공화당의 정체성을 지나치게 훼손하는 것을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는 공화당과 갈등할 것인가
무엇보다 지정학적 요소가 있다. 법인세 인하를 통해 미국 내 기업의 해외 이전을 막고 인프라 건설 투자를 통해 국내 경기를 활성화하는 한편 동맹국들에게 방위비 분담금을 늘리겠다는 그의 공약은 국가전략의 입장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현실주의 이론가들이 지속적으로 주장했던 ‘역외균형(Off-shore Balancing) 전략’과 같은 맥락인 것이다.
미국은 각 지역이 독자적인 세력균형 정치를 통해 굴러가도록 방관하고 그 균형이 결정적으로 붕괴하지 않으면 개입을 자제한다. 그렇게 하면 안으로는 힘을 축적하고 밖으로는 경쟁국이 힘을 소모해 궁극적으로 미국에 이익이 된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미국이 세계적 강대국으로 부상한 것은 그 같은 국가전략의 결실이다.
역외균형 전략에 따르면 미국은 냉전 직후 유럽에서 철수해, 유럽 국가들이 약화된 구소련을 견제하도록 했어야 했다. 아시아에서도 철수하고, 중국과 일본이 서로 견제하도록 했어야 했다. 중동에도 개입을 자제하고 이란, 이라크, 이스라엘 등이 서로 견제하도록 했어야 했다. 트럼프 당선자가 독일, 일본, 한국,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거론하며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고 안 되면 철수하겠다고 한 소리는 바로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전략적 조치는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영국의 EU 탈퇴 결정으로 분열된 유럽이 푸틴 치하에서 전열을 정비한 러시아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를 결정적으로 약화시킨 것은 중동의 세력균형을 위해서는 실책이었다.
무엇보다 중국의 부상이 문제이다.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기에는 중국이 너무 커져버렸다.
트럼프, 그는 제2의 카터가 될 것인가
그런 구조 속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공약을 이행하는 데 많은 제약을 느낄 것이다. TPP는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과 같은 나라로 하여금 세계 경제규칙을 쓰게 할 수 없다”며 전략적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다. TPP가 좌초하고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이 성공하면 국제 무역질서 속에서 중국 주도권은 크게 올라갈 것이다.
트럼프 당선자가 공약한 대로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중국 수출품에 45%의 관세를 부과한다면 중국은 무역 다변화를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그럴수록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은 오히려 커질 것이다.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고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한다면 한국의 여론이 중국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구조뿐만 아니라 상황적 변수도 있다.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공약은 냉전이라는 구조에 밀려 관철되지 못했다. 조지 H. W. 부시 대통령(아버지 부시)의 계획도 북핵 문제라는 변수에 밀렸다. 가장 큰 상황적 변수 중 하나가 북한이다. 트럼프 후보는 유세 중 북한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미국에 현실적 위협이 될 정도가 되면, 그리고 그 행태가 여전히 도발적이라면 북핵 문제가 위기로 부각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지지율이 부진한 대통령에게 가장 좋은 것은 국제 위기다.
우리는 미국의 일거수일투족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큰 구조를 읽고 그 속에서 국가전략을 수립해 일관성 있게 추진해나가야 한다.
김태현 중앙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정치학 박사.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및 외교안보연구실장, 한국국제정치학회장 역임. 중앙대 국가대전략연구소장, 외교부·통일부 정책자문위원. 역서 <20년의 위기>, <세계화 시대의 국가 안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