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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시대

vol 122 | 20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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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宗廟)

백설이 만든
神들의 정원

하얀 눈에 덮여서 단순절제미가 극대화된 종묘 정전. 하얀 눈에 덮여서 단순절제미가 극대화된 종묘 정전.

유네스코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발굴·보호·보존하기 위해 1972년에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협약’을 채택했다. 우리나라는 1995년 석굴암·불국사, 종묘, 해인사 장경판전 등재를 시작으로 모두 12점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유산을 차례대로 소개한다. <편집자>


| 양영훈 여행작가 |

종묘는 신전(神殿)이다.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조선왕조의 정신적 모태나 다름없는 셈이다. 신전답게 외양은 장중하고 분위기는 엄숙하다. 지금도 해마다 전통 방식대로 종묘제례가 봉행된다. 건축적인 아름다움과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두루 갖춘 종묘는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종묘의 정문은 외대문이다. 그 문을 들어서는 순간에 번잡한 바깥세상은 까마득히 잊힌다. 도심의 빌딩 숲은 온데간데없고 아름드리 고목들로 빼곡한 숲이 눈앞에 펼쳐진다. 숲속 한복판에 반듯하게 뻗은 삼도(三道)의 끝에는 정전(正殿, 국보 제227호)과 영녕전(永寧殿, 보물 제821호)이 자리 잡았다. ‘凸(철)’자 모양의 돌길인 삼도는 말 그대로 ‘세 가지의 길’이다. 가운데 길은 높고, 그 양쪽의 길은 낮다. 가운데 길은 신만이 다닐 수 있는 신로(神路)다. 양쪽 길 중에서 동쪽은 임금이 걷는 어로(御路), 서쪽은 세자만 걸어가는 세자로이다.

동쪽 월랑에서 바라본 정전과 월대.동쪽 월랑에서 바라본 정전과 월대.

길은 정문에서 정전까지 곧게 뻗었지만, 관람객들은 곧장 정전으로 향할 수 없다. 자유 관람제가 실시되는 토요일 이외에는 해설사와 함께 정해진 순서대로 관람해야 된다. 전통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해설사는 본격적인 관람을 시작하기에 앞서 종묘의 의미를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종묘와 사직을 중시

왕조시대의 임금은 조상신과 자연신으로부터 정통성을 부여받은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왕들의 조상신에게 제사 지내는 곳인 종묘,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곳인 사직(社稷)은 대단히 중요하고 신성한 공간이었다. 조선시대의 종묘는 왕실과 국가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그래서 종묘에서 거행되는 제례는 그지없이 성대하고 엄숙했다. 가장 좋은 음식이 올려지고, 가장 아름다운 춤과 음악이 공연되었다. 오늘날까지도 옛 모습 그대로 재현되는 종묘제례(국가무형문화재 제56호)와 종묘제례악(국가무형문화재 제1호)은 유네스코의 세계무형유산으로도 등재돼 있다.

해설사가 안내하는 관람 동선을 따라가면 맨 처음 망묘루(望廟樓) 앞에 다다른다. 제향(祭享)할 때에 임금이 이곳에서 사당을 바라보며 선왕을 추모하고, 종묘사직과 백성을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망묘루에는 한 칸짜리 누마루가 설치돼 있다.

망묘루 동쪽에는 고려 31대 임금인 공민왕을 기리는 신당이 있다. 정식 명칭은 ‘고려 공민왕 영정 봉안지당(高麗 恭愍王 影幀 奉安之堂)’이다. 조선 왕들의 영혼이 깃든 종묘에 공민왕 신당이 있다는 사실이 뜬금없어 보이지만, 이미 종묘를 창건할 당시에 건립됐다고 한다. 신당의 내부에는 공민왕과 왕비였던 노국공주가 함께 그려진 영정(影幀), 준마도(駿馬圖)가 봉안돼 있다.

향대청 주변의 설경. 제례 예물을 보관하고 헌관들이 대기하던 곳이다.향대청 주변의 설경. 제례 예물을 보관하고 헌관들이 대기하던 곳이다.

망묘루, 공민왕 신당과 같은 구역 안에는 향대청(香大廳)도 있다. 남북으로 긴 뜰을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에 길쭉한 건물이 마주보며 배치되었다. 향과 축문, 폐백 등의 제례 예물을 보관하고, 제향에 참가하는 헌관들이 대기하던 곳이다.

향대청에서 50~60m쯤 걸으면 정전의 동남쪽에 위치한 재궁(齋宮)에 들어선다. 왕과 세자가 제사를 준비하던 곳이다. 재궁 안에는 왕이 머무는 어재실과 세자가 머물던 세자재실, 그리고 왕이 목욕하던 어목욕청이 갖춰져 있다. 재궁 북쪽의 전사청(典祀廳)은 종묘제례에 쓰이는 제수를 준비하는 곳이다. 전사청 바로 옆에는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고 유달리 차가웠다는 우물인 제정(祭井)이 있다.

동행한 해설사로부터 전사청과 ‘정전 신위 봉안도’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에는 동문을 통해 정전 구역에 들어선다. 정전을 드나드는 문은 세 곳이다. 그중 동문은 종묘제례를 올릴 때에 왕과 세자를 비롯한 제관들이 이용했다. 서문은 악공과 춤을 추는 무희들이 출입하던 문이다. 정문인 남문은 조상신이 들어가는 문이어서 ‘신문’(神門)으로도 불린다.

종묘를 상징하는 건물인 정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목조건물이다. 가로 109m, 세로 69m의 넓은 월대(月臺) 위에 길이 101m의 정전이 올라앉았다. 월대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신로를 중심축으로 건물 전체가 좌우 대칭을 이룬다. 정전의 정문에서 광활한 월대와 길게 누운 정전을 한눈에 바라보노라면 숨 막힐 듯한 긴장감과 엄숙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장식 없는 붉은 기둥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광경은 절제미와 엄정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캐나다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조각가인 프랭크 게리(86)는 20년 전쯤 종묘를 처음 찾았을 때 “이렇게 복잡한 도시에, 이렇게 훌륭한 건물이 있다니”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정전의 정문에서 바라본 광활한 월대와 길게 누운 정전. 숨 막힐 듯한 긴장감과 엄숙함이 느껴진다.정전의 정문에서 바라본 광활한 월대와 길게 누운 정전. 숨 막힐 듯한 긴장감과 엄숙함이 느껴진다.

別廟에 모셔진 황태자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개국한 지 3년째인 1394년 10월에 개경에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그해 12월에 착공된 종묘 건립공사는 이듬해 9월에 마무리됐다. 처음에 7칸으로 지어진 정전은 다시 증축되어 11칸 건물이 되었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했다.

전쟁이 끝나고 임금이 된 광해군은 즉위하자마자 종묘를 복원했다. 영조와 헌종 때에 각각 4칸씩 증축되어 지금과 같은 19칸짜리 건물이 되었다. 여러 차례나 증축됐는데도 마치 단번에 지어진 건물처럼 이음새가 매끄럽고 자연스럽다.

종묘 관람 동선에서의 첫 번째 경유지인 망묘루.종묘 관람 동선에서의 첫 번째 경유지인 망묘루.

사당 건물답게 전체적으로 화려하지 않고 장엄함이 도드라진다. 장식과 색채를 최소화해서 단순·검약·소박한 느낌을 강조한 덕택이다.

정전 앞에는 드넓은 월대가 펼쳐진다. 종묘제례 때에 이 앞마당에서는 팔일무(八佾舞)가 펼쳐지고 종묘제례악이 연주된다. 월대에는 얇고 거친 돌들이 촘촘히 깔려 있다. 신성한 공간에서 경박한 동작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라고 한다. 또한 아무리 큰 비가 내려도 물이 고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월대 전체를 약간 경사지게 만들었다.

현재 종묘 정전의 신실(神室) 19실에는 49위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왕의 신주는 개국조인 태조부터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까지 총 19위가 있다. 태종, 세종, 세조, 선조, 숙종, 영조, 정조 등 재위기간이 길고 공덕이 있는 왕의 신주가 주로 모셔져 있다.

영녕전 앞의 신위 봉안도에 대해 설명하는 해설사.영녕전 앞의 신위 봉안도에 대해 설명하는 해설사.

정전 옆에 자리한 영녕전은 별묘(別廟)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왕과 왕비의 위패가 늘어나 정전에 다 모실 수 없게 되자 이 건물을 새로 지었다. 이곳에는 뚜렷한 업적을 남기지 못했거나 재위기간이 짧았던 왕들의 신주를 모셨다. 문종, 단종, 명종, 예종 등등, 태조 이성계의 4대 조상, 추존왕인 장종(사도세자), 대한제국의 황태자였던 영친왕 등 왕 15위와 왕후 17위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전체적인 구성과 건축 구조는 정전과 상당히 비슷하다. 하지만 품격과 규모는 확연히 떨어지는 편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 종묘를 복구하는 일에 진력한 광해군과 조선 제일의 악덕 군주로 꼽히는 연산군은 폐주(廢主)가 되는 바람에 종묘 어디에도 신주가 봉안되지 못했다.

종묘의 상징인 정전은 사시사철 어느 때 찾아가도 그 위엄과 웅장함이 감소되지 않는다. 하지만 단순, 절제, 장엄으로 함축되는 정전의 아름다움이 가장 극대화되는 때는 한겨울 큰 눈이 내린 뒤다. 폭설에 뒤덮인 정전은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아니 자연의 일부가 된 건축물로 다가온다. 언젠가 불쑥 찾아올 그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여행 정보


관람 안내
종묘는 문화재해설사의 인솔 아래 시간제 관람만 가능하다. 한국어 관람시간은 하루 8회(09:20, 10:20, 11:20, 12:20, 13:20, 14:20, 15:20, 16:20) 진행된다. 단, 매주 토요일과 ‘문화가 있는 날(매달 마지막 수요일)’에는 자유 관람으로 실시된다. 관람시간은 1시간쯤 소요되며, 매주 화요일은 정기 휴관일이다. 관람료는 1000원(어른).

숙식
실속형 비즈니스 호텔인 이비스앰배서더인사동호텔(02-6730-1101)이 외대문에서 도보로 10여 분 거리에 위치한다. 종묘와 창덕궁 주변에는 레몬트리호텔(02-762-5722), 메이커스호텔(02-747-5000), 더안호스텔(1577-0988), 게스트하우스코리아(02-3675-2205) 등 숙박업소가 많다.
종묘와 이웃한 창덕궁 정문 근처에는 최근 <미슐랭가이드>의 원스타 맛집으로 선정된 프렌치 레스토랑 다이닝인스페이스(02-747-8105)가 있다. 종묘의 서쪽 담 옆에 자리한 순라길(02-3672-5513)은 장안 최고의 홍어 전문점으로 소문 난 집이다. 종로3가역 부근의 영춘옥(02-765-4237)은 내력만큼이나 깊은 곰탕, 설렁탕 맛이 일품이다.

찾아가기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1호선) 11번 출구에서 종묘 정문(외대문)까지의 거리는 약 32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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