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억제로 북핵 대응 가능한가
미국은 어떻게 우리의 핵무장을 막고
북한의 핵 위협을 감소시키는가
미국의 확장억제 전략은 대상에 따라 달라진다. 북대서양조약기구와는 기획그룹, 우리와는 협의그룹을 만든 것이 그 증거다.
지난 10월 19일 한국과 미국은 외교·국방장관(2+2)회의를 열어 양국 외교·국방 고위급 인사가 참여하는 ‘확장억제 전략협의체’ 신설 등을 담은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북핵 위협이 더욱 커지는 지금 확장억제만으로 우리 안보를 지켜낼 수 있는지, 보완할 필요는 없는지 등을 살펴본다.
국제사회의 회유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날로 커져가면서 우리의 대응태세에 대한 논의도 뜨거워지고 있다. 이를 요약하자면, 자체 핵무장론,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론,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론 등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이러한 주장의 근저에는 현재의 그 어떤 미사일 방어체계도 완벽하게 북한의 미사일을 방어할 수 없으며, 핵무기를 이용한 공격은 오직 핵무기를 이용한 대량보복 위협으로만 막을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러한 핵 보복의 개념은 핵 공격을 받고 보복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적에게 핵 보복 위협에 대한 신뢰성을 제고함으로써, 적의 핵 공격을 방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핵은 가공할 피해를 남기기에 공격을 받으면 대량보복을 해도 그 상처를 감당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적에게 ‘그대가 핵 공격을 하기 전에 핵 보복을 당할 것이다’라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신뢰성 있는 핵 보복 능력으로 가장 확실하고 급진적인 주장은 핵무장론이다. 우리가 핵과 핵 자주권을 보유하고 있는 것보다 확실하게 핵 보복의 신뢰성을 높이는 방안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는 이상 핵무기는 지속적으로, 그리고 갑작스럽게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안보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핵무장은, 불가피한 목표가 될 수도 있다.
자체 핵무장은 한미동맹에 걸린다
문제는 현 상황에서 현실성이 있느냐다. 우리는 한미동맹을 기초로 안보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이 핵 확산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핵무기의 자체 개발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의 균열을 각오해야만 한다.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은 우리로서는 핵무장에 따른 국제 제재를 견뎌내기 힘들 수 있다.
핵무장론이 비현실적인 또 하나의 이유로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라 다른 나라들이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핵물질을 우리나라에 수출하는 것이 금지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국제 협상력을 강화하가 위해 핵무장론을 전략적으로 제기하는 것은 검토할 만하다.
둘째, 핵무장론에 가장 근접한 대안으로 미국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론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자체 핵무장보다 더 어렵다. 전술핵무기는 미국이 소유권을 갖고 있으니 미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배치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은 전술핵의 한반도 배치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전술핵 재배치는 북한에 핵 개발에 대한 명분과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 한반도에 전술핵을 배치하게 되면 미국의 비확산 리더십은 훼손된다. 해외에 배치된 핵무기를 관리하는 비용도 적지 않을 것이다. 전술핵무기 재배치는 미국의 핵 비확산 의지에 비춰볼 때 현실성이 떨어진다.
마지막으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미국의 확장억제를 보장받는 것이다. 확장억제란 핵 보유국가 사이에서는 전쟁을 할 수 없다고 하는 ‘억제이론’을 바탕으로, 핵 보유국이 핵 억제를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동맹국에도 적용하는 것이다.
어떠한 핵무기에도 압도적으로 대응
한미 양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더욱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워싱턴에서 2+2회담을 갖고, 양국의 외교·국방 차관급 인사가 참여하는 ‘확장억제 전략협의체(EDSCG)’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이 전략협의체는 미국이 한국에 확장억제를 제공하는 데 대한 거시적 전략과 정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현재까지는 한미는 국방부의 통합국방협의체(KIDD) 산하 차관보급 기구인 억제전략위원회에서 확장억제 문제를 담당해왔다. 신설되는 확장억제 전략협의체는 국방부뿐만 아니라 외교부도 참여하고, 격도 차관급으로 높였다. 확장억제 전략협의체는 확장억제 문제를 전략적 수준에서 포괄적이고 중층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1960년대부터 활동하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장억제 장치와 비슷하다.
한미 양국의 이러한 결정은 한반도에서 미국 확장억제 전략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이해된다. 이번 공동성명에서 양국 장관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양국과 동북아에 직접적인 위협이라고 규정하면서 “어떠한 종류의 핵무기 사용에 대해서도 효과적이고 압도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확장억제는 말 그대로 북한의 핵 공격 시 미국은 미국 본토 방어에 준하는 방어를 한국에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선언에 불과하기에 손에 잡히는 물리적 조치는 없다. 억제(Deterrence) 개념으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확장억제 선언은 상대방에게 ‘보복의 신뢰’를 제공하는 데 미흡하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억제는 ‘보복을 한다’는 확신을 적에게 제공해, 적의 공격 의지를 꺾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논의한 것이 핵무장이나 핵무기 배치이다. 확장억제는 핵무기의 배치가 없으니 ‘말의 성찬’이 되고 만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자체 핵무장이나 전술핵무기 재배치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확장억제마저 ‘신뢰성’ 문제를 갖고 있다면, 확장억제의 신뢰성을 제고하는 쪽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이미 미국 당사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확장억제에 대한 미국의 진정성을 확인해주고 있다.
필자도 미국의 해군대학원 관계자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면담하면서 같은 질문을 던져 확고한 의지를 전달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감이 존재하니, 그 실행력을 ‘가시적’으로 보장받아야 한다.
이러한 가시적인 조치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이 미국 전략사령부가 통제하는 전략무기와 그 부대를 한반도에 상시 순환배치하는 것이다. 미국 바크스데일 공군기지나 괌 기지에 배치돼 있는 B-1B 장거리 전략폭격기나 B-2, B-52 장거리 핵폭격기 등을 한반도에 상시 전개한다면 신뢰에 대한 불안 문제는 다소 해소될 것이다.
미국은 왜 순환배치 명문화 반대했나
이번 2+2회담에서 한미 국방당국은 확장억제의 실행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미국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상시적으로 순환배치하는 방안을 협의했지만 아쉽게도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신설되는 확장억제 전략협의체는 기존의 틀을 뛰어넘는 진일보한 기구이지만, 한국에 의사결정 권한이 주어졌다고 보긴 어렵다. 나토의 핵계획그룹(NPG)은 27개국 국방장관이 확장억제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공유하고 미국의 핵 관련 계획을 작성하는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우리의 EDSCG는 ‘협의그룹(Consultation Group)’이지만 나토의 NPG는 ‘기획그룹(Planning Group)’이다. 협의와 기획에는 큰 차이가 있다.
미국 대선에서 미국 국익을 우선하고 고립주의적 성향을 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됐다. 반복하자면 억제는 ‘신뢰성’의 문제와 직결된다. 트럼프는 대선 과정에서 한미동맹의 틀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겠다고 공언했으니 동맹국 안보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완화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시도만으로도 확장억제의 신뢰성에 손상이 간다. EDSCG가 핵 문제에 대해 논의만 하는 협의체에 머물게 되면 EDSCG는 거세지고 있는 한국의 핵무장론을 무마하려는 눈가림이라는 ‘불신’에 직면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미 양국은 확장억제의 실행력을 보장할 수 있는 가시적인 조치를 조속히 제시해야 한다.
정한범 국방대학교 정치학 교수
미국 켄터키대 정치학 박사. 2015 동북아협력대화(NEACD) 한국 대표 역임. 현재 국방대 안보문제연구소 동북아연구센터장, 국제정치학회 기획이사, 정치외교사학회 총무이사, 코리아정책연구원 자문위원. 공저에 <국가안보론>, <전쟁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