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차 남북관계 전문가 토론회
北은 핵탄두 표준화, 美는 선제공격 검토…
우리는 어떤 통일정책을 준비해야 하는가
엄중한 시기 우리의 안보와 통일 해법을 찾기 위한 난상토론회가 전북 부안에서 열렸다. 강온의 차이는 있었지만 ‘우리가 살기 위한 통일’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와 한국정치학회가 공동 주최하는 ‘남북관계 전문가 토론회’가 19회를 맞았다. 11월 4, 5일 전북 부안의 NH농협생명 변산수련원에서 진행된 이 토론회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 협력 방안’을 주제로 최근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냉각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는 진전된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유호열 수석부의장은 개회사를 통해 “지금 우리의 정세는 전대미문이라 할 정도로 어렵고 험난하다”고 진단하고, “이러한 상황을 전화위복으로 삼을 수 있도록 북한 전문가와 일반 정치학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남북관계와 통일에 관한 의견을 나누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토론회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 협력 방안’을 주제로 한 1세션과 ‘북한 체제 불안정과 한반도 통일구상’을 주제로 한 2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1세션 사회자인 조윤영 중앙대 국제정치학과 교수는 “대북 제재를 위해 어떤 결집이 필요할지, 비핵화를 위해 어떻게 국제 공조를 펼쳐나갈 것인지는 매우 중요한데, 국내의 복잡한 상황에 묻히지 않을까 우려된다”면서 “오늘의 토론 내용은 정부 정책에 반영된다는 점을 유념해달라”고 당부했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박재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는 중국이 얼마나 참여하고 이행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전제하고 “북한의 중국 의존도는 90%가 넘고 그중 밀무역이 공무역의 50%를 차지한다. 중국이 제대로 참여하고 이행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의 북한 제재는 효과를 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이 중국, 미국과 형성한 관계에 대해 “글렌 슈나이더에 의하면 국가는 공동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동맹을 맺지만, 동맹국에 영향을 주기 위해 그 적과 적대적 게임도 한다. 북한이 적인 미국에 적대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동맹국인 중국에 영향을 끼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며 “북한이 중국의 체면을 구기면서까지 4, 5차 핵실험을 한 것은 중국을 북한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 위한 적대적 게임으로 볼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적대적 게임을 해 미국이 군사전략적 반응을 하면, 중국은 미국을 도전국으로 인식해 소원해졌던 북한과의 정치·군사적 관계를 복원하고 미국에 강경한 자세를 취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북한 문제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제안
이기현 통일연구원 국제전략연구실장은 “전반적인 동북아 구조는 미·중 간의 갈등구도가 심화된 상황”이라고 진단하고, “큰 틀에서는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과 중국의 신형대국관계론이 대립하는 구도, 세부적으로는 군사적·경제적·안보적 측면에서 대립하고 있다”며 “북한이 미·중 갈등, 동북아 갈등을 심화하는 데 능동적 역할을 하는 행위자라는 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비핵화를 위해 중국과 어떻게 협조해나갈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한중관계는 아무리 좋아도 북한 문제가 터지면 원점으로 돌아오는 악순환에 놓여 있다”면서 “대북 제재라는 명확한 대중국 홍보전략을 갖고 중국이 갖고 있는 제도적 허점을 지적해 책임을 묻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차두현 경기도 외교정책특별보좌관은 “제재의 성격은 첫째가 징벌, 두 번째는 경고, 세 번째는 태도를 바꾸는 것인데, 이 세 가지는 구분돼야 한다.
교섭이나 협력을 할 때 ‘우리가 무엇을 지향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으니 설득 논리를 못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우리는 ‘북한이 변화하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대북 제재 이후 ‘북한이 망할 것 같다’는 메시지를 세 번이나 줬다. 이렇게 해서는 주변국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없다. 정부 차원에서 자가당착을 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궁영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핵 문제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이 달라졌다”면서 “5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이전까지는 북핵 문제를 미·중관계의 하부구조 혹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의 관리 정도로 접근했다면, 그 후로는 미국의 안보 문제로 본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미국이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무시하고 있고, 북·미 간 및 북·일 간 관계 정상화와 미국과 일본이 대북 경제 지원 등을 통한 평화 옵션을 펼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준비하고 있지 않다”고 우려했다.
김정봉 한중대 석좌교수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에 중국이 참여한다는 것은 중국이 북한을 포기했다는 것인데 과연 가능하겠는가”고 반문하자, 남광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는 “중국이 한미 군사 옵션에 동참할 수 없다면 오히려 중국에 군사적 부담을 강하게 안겨주는 방향으로 가야 그나마 북핵 문제에 가시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우정민 한국외국어대 외래교수는 중국의 대북 군사 제재 참여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중국 경제의 손해 폭을 줄이는 게 북핵 문제 해결에 실질적인 대안”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어 “북핵 문제의 근원을 한국의 대북정책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의 대북정책이 바뀌어서 북한이 변화한 게 아니다. 북한이 도발하고 위협을 했기 때문에 우리가 당근도 주고 채찍도 주며 변했던 것”이라고 정리했다.
정한범 국방대 안보정책학부 교수 역시 “북핵은 중국에 안보 위협이 아닌 전략적 카드가 될 수 있다. 현재 일본이나 한국의 국력이 미국에 큰 힘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하며 “북한의 비핵화를 중국이 원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또 “미국 역시 북한의 핵 문제를 활시위를 떠난 문제로 받아들여 확산을 막는 것에 주력할 수 있다. 구소련의 핵 개발 초기 미국은 대량보복 등 여러 가지를 검토했으나 결국 순차적으로 후퇴하면서 구소련과 협상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중국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새로운 대안의 필요성에 대한 제언도 이어졌다. 박종철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대북 제재, 군사조치, 인권과 정보의 확산, 대화의 네 가지로 볼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이 네 가지 조합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면서 “우리 또한 진영 논리에 휩싸이기보다 학계와 전문가들이 중립적이고 거국적인 제3의 대안을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김형수 단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통일정책과 대북정책 사이의 논리적 모순에 대해 지적했다. 그는 “과거 10년의 햇볕정책과 이명박, 박근혜 정부 10년의 압박정책 모두 실패했다”는 지적과 함께 “남북관계에서 독립변수는 북한이고 우리는 종속변수다. 이념을 떠난 남북 간의 현실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응수 KBS 보도국 북한부장은 “파키스탄은 핵을 보유하면서 인도에 대한 전쟁도 불사했다. 핵보유국들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룰이 깨졌다”면서 “북한이 미국 본토를 공격하는 건 현실성이 떨어진다. 실제 위협은 한국에 있다. 실제적 고민을 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체제의 불안정과 한반도 통일구상’을 주제로 한 2세션은 김석우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의 사회로 진행됐다. 발제를 맡은 황수환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연구교수는 북한 체제가 안정적일 때 가능한 통일 방안으로 공존과 화해 등 합의에 의한 평화통일을 꼽았다. 그리고 “전쟁과 갈등의 위험이 감소하지만 실현 가능한 화해와 합의가 진행될 수 있을지, 그 과정에서 소모되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 여부 등이 단점”이라고 지적했다.
그가 제시하는 선도형 통일 방안은 북한 주민의 인식 변화와 정치 균열로 야기될 김정은 정권의 리더십 약화를 1단계로, 북한 주민의 요구에 의한 북한 개혁정부 등장을 2단계로, 개혁정부의 한계로 말미암아 북한이 남한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고 통일 지향 정부를 구성하게 되는 3단계로 이뤄진 구상이다.
박진수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실제 통일 방안을 구상할 때는 북한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와 주변국가인 미·중의 입장이 무엇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면서 “선도형 통일 방안을 중국과 미국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고려하고 이들과 통일 방안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경민 제주대 학술연구교수는 선도형 통일 단계의 첫 단계로 지정한 북한 주민의 인식 변화에 대해 언급하면서 “지금까지 우리의 대북 정보 유입 조치는 민간단체 중심의 풍선 날리기와 확성기를 통한 군의 대북방송 정도가 전부였다”고 꼬집었다. 정부 차원의 대북 정보 유입 실천 방안이 절실하다는 주장이다.
김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선도형 통일 방안은 기본적으로 체제 변화를 전제로 하는데 체제 변화 이후 등장한 북한 정권이 남한에 손을 벌릴 것인가, 새로운 개혁정권을 어떻게 유인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수환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연구교수는 “선도형 통일 방안은 북한 체제의 안정을 위해서는 통일이 가장 매력적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제시하는 것”이라면서 “북한이 자생적으로 시장경제를 형성하더라도 남한과 교류하는 것이 시너지 효과가 크다고 믿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선도형 통일 방안, 미·중은 어떻게 볼 것인가
박종철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 체제가 안정적이냐 불안정하냐고 이분법적으로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 “선도형 통일 방안은 간접적으로 계속 논의 돼왔던 내용이지만 1992년 보고서를 전제로 한 것이라 한반도 비핵화, 평화가 전제조건이었다”고 지적했다. 핵을 가진 분단체제인 현재 상황에 대한 폭넓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조영기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역사적 관점에서 봤을 때 모든 통일은 급변사태에서 발생했고, 그 통일은 흡수통일이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역사적 사례에 비춰 통일에서 통합으로 가는 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극심한 붕괴 위기와 외부 정보로 인한 위기, 극심한 소득 격차, 비정부기구(NGO) 활동 등의 조건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김석우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급변사태에서 통일되는 것이 보편화된 역사였다는 데는 동의한다”면서도 “금융위기 때마다 지금의 상황이 예외적인 것인가 아닌가를 고민한다”고 전제하고 북한을 예외적인 케이스로 볼 가능성을 제시했다.
정한범 국방대 안보정책학부 교수는 “북한이 붕괴되는 것이 곧 북한을 접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북한 붕괴는 김정은이 사라지는 것이나 쿠데타가 될 수 있고 민중봉기도 될 수 있지만 지도부가 완전히 공백이 되는 상황이 쉽게 오진 않을 것”이라면서 “그러한 국면이 왔을 때 북한 주민이나 주변국들이 남한과의 통일이 가장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대진 성균관대 교수는 “국제 공조도 중요하지만 위에서부터 북핵 문제 해결이 어렵다면 아래에서부터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북한 주민들이 핵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심리적 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광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 역시 “중요한 것은 북한 주민의 발길이 우리 쪽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라면서 “탈북자 3만 명 시대는 이러한 점에서 상징성을 가진다”고 말했다.
김수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선도형 통일 방안의 긍정적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핵과 인권 요소가 추가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정교성을 주문했다. 안제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비핵화를 위해 제재를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선정해왔는데 이 제재가 계속 갈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질문해봐야 한다”면서 국제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변수를 통일과 접목해 정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차두현 경기도 외교정책특별보좌관은 “어떤 통일 방안이든 우리가 선도적이고 철저히 갑(甲)일 것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라면서 “그 전제 조건이 받쳐준다면 어떤 방식이든 통일이 된다. 독일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사례를 연구하고 있지만 서독이 동독을 무너뜨리기 위해 정책을 쓴 것이 아니고 미국이 러시아를 무너뜨리려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호근 청주대 정치안보국제학과 교수 역시 “선도형 통일 방안은 북한 체제가 불안정하다는 입장에서 이야기했다. 만약 안정화됐다면 우리가 찾을 수 있는 통일 방안은 뭘까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한다”면서 과정의 중요성을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