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3만 시대
먼저 온 통일, 먼저 해보는 통합
탈북민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인 외국 영주권자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유턴에 비하면 탈북민의 재입북은 새 발의 피다. 이민자가 먼저 간 이민자에 의지해 정착을 하듯, 탈북민도 선배 탈북민에 의지해 정착하니 서툴 수밖에 없다.
지난 11월 11일 7명의 탈북민이 입국해 누적 탈북민 수가 총 3만5명이 됐다. 국내 입국 탈북민은 1962년 최초 귀순자가 발생한 이래 2006년 1만 명, 2010년 11월 2만 명에 이어 올해 3만 명을 돌파한 것이다.
북한 인구가 약 2400만여 명이니, 탈북민 3만 명은 북한 인구 1000명당 1.25명꼴로 한국에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한 주민 1000명 중 1명이 북한으로 갔다고 바꾸어 생각해보면 탈북민의 증가가 북한 당국에 어떤 의미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김정일 정권 때까지만 해도 북한 당국은 탈북민의 존재를 알리는 것을 매우 두려워했고 주민들에게 숨겨왔다.
그러나 더 숨길 수 없게 되자,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후 주민들의 탈북을 막기 위해 2중 3중으로 감시망을 늘리고 처벌 강도를 높이는 한편 ‘되돌아간’ 탈북민을 기자회견장에 내세웠다. 그리고 그들의 입을 빌려 탈북민의 비참한 처지, 썩고 병든 한국 사회 등을 비난하는 구차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게 했다.
이민자보다 어려운 탈북민 정착
대중매체는 탈북민 정착의 어려움을 많이 다룬다. 물론 탈북민의 처지는 한국 주민에 비해 어렵다. 그러나 지방에서 서울에 와도 정착하기 어려운데, 낯선 땅에 이주해서 사는 탈북민이 어렵지 않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탈북민은 어쩔 수 없이 밀려서 중국으로 나왔고, 또 어쩔 수 없이 남한으로 올 수밖에 없었던 난민이다.
북한은 가장 폐쇄적인 국가이기에 탈북민은 이민자와 다르다. 이민자는 가려는 국가에 대한 지식을 갖고 떠나지만 탈북민은 한국의 삶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들어온다. 탈북민이 접한 한국은 북한과 너무나 다르다. 북한은 너무 많은 면에서 한국에 뒤떨어져 있다.
그래서 어린아이처럼 물건 이름과 값, 패션과 같은 초보적인 것에서부터 직업 능력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새로 배워야 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배우는 것이 쉽지 않다. 한국의 어른이 성인인 탈북민을 어린아이로 취급하는 것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탈북민은 무수한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한국에 정착한다.
이민자 정착의 핵심은 경제적 정착이다. 현재 탈북민은 일반 국민에 비해 경제활동인구 비율이 6%포인트 낮고 실업률은 1.4%포인트 높다. 일반 국민에 비해 일자리의 질도 낮다. 단순노무 종사자와 서비스 종사자의 비율이 일반 주민의 배가 넘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비율은 일반 주민의 4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근로시간도 일반 주민은 40.7시간인 데 비해 탈북민은 47.1시간으로 6.4시간 더 일하지만, 소득은 2014년 평균 141만4000원으로 일반 국민 평균 323만 원의 43.7%에 불과하다.
학교 적응도 어렵다. 탈북 청소년의 학업 중단률은 2012년 3.3%에서 2015년 2.2%로 개선됐지만, 일반 학생에 비해 초등학생은 6배, 중학생은 10배, 고등학생은 7배나 중단률이 높다. 탈북 대학생의 학업 중단률은 9.8%, 전문대생은 10%로 역시 일반 대학생의 학업 중단률 6.4%, 일반 전문대생의 7.5%보다 높다.
이러한 어려움이 있음에도 대다수 탈북민은 한국에 잘 정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남북하나재단이 2015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탈북민의 생활 만족도는 만족 63.8%, 보통 32.8%, 불만족 3.5%였다. 이 만족도는 약간 다른 방법으로 조사한 2014년 한국 주민의 생활 만족도 47%에 비해 훨씬 높은 것이다.
탈북민의 재입북에 대한 비난이 있지만 한국 사람들도 다른 나라에서 영주권을 받고 살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경우가 한 해에 3000~4000명 된다. 이를 감안하면 탈북민 중 북한으로 되돌아간 사람의 비율은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고 볼 수 있다.
탈북민의 한국 정착은 ‘먼저 온 통일’, ‘먼저 해보는 통합’이라는 데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다. 1990년 장벽 해체를 계기로 통일을 이룩한 독일을 보며 우리도 철책선이 무너지면 당장 통일될 것이고, 통일된 한반도의 아름다운 미래가 펼쳐질 것으로 상상했다.
그러나 통일 이후 독일이 겪는 정치·경제적 혼란을 보면서 통일에 대한 기대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탈북자의 대량 입국이 시작됐다. 사람들은 탈북민이 남한에서 정착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남북의 통일도 쉽게 되지만은 않으리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탈북자 재입북 높은 비율 아니다
탈북민도 마찬가지다. 북한에서는 통일을 민족 최대의 숙원이라고 가르친다. 북한에서는 적화통일을 생각하므로 통일대전에서 목숨을 바칠 각오를 심어주기 위해 사상교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통일 이후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탈북민들은 한국 입국 초기에는, 통일비용을 따지는 한국 사람들을 한심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한해 두해 살아가면서 남북이 함께 살아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2016년 통일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 정착기간이 늘수록 한국 체제로 통일하는 것보다 두 체제를 절충하거나 제3 체제로 통일하자는 탈북민의 비율이 높아졌다. 급진적 통일보다 점진적 통일을 주장하는 탈북민이 많아진 것이다.
하나재단의 조사(2015년)에 따르면 탈북민이 한국 정착에 가장 불만족하는 이유로 드는 것은 경제적 어려움(61.3%)이었다. 그다음이 한국 사회문화에 대한 적응의 어려움(42.2%),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각종 편견과 차별(30.9%) 순이었다. 통일이 됐을 때 북한 주민이 겪게 될 어려움도 이와 유사할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통일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통일은 하고 싶으면 하고, 피하고 싶으면 피할 수 있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숙명이다. 상당 기간 국가를 단위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서, 과정은 쉽지 않겠지만, 통일이 한반도 미래를 위해 유익하고 필요하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통일은 언제 될지 모른다. 먼 장래일 수도 있지만 당장 될 수도 있다. 준비 없이 맞이하는 통일은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두 가지를 다 대비해야 한다. 탈북민 정착은 통일에 대비하는 과정이다. 탈북민을 통해 우리는 북한과 북한 주민을 알게 되고 그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게 된다. 탈북민이 이 땅에 정착한 경험은 통일 이후 북한 주민이 모방할 수 있는 본보기가 된다.
성공한 탈북민의 수를 늘려라
정부와 시민들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음에도 탈북민의 정착이 순조롭지 못한 데 대해 실망하는 탈북민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탈북민의 정착 과정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독일의 경우 많은 지원이 있었음에도 10년이 지나서야 동독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20년이 지나서야 동독이 서독의 80~90% 수준에 올라섰다. 그러나 탈북민의 입국이 곧 통일이 아니다. 탈북민은 매해 입국하므로 올해도 내년에도 탈북민의 정착은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탈북민에 대해서는 성급한 판단을 하기보다는 믿고 기다려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탈북민 정착에 대해 제일 잘 아는 이는 직접 정착을 해본 탈북민이다. 새로 입국한 탈북민은 낯선 남한 주민보다 먼저 온 탈북민의 말을 더 믿는다. 조사에 따르면 탈북민의 구직 경로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지인 소개에 의한 취업이다. 취직을 하려면 남한 주민의 도움을 받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함에도 탈북민은 같은 탈북민인 지인의 소개로 일자리를 구하는 비율이 47.3%를 차지했다. 먼저 입국한 이민자의 도움으로 정착하는 것은 이민자 정착의 일반적인 경향이다.
탈북민 정착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건전한 탈북민 사회가 형성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탈북민 개인에 따라 정착 수준의 차이가 큰 상황에서, 열심히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는 탈북민의 성공을 돕고 성공한 탈북민의 수를 확대하며 탈북민 속에서 그들의 영향력이 강화되도록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된다.
현인애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
김일성종합대 철학과 졸업. 북한 청진의학대학 철학교원 역임. 2004년 탈북. 이화여대 북한학 박사. 현재 남북하나재단 이사, 민주평통 상임위원, 통일부 정책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