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이후의 한중관계
혁명 시대엔 북한, 건설 시대엔 한국…
지금은 ‘시진핑의 입’에 주목할 때
한반도 사드 배치 결정으로 한중관계가 파탄 날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를 다른 쪽으로 수정하려고 한다. 중국의 역내 파워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한중관계를 다루는 것이다.
한중 수교 사반세기를 앞둔 시점이다. 한중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중요한 시점에 놓여 있다. 지난 24년 동안 한중관계는 몇 차례 변화를 겪으면서도 ‘내실 있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지난 2012년 한국과 중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중관계는 최고지도자 간 신뢰를 바탕으로 여러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2014년 7월 시진핑 주석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단독 방문했다. 한국 지도자는 2015년 9월 국내외의 우려가 있었음에도 중국의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가했다. 한중 간 경제·무역 교류도 활발하고, 민간 교류 등 인적 교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의 첫 번째 무역 상대국이다. 수입과 수출 모두 중국은 첫 번째 파트너가 됐다. 중국 국가여유국(國家旅遊局) 자료에 따르면, 지난 중국 국경절 기간(10월 1~7일) 중국인 단체 여행객 139만9000여 명이 해외여행에 나섰는데,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았다. 한국 유관기관에서는 그 기간 20여만 명의 중국인이 한국을 방문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러시아, 태국, 대만을 제치고 한국을 가장 많이 찾은 것이다.
우리가 일깨워준 중국의 보복조치
한반도 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중국의 국경절 특수를 맞은 것이다. 그러나 단기간의 관광시장 호전으로 한국이 사드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판단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지난 10월 13일 중국은 이른바 ‘불합리한 저가 관광’을 줄이겠다는 통지를 발표하고 관광객 수를 제한하겠다는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소비세 관련 정책 조정이 있을 것이라는 발표도 했다. 이는 중국의 내수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한미 양국의 한반도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보복조치’라는 우려가 회자됐다.
지난 7월 8일 사드 배치 발표 이후 중국에서는 인터넷과 민족주의 색채가 농후한 매체를 중심으로 한국에 보복해야 한다는 논의가 확산됐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한국에서 회자되던 중국의 사드 보복조치 논의를 소개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중국이 공식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너무 앞서가면서 그 논의가 그대로 중국에 흡수되는 현상이 벌어진 셈이다. 우리가 적극 나서서 중국의 ‘보복조치’를 일깨워준 측면이 있다는 점은 돌이켜 생각해봐야 한다.
한국과 미국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한국과의 교류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거나 유보하는 조치를 취했다. 중앙정부가 주관하던 여러 형태의 교류가 일시적 혹은 무기한 중단되는 경우가 발생했다. 그러나 명시적으로 중국 정부가 중단을 거론한 것은 극히 적었다. 지방정부까지 하달되는 경우는 더 드물다.
사드 배치 발표 이후 중국의 움직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기간 지속 가능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정중동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러 기관이나 단체, 개인은 이러한 중앙정부의 움직임에 ‘자발적으로’ 순응하는 형국이다. 사드 배치 발표 이후 중국의 격앙된 반응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한국으로 가는 관광객을 줄이겠다는 분명한 정책을 발표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사드 배치 발표 전후로 몇 달간의 외국인 입국 추이를 보면, 중국인의 한국 입국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월보를 보면, 올 7월 외국인 입국자는 171만8561명으로 전월보다 9.9%(15만5218명) 증가했다. 전월 대비 중국인 20.9%(16만1668명), 일본인 3.4%(6252명), 필리핀인 7.0%(3539명) 순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8월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입국자는 168만7894명으로 전월 대비 1.8%(3만667명) 감소했다. 특히 전월 대비 중국인은 4.3%(3만9833명)나 줄었다. 이러한 추세는 9월에도 이어져 외국인 입국자는 153만9610명으로 전월 대비 8.8%(14만8284명) 감소했다. 중국인은 16.5%(14만8029명)나 감소했다. 8월에는 새 학기를 맞아 유학 수요가 증가해 감소폭이 미약했지만, 9월 들어서는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방한 외국인 감소 추세는 국내 입국하는 중국인의 감소에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그중에서도 중국인 관광객의 방한이 줄어든 것이 주된 이유임을 알 수 있다. 일시적인 계절적 수요 변화를 감안해야 하지만 7월 이후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절대 수는 계속 줄어드는 추세이다.
한국관광공사의 관광시장 동향 자료도 7월을 기점으로 외래 관광객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추세는 연말로 갈수록 계절적인 요인에 의해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인 관광객이 줄어들고 있다
한국은 여전히 매력적인 여행지라는 점이 이미 보편적으로 중국인들에게 각인돼 있다. 따라서 관광객의 감소 추세가 사드 때문이라고 단정하고 우려할 필요는 없다. 중국은 현재 내수시장을 활성화하는 정책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국내 관광시장 개발이 해외여행 수요를 일시적으로 감소시키고 있다. ‘불합리한 저가 관광시장’ 정책 조정도 이제 막 시작하는 시점이라는 점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한중관계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음에도 꾸준히 격상해왔다. 양국은 경제·무역뿐만 아니라 인문 교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인적 교류를 지속하며 ‘돌이킬 수 없는’ 심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지금은 지도자 간 신뢰를 바탕으로 한중관계를 견인했던 요인들이 변화를 겪으면서 일시적인 조정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개별적인 정책의 변화에 따라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지속적인 관계망을 탄탄히 하는 노력이 배가돼야 한다.
시진핑의 ‘말(言)의 정치’에 대비하라
한국과 중국은 매우 깊은 관계로 진입하는 중이고 또한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동북아 지역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상호 신뢰하는 국가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사드 배치라는 정책 전환으로 상호 기대치와 수준에 대한 혼란과 우려도 공존하고 있다.
한중 양국은 기존의 좋은 관계는 유지하면서 양보할 수 없는 문제는 오랜 시간 논의를 거듭하면서 대립적 논의를 이어가는 ‘머들 스루(Muddle Through)’ 관계에 들어섰다고 보아야 한다.
중국은 마오쩌둥이 나라를 세우는 건국과 혁명의 단계, 등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가 경제를 키우는 건설의 시대를 거쳐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려고 한다. 혁명과 건국의 시대에 중국은 북한이라는 혈맹이 필요했다.
건설의 시대에는 박정희로 대표되는 한국의 국가 발전 모델이 필요했다. 그리고 시진핑이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지금, 남북한의 중요성은 과거보다는 조금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과거 쌓아온 관계를 버리지는 않는다. 한반도의 사드 배치 문제를 중국은 이러한 틀로 볼 것이다. 그래서 기존의 유대는 심화해가면서 갈등 양상이 벌어질 때는 중국에 좀 더 유리한 상황을 만들려고 한다.
시진핑은 이를 통해 역내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상황을 만들려 할 것이다. 사드 배치 결정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중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이며, 중국 또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해외 여행지이다. 이는 정부 간 관계가 다소 소원하더라도 한중관계의 기본 틀은 변화하지 않는다는 공통의 믿음이 있기에 가능하다.
시진핑은 지난 18기 6중전회에서 당내에서 ‘핵심’ 지위를 공식적으로 추인받았다. ‘핵심’이라는 것은 정책과 인사에서 최종 결정권을 행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만큼 시진핑 주석 개인의 영향력이 확대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한국과의 관계 변화가 최고지도자의 ‘입언(立言)’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케 한다. 한중관계가 ‘입언의 정치’에 영향을 받을 개연성이 더욱 높아지면, 우리도 ‘말의 정치’에 주목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한중관계를 굳건히 정립하는 ‘입언’의 묘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양갑용 성균중국연구소 연구실장
중국 푸단대 정치학 박사.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 연구교수, 한국외국어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역임. 현재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 교수, 충남 경제비전위원회 자문위원. 공저 <한중관계의 재구성 : 과거를 넘어 미래로>